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는 스페인의 건축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공원, 구엘 궁전, 카사 밀라 등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성진 바르셀로나 여행의 절반 이상을 가우디가 차지하는 것 같아.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는 건축가라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라니까.
이담 가우디에 대해서 조금만 공부하면, 바르셀로나 여행이 훨씬 풍요로워질거야.
성진 가장 궁금한 건, 가우디 건축의 전반적인 특징이야.
이담 가우디를 통상 스페인 아르누보 건축의 중심인물이라고 해. 아르누보(art nouveau)는 새로운 예술이란 뜻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유행해. 딱 가우디가 활동하던 시기지. 아르누보는 기존 전통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려는 것이 특징이야. 특히 자연에서 많은 모티프를 얻어왔다고 해.
성진 가우디 작품들이 옥수수 같고, 담쟁이덩굴 같고, 유선형인 게 그 이유구나.
이담 맞아. 가우디도 자연스러움을 무척 강조했지. 확고한 ‘가우디 양식’을 만들었다고 과언이 아냐. 하지만 그저 자연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만 가지고 가우디를 칭송하지 않아. 특이한 외양도 외양이지만 합리적인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어. 천장과 기둥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그리고 그의 건축물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바람도 잘 통하고 햇볕도 잘 들게 해놨어.
성진 자신만의 예술 양식을 확립한 것뿐만 아니라 기능도 뛰어나다는 거구나.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 그는 인생은 어땠어? 날 때부터 천재였어?
이담 그는 1852년 바르셀로나 근처의 레우스란 도시에서 태어나. 부모님은 금속제품을 만드는 장인이었어. 가우디는 어릴 때 매일 같이 아버지 작업장에 가서 아버지가 작업하는 것을 봤다고 해. 가우디는 이런 아버지 덕에 자신의 공간감각과 예술감각이 생겼다고 말하고 다녔데.
성진 자연스럽게 예술, 건축 쪽에 관심을 갖게 됐겠다. 바르셀로나로 와서 건축학교를 다녔다고 들었어. 이때부터 관심의 인물이 됐다며. 졸업할 땐 건축학교 학장이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지, 바보에게 주는 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관심의 인물이었나봐.
이담 가우디의 실력을 가지고 교수들의 의견이 엇갈렸다고 해. 누구는 가우디가 천재다, 누구는 가우디는 그냥 바보, 미치광일 뿐이다라고.
성진 하지만 결국 시간은 가우디를 천재라고 말해준 셈이네. 가우디는 졸업하고 나서부터 조금씩 명성을 떨치다 구엘이라는 날개까지 만나잖아. 구엘이라는 부자가 가우디를 무척 좋아해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들었어. 그래서 구엘 궁전이니 구엘 공원이니, 구엘의 이름이 붙은 곳이 많지.
이담 하지만 그가 좋은 평가를 받고, 구엘을 만난 데는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야. 가우디는 진짜 예술가였어. 그냥 설계만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직접 실무에도 엄청나게 관여할 정도로 작품에 애정을 쏟았어. 타일 하나하나를 선별하기도 하고, 직접 망치를 들기도 했어.
성진 바르셀로나, 아니 스페인에서 정말 대단했던 인물이었구나. 그런데 가우디의 죽음이 참 비참했다면서.
이담 가우디는 옷차림에 별로 신경을 안 썼나봐. 성당에 다녀오는 길에 전차에 치여 치명상을 입었는데 운전자가 가우디를 보고 거리 노숙자라고 생각한 거야. 대충 길옆에 옮겨놓고 뺑소니쳤어. 지나던 사람들이 가우디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기려고 택시를 잡는데 모두 승차 거부했다고 해. 겨우 경찰차를 태워서 갔던 병원도 방치했다나.
성진 나중에 정신을 차린 가우디가 자기 신분을 밝혔다며. 모두들 깜짝 놀랐겠다.
이담 결국 가우디는 1926년 73세로 죽게 돼. 다행히 전차 운전자, 승차 거부 택시, 병원 등은 처벌받았어.
성진 천재의 말로가 비참하다. 그래도 국장급으로 장례식이 열렸다고 들었어. 로마 교황청이 특별히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안치시키게 해줬다며. 성당에 안치되는 건 성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인데 말이야.
이담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던 가우디에겐 큰 기쁨이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