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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차영수증 Jun 11. 2024

서평_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이라는 책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번 서평은 사족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본디 소설과 수필은 잘 논하지도 않고 모임에도 가져가지 않습니다. 두 장르는 작가의 주관성과 감정의 선명도를 우선으로 하는데, 한번 구전(口傳)이 되면 작품성과 메시지가 탁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말한 ‘작가의 슬픔’과 작가가 말한 ‘슬픔’은 도저히 동일할 수 없고, 내가 아닌 타인이 겪은 일로 일으킬 수 있는 감상의 범위와 밀도의 한계가 있습니다. 좋은 전달법에 대해 고심해봤지만 언제나 보고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소설과 수필을 읽고 나면 혼자만의 여운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나 ‘전달의 기술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은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와 나의, 혹은 우리의 삶을 맞대어 보며 어떤 방향을 택했는지도 말해보고 싶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 작품 곳곳이 박혀있던 감정적 이물질로 긁힌 마음을 서평 작성을 통해 나름의 회개와 위안을 얻고 싶었습니다.


줄거리와 주인공 심리에 관한 소견을 정리한 후, 저의 수기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1. 줄거리

(액자식 구성: 소개하는 글 - 첫 번째 수기 - 두 번째 수기 - 세 번째 수기 - 후기)


주인공의 이름은 요조입니다. 가부장적인 정치인 아버지가 있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랍니다. 어렸을 때부터 인간의 감각과 삶에 대해 이질감이 있습니다. 배고픔도, 행복도 이해할 수 없으며 오직 불안과 공포만을 느낍니다. 인간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지만, 인간과 가까워지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유년기 시절 우수운 행동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중학교 때 다케이치라는 동급생이 ‘일부로 한 거야’라는 말을 한 이후로는 모든 것이 밝혀질 것 같다는 생각에 더 큰 불안에 휩싸입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고, 미술학원에서 호리키라는 학생을 만나 술, 담배, 매춘에 빠지게 되고 좌익 단체에도 가입을 합니다. 이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대인기피증을 완화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좌익 운동단체와 엮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집안에서 알게 되고, 탈퇴하지 않으면 경제적 지원을 멈추겠다는 연락을 받고 단체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 결정은 절망감과 무력감을 낳습니다.


여러 여자들과의 난잡한 관계는 계속 이어집니다. 수없는 매춘부, 하숙집 주인의 딸, 좌익단체에서 만난 여자, 남편이 감옥에 있는 여자와의 정분과 동반 자살 시도, 본인 만화를 연재하는 잡지사에서 일하는 싱글맘 등 여러 여자를 이유도 없이 만나며 정처없는 관계생활을 하다가 담배가게 집 딸 요시코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요시코가 겁탈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후 엄습한 무력감과 불안에 떠밀려, 수면제를 먹고 자살시도를 하나 죽지 못합니다.


그 이후 요시코와 헤어져 모르핀 중독에 빠집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지만 허탈감만 듭니다. 큰형은 요조를 시골 외딴 마을로 보내어 살게 합니다. 또 한번 자살시도를 하지만 하녀가 약을 잘못 사와 실패하게 됩니다. 요조는 이제 아무 것도 하지도, 느끼지도 못합니다.


“이제 내겐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 세 번째 수기의 마지막 페이지 중



2. 주인공 심리에 관한 소견

(아래 내용은 논문 및 기타 자료들을 참고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제가 정신분석학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 유의 부탁드립니다. 만약 발견하신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관계 불안

소아기 아동은 어머니를 통해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게 되며, 어머니와의 안정 애착 형성은 올바른 사회적 활동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여집니다. 안정적 애착이 형성된 경우,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표상을 가지게 되고, 사회에서 겪게 되는 위협과 공포를 완화하고 대처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안정적 애착 형성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회피성 애착이 자리잡은 경우,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소설에는 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작가의 어머니가 허약한 체질이라 작가를 보살필 기회가 부족하였고, 이로 인해 어머니에 관한 추억 및 애착 형성 경험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게다가 형제자매가 11남매나 되었으니 제대로 된 관심을 받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작가의 실제 삶이 반영된 요조라는 인물도 어머니와의 관계 형성 과정을 거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인생 전반에 걸쳐 애착과 신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회피성 애착’이 형성되었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하니 못한 경우, 외로움과 버려질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게 되며 세 가지 신경증적 경향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인정받고 보호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져, 지나치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 공격하거나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져, 맞서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 친밀한 관계가 불편해져, 멀어지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일반적인 사람들도 세 가지 태도를 보일 수 있으나, 상황에 맞는 태도를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착 형성에 문제를 겪는 이들은 세 가지 경향성에 집착하게 되고, 관계 형성이 더욱 어려워지는 결과를 낳습니다.요조도 위에 나온 경향성 중 지나치게 순종적인 태도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한 관계 형성의 어려움은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어떠한 요소들도 개의치 않고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여성’들을 찾아 나서는데 집착하게 됩니다. 특히 요조의 매춘 중독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매춘은 일반적인 인간관계 형성을 위한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고, ‘지불’이라는 간단한 방식으로 관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 없는 여자들을 만나도 욕구는 채워지지 않았고, 온전한 관계였다고 생각했던 결혼 상대 요시코가 겁탈을 당하자 모든 것이 무의미해집니다. 그 후 요조는 생을 마감하려 합니다.



2) 아마에 (甘え)의 부재

요조가 ‘아마에’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한 삶을 살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아마에’는 한국어로 ‘응석’, ‘어리광’ 등으로 번역이 되나, 이 단어의 어감(nuance)과 문화적 문맥이 1대 1로 대응되는 한국어 단어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어로 ‘응석’, ‘어리광’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하는 버릇없는 행동을 뜻하는 표현으로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어에서는 ‘상대방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 일체감,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한 아마에를 기준으로 관계의 종류가 구분됩니다. 아마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가족 관계, 아마에가 허용이 되는 친구 및 조직 관계, 허용이 되지 않는 타인의 세계로 나눠질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쓰이는 ‘정(情)’의 개념과도 ‘유대감’을 중요시한다는 유사점이 있습니다만, 어디에 중점을 두었는지에 차이가 있습니다. ‘정’은 가족의 범위를 넘어 연인이나 친구사이, 더 나아가 이웃 및 사람 사이에 보편적인 지녀야 할 감정으로, 공존(共存)의 중요성이 좀 더 강조된 느낌입니다. 반면 '아마에'는 나의 편과 그 외에 사람들을 나누는 부분이 좀 더 강조됩니다.


소설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요조는 일본 사회에서 있으면서도 아마에를 적용할 수 있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같이 나눈 추억도 없는 어머니, 엄격한 어려운 아버지, 소통이 없는 가족 식사 시간 등 유년기에 응석을 부릴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응석을 부리기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거리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하는데, 관계 형성 경험이 없는 요조는 타인이 자신의 응석을 받아줄 지 여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조는 ‘익살’을 용합니다. 우스운 행동은 거리감의 정도를 벗어나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급생 '다케이치'가 이 사실을 파악하자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요조의 응석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합니다. 후견인 넙치도, 친구인 호리키도, 큰형도 요조를 한심하게만 생각할 뿐 누구 하나 요조의 불안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요조는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여자들을 찾아다니게 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결혼 상대였던 요시코가 겁탈을 당하자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최후의 인간’이 사라져 아마에를 단념하게 됩니다.



3. 네 번째 수기


군대에서 처음 ‘인간실격’을 접했습니다. 


당시 여러 사건들로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져 연락할 사람도 없었고, 가정불화로 집에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휴가를 나와도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집에서 얻을 수 있는 평안도 없어, 복귀 때까지 혼자서 이곳저것 떠돌았습니다.


그리고 질식에 가까운 외로움이 찾아옵니다.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모임이나 채팅 어플을 뒤져가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절박함과 외로움으로 시작된 관계는 제대로 굳어지거나 유지될 수가 없었고, 결국 인간과의 관계를 갈구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양가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나지도 못할 인간들을 겪다가 날이 어둑해지면, 침상에 누어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이 살다가, 내가 죽어 묻힐 때는 정말 아무도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입안 가득 쓴 맛을 머금고 뱉지못해 뒤척이다 잠에 든 날이 참 많았습니다. 어떻게 버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말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육신으로 ‘인간실격’을 읽고 나니, 책에 담겨 울렁이는 우울감과 자괴감에 침닉되어 살기 위해 숨쉬기만 하는 유기체가 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요조도 나처럼 인간을 그리워하면서도 두려워했고, 인간을 향한 모든 시도가 좌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조는 죽었고 저는 살았습니다.

[소설에서는 죽지 않습니다. 다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 요조의 단념을 나타내기 위해서 ‘죽었다’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요조와 같이 타인의 심리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의문들은 결국 눈과 입과 손과 발로 드러나버렸고, ‘너는 왜 그렇게 말을 하니?’, ‘그런 게 왜 궁금해?’, ‘너는 왜 그렇게 행동해?’라는 힐난으로 이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내가 본디 가지고 있던 인식과 행동양식을 보여주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말입니다. 만약 요조처럼 우스운 짓에 재능과 관심이 있었더라면 불만을 완화시킬 수 있었겠지만, 저는 도저히 그런 것들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외톨이가 되어버린 게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의문’의 근본적 차이점이 우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봅니다. 요조의 의문은 인간에 대한 불신과 기본적인 감정의 부재에서 유래한 것이었지만, 저의 의문은 원리와 작동방식에 대한 호기심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꾸준히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를 긍정하는, 과학과 기술의 영역에서는 다행히 좋은 자질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의문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주 전, 제 자신의 심리 상태를 돌아보기 위해 심리상담가를 찾아가 자아와 기질 관련 검사를 받았습니다. 저의 정신건강 상태는 양호하며, 저의 기질은 불안과 의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과 동일한 검사결과였습니다. 상담사분께서 불안과 의문은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적절한 수준이면 좋은 삶의 지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이 두 가지 기질 요소를 회피하기 위해 살지 않았고, 오히려 긍정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요조도 본인의 불안과 의문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면서 살아갔다면 어땠을까요. 스스로를 살인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아무리 바란다고 한들 번외편만 만들어질 뿐이며, 이미 삶이 마감된 사람에게 무언가 바란다는 건 그릇된 욕심일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그대로 놔두고, 우리는 갈 곳을 향해 서로 스쳐가는 것이 존엄을 지켜주는 마지막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단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세 번째 수기의 마지막 페이지 중




참고한 자료 모음


회피성 인격장애

http://www.snuh.org/health/nMedInfo/nView.do?category=DIS&medid=AA000708



성인애착의 불안-회피 차원에 따른 대인관계문제: 내면화된 수치심과 정서표현 양가성의 매개효과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291139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인간 실격(人間失格)』에 나타난 ‘세상’ 인식 : - ‘응석(甘え)’ 심리와 관련하여 -

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ee935a5c0254fd26ffe0bdc3ef48d419&outLink=K



다자이 오사무(太宰治)『人間失格』연구 : 주인공‘요조(葉藏)’의 의존적 성격 분석을 중심으로

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ef8f09f24ebdb40bffe0bdc3ef48d419&outLink=K



사회공포증에 대한 정신분석적 이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중심으로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711743



한국의 ‘정(情)’과 일본의 ‘아마에(甘え)’에 대한 인지적 고찰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673598



아마에란?

https://brunch.co.kr/@df0ca9756efe4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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