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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하 Mar 24. 2023

측은한 마음

퇴근 길에 유튜브 뮤직에 들어갔더니 ‘잊고 있던 좋은 음악’이라는 항목이 보였다. 재생을 눌렀다. 예전에 듣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다 우연히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에필로그가 나왔다. 장발장이 고단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마지막 장면에 흘러나온 음악이다.예전 경향신문 컬럼에도 썼던 내용이다. 



장발장이 고단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마지막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주책없이 눈물이 흘렀다. 도대체 왜 이럴까. 흐르는 눈물이 이해되지 않았다. 삶을 마감하는 한 인간의 진실한 고백, 남겨진 이들의 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서정적인 음악 때문이었을까? 마지막 엔딩은 서로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가사에서 자연스럽게 에필로그 노래인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로 넘어갔다. 도대체 내가 왜 울었을까 궁금해 졌다. 장발장의 모습이 측은했고, 장발장의 모습에서 또 다른 측은한 이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측은한 마음. 남의 불행을 불쌍하고 가엽게 여기는 측은한 마음을 맹자는 인간의 어진 본성에서 우러나온 마음씨라고 했다. 어디 맹자뿐이랴. 예수가 과부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다. 예수가 제자와 추종자들과 함께 나인이라는 동네로 가는데, 성문 가까이에서 장례행렬과 마주친다. 죽은 이는 ‘어떤 과부의 외아들’이었고, 동네 사람들이 큰 떼를 지어 과부와 함께 상여를 따라 오고 있었다. 성서를 인용한다. 

출처 : /www.churchofjesuschrist.org 

주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울지 말라”하고 위로하시며 앞으로 다가서서 상여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젊은이여, 일어나라” 하고 명령하셨다. 그랬더니 죽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 위대한 예언자가 나타나셨다”고 말하기도 하였고 또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 와 주셨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예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근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누가 7, 11-17) 


이 에피소드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단어는 ‘측은한 마음’이라는 단어다.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다.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이었는지 모르겠다. 능력이 있어 과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아이였을 수도 있고, 그저 평범하고 착한 아이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망나니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아이였더라도 과부에게는 단 하나뿐인 피붙이다. 그런 피붙이가 죽자, 동네 사람들이 큰 떼를 지어 과부의 상여를 따라갔다. 이상하지 않는가? 고작 동네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을 뿐인데. 그냥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다고? 아이고, 이제 어떻게 하나’라며 숙덕거리거나, 좀 체면을 차릴 요량이면 적당히 부조금이나 보내면 될 일이다. 동네를 다스리는 관원의 아들이 죽은 것도 아닌데. 


하지만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 ‘나인’이란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과부의 슬픔을 자기의 슬픔으로 여겼다. 과부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고 가여워 했다. 그리고 슬픔에 동참해 큰 떼를 지어 과부의 상여를 따랐다. 세상에 유일한 가족인 외아들을 잃은 과부이지만, 그녀에게는 동네사람들이 있었다. 동네라는 것의 본질은 학군이나 아파트 가격의 오르고 내림이 아니다. 동네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곳이다. 사람을 만나고, 서로의 사정을 나누는 곳이다.  


과부의 슬픔에 함께 슬퍼한 동네사람들을 본 예수도 역시 그들처럼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게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을 외면하고, 바로 그 뒤의 기적이 주는 화려함에만 사로잡힌다. 하지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 이전에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한 모두의 측은한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린다. 오로지 사람만이 측은한 마음을 갖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비밀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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