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1990년대 중반 누구나 씨네필이던 시절.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고르고 있었을 때였다. 어떤 여성 분이 들어와 "혹시 미나 타넨바움 나왔나요?"라고 주인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처음 들어보는 작품인데, 안들어왔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두 분의 대화에 끼어들어 "미나 바넨타움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대여한 비디오를 들고 집에 돌아오며, 씨네필다운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 생각했겠지. '제목이 좀 헛갈리기는 하지.' 그 뒤로 내가 기억하는 제목인 <미나 바넨타움>이 틀린 제목이고, 그 여성분이 말한 <미나 타넨바움>이 맞는 제목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는 잊지 못하는 기억이다. 여전히 잊지 못하는 부끄러움이지만 그 뒤로도 이런 기억은 여전하다. 출근길 성수동 경수초 옆 좁은 길이 있다. 누가 봐도 일방통행처럼 보인다. 그 길에 반대방향에서 택시가 들어왔다. 한쪽으로 비켜주고 창을 내려 기사에게 웃으며 "이쪽 일방이에요."
알고 보기 그 길은 보행로 공사로 좁아졌을 뿐 일방통행로가 아니었다. 아 다행이다. 그 때 화를 냈으면 얼마나 창피했을까.
2015년 경향신문에 컬럼 '별별시선'의 필자로 참여할 때 '아니, 그게 아니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당시 맨스플레인(mansplain)의 사례를 접하고, '참 답답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왜 잘난 척을 해. 리어왕의 그 유명한 대사를 빌리지 않더라도,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뒤 새벽 장례식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했다.
“우회전해야 하는데 똑바로 갔어. 저기서 돌려서 가자.”
나는 내비게이션을 제대로 보고 있었고, 시킨 대로 운전을 했을 뿐이었다.
“아니, 여기로 가라고 했어."
"지나온 사거리에서 용인 방향이라는 이정표를 봤는데….”
순간 내가 틀린 건 아니지만 내 말대로 우겼다가 오래 걸리면 나한테 짜증낼 게 분명하니까. 입을 다물고 차를 돌렸다. '이 길이 아닌게 확인되기만 해 봐라',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맞다고 한 지나친 교차로에 가서 좌회전을 해 국도에 올라섰다. 익숙한 길이 나왔다. 내가 가야 하는 국도였다. 아내의 지적이 맞았다. 어색하게 웃으며 다른 말을 꺼냈다.
우리 집은 지하수를 쓰는데, 펌프를 고쳤는데도 지하수가 잘 안 나왔다. 한여름에 물을 제대로 못 쓰는 건 큰 고통이었다. 아내는 인터넷을 한참 뒤져보더니, “혹시 센서가 망가진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대답했다. “아니.” 아내는 “또 아니라고 그러네”라고 싸늘하게 말했다. 아내의 예상대로 '센서'의 문제였다.
아내는 나와 의견이 대립할 때 “당신은 왜 내가 말하면 일단 아니라고 해”라고 물는다. 나는 “아니, 내가 언제 그렇게 말해”라고 대답한다. 아내가 “또 아니라고 그러잖아”라고 지적한다. 대화는 별 진전이 없다. 내심 자상한 혹은 여성주의적인 남편인 척 속으로 ‘그래. 아내의 말은 무조건 맞다고 하자’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7년 전 '아니, 그게 아니라'라는 컬럼을 쓰면서 반성했다.
여전히 아내의 말에 “아니”라고 대답한다. 길은 내가 더 잘 아니까, 그건 다 해봤으니까, 맞다고 대답하면 해야 할 일이 생기니까, 귀찮으니까. 심지어 그냥 버릇처럼. 참 고약했다. 그 뒤 의식했지만 여전히 대화할 때 “아니, 그게 아니라”라는 단어가 먼저 나왔다.
여전히 '아니, 그게 아니라'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도대체 내가 뭘 얼마나 안다고 그러는 걸까. 얼치기 씨네필 때도, 아내와 일상 생활에서도, 심지어 길을 비켜가는 택시 기사에게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뿌리 깊은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
( <미나 타넨바움> 분명 본 것 같은데 한 장면도 생각이 나지 않네. 어쩌면 난 심지어 보지 않은 작품으로 아는 척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기도하는 심정으로 '나는 모른다'를 외치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