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에 구글(Google)에서 회사의 로고를 변경했다고 공식 발표를 했었습니다. '바뀌기 이전이 예뻤다' 혹은 '바뀌고 나니 이제야 좀 IT회사 같은 느낌이 든다'라는 등 호불호가 여러 가지 모양새로 갈리는 듯했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디자인적인 요소 및 심미적인 부분은 떼어두고라도 이전의 로고가 사라졌음이 여러모로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디자인 및 예술계에서는 왼쪽의 이전 로고에 사용된 폰트(font)를 세리프(serif)체(typeface), 오른쪽의 변경된 로고에 사용된 폰트를 산세리프(Sans Serif)체라고 합니다. 위의 이미지에서 짐작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세리프란 글자의 끝부분에 뾰족한 삐침이 있는 부분을 일컫습니다 (프랑스어 'San Serif'는 '획의 삐침이 없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Times New Roman', 'Georgia' 같은 글자체를 두고 세리프 체(體, typeface)라고 하고, 'Arial', 'Helvetica', 'Gotham' 같은 글자체를 두고 산 세리프 체라고 합니다.
특정한 글씨체가 아니라 전체적인 스타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렇듯 Serif, San Serif가 균형을 이루고 있었고, 그 안에 다양한 스타일들의 글자체가 존재했습니다. 그것이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촌스럽게 보이거나, ‘이거 어디 영 쓸모 있겠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세련되지 못한 글자체도 누군가에게는 요긴하게 쓰였기 때문에 별도의 글자체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세리프 글씨체는 온데간데없이 모두 사라져 버린 듯합니다. 위에 언급한 구글의 로고도 그렇고, 웬만한 회사들, 브랜드들의 로고를 보면 대부분 모두 산세리프체를 사용합니다. 물론 두께의 차이, 간격의 차이 등 전체적인 모양새가 각기 다른 감성을 이끌어내지만, 글씨체가 주는 큰 범주의 감성은 대부분 유사합니다.
통상적으로 Readability (가독성 :쉽게 읽히는 정도)가 글자체를 선택하는데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하지만, 사실 감성을 전달하는 수단의 하나로도 굉장히 유용합니다. 아주 어렸을 적 학교 다닐 때 글씨 잘 쓰는 친구들을 보면 왠지 깔끔하고 주변 정리정돈을 잘하고 심지어 공부도 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비슷한 감정 전달 효과의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리프 체가 전달하는 감성과 산세리프가 전달하는 감성도 다릅니다. 세리프 체는 ‘보수적, 전통적, 세련된, 우아한, 경험이 많은’ 느낌을 전달합니다. 아직도 많은 고가의 명품 브랜드들이 세리프 체를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산세리프체는 ‘미니멀함, 모던함, 도시적인, 간결한, 젊은’ 느낌을 전달합니다. 많은 IT회사, 하이테크 이미지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산세리프체를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현대인의 삶은 스마트폰으로 시작되고 스마트폰으로 끝날만큼, 모든 것들이 손가락 하나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기능들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실시간으로 연결되어있고, 사용자에게 조금의 불편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회사들의 경쟁 덕분에 우리는 이전보다 ‘꽤 편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이렇게 미니멀해진 생활로 우리가 내쫓기듯 몰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군더더기 없는 삶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삶- 마치 산세리프체 같은 삶을 살다 보니, 삶은 편리해졌을지 모르겠지만 세리프 체가 주던 낭만은 많이 사라진 느낌입니다. 그래서 IT회사인 구글이 사용했던 세리프 체는 마치 ‘낭만 있는 글로벌 테크 컴퍼니'를 꿈꾸기에 충분했던 메타포였었는데, 그것이 이제는 사라져 버리니 굉장히 쓸쓸한 마음이 혼자 들었습니다.
마음에 아직 빠르고 곧은길이 아닌, 비록 불편하고 먼 길로 돌아가지만 주변 경관을 둘러볼 수 있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굽은 산길 같은 낭만이 남아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