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10. 데이비드 흄

by 박제원

정리본을 너무 무성의하게 옮긴 것 같아 짧게 요약만 남기겠다. 관념은 인상에서 나오는 것이며, 본유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인과는 필연적이지 않다. 그동안의 인과에 대한 관념은 모두 경험과 상상, 착각에서만 비롯된 것이다. 귀납적 추론은 습관과 우연에 의거한 불완전/불합리한 추론에 불과하다. 이성과 진리 역시 믿을 수 없다. 인상과 관념의 생생함의 차이로 지식과 믿음과 상상이 구별되기 때문이다. 자아와 인격은 경험할 수 없으므로 실재가 없으며 정신은 결국 지각의 다발일 뿐이다. 그렇다고 오성이 만능인 것은 아니며 감관 역시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그의 회의주의로 하여금 그동안의 형이상학이 해체되고 칸트가 잠에서 깼다.


0. 로크와 버클리

흄과 함께 영국의 경험론을 구성하는 주요한 철학자는 로크와 버클리가 있다. 먼저 로크부터 알아보자. 그는 생득관념, 즉 본유관념을 부정하였다. 정신은 경험에 의해 구성되며 경험은 감각(단순관념)과 반성(복합관념)으로 구성된다. 대상은 제 1성질(구성요소)와 제 2성질(관념을 만드는 내부의 힘)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감각과 성질은 실체에 몸을 의탁한다. 신의 관념은 단순관념에서 추론할 수 있으며 지식은 감각과 논증, 직관을 거쳐 확실해진다.


버클리는 "존재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는 경구를 남겼는데, 우선 모든 사물은 우리가 감각하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보았다. 실체니 인과율이니 하는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용어들을 모두 부정하고 감각할 수 있는 성질들만 진짜라고 여겼으며, 내가 감각할 수 없는 세계에도 물체가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 신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망상과 같은 가상적 관념은 유한한 정신에서, 체계와 정신의 외부와 같은 지각되는 관념은 무한한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1. 인식론

지각은 인상과 관념으로 나뉘는데, 인상은 단순히 지각되는 것, 관념은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관념의 원인은 인상이며, 말하자면 인상의 반영이 곧 관념이다. 본유관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감관을 통해 들어온 것은 감각의 인상 - 반성의 인상 - 관념의 순으로 위치한다. 생동성을 가진 인상을 기억, 생동성이 없는 인상은 상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상상력으로 하여금 관념이 다른 관념으로 나아가게 하는 성질에는 비슷함, 시간과 장소의 이웃함, 인과관계가 있다. 복합관념은 관계와 양태와 실체로 나누어진다. 관계에는 비슷한 성질, 동일성, 시공의 관계, 양과 수, 성질, 상반성, 자연적 관계가 있다. 양태 관념, 특히 실체 관념은 단순 관념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상에서 비롯되어 상상력으로 하나 된다.


모든 대상은 서로 구별 가능하고 구별 가능한 대상은 서로 다른 것이다. 모든 심상은 개별 대상에 관한 것인데, 관념이 본질을 넘어 사용될 수 있는 이유는 이름이 지어져 하나의 대상이 되기 때문인데, 그러나 실제로 개별 대상이 정신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습관적으로 개별대상을 뛰어넘는 관념을 표상하지만 아무튼 정신은 개별관념을 표상한다. 일반관념은 환상일 뿐이며, 이것은 개별관념이 습관에 의해 일반화된 것이다.


감관의 오해로 우리는 착각을 하며 정신의 근원과 본성에 따라 감관과 지각의 한계가 정해진다. 어떤 사물을 끝없이 나눌 수 있다는 관념은 정신의 한계로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나뉠 수 없다. 우리는 지각의 연속적 계기로 하여금 시간관념을 인식할 수 있다. 존재의 증거는 관념과 인상에 대한 의식이다. 외부 대상은 지각에 의해서만 표상될 수 있다.


의지와 신념은 인상과 관계된 관념이다. 인상이 힘과 활기를 얻으면 관념이 된다. 또한 유사성으로부터 관념이 발생하며 어떤 대상의 실재적 현전은 정신이 집중하게 만든다. 신념은 딱히 관념에 무언가를 추가하지 않으며 단지 방식을 변화시킬 뿐이다. 신념은 모두 습관에서만 비롯되며 개연적 추론은 하나의 감각일 뿐이다. 연관된 대상에 대한 기억이나 감관은 정신을 그 대상으로 옮겨가게 하며, 상관하는 것을 표상시킨다. 실재란 기억이나 감관, 혹은 인과적, 경험적 판단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이것을 믿는 것 역시 그저 관념에 불과하다.


귀납적 추론은 확증이 없으므로 개연성이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인식을 지식과 실증, 그리고 개연성으로 분리해 볼 수 있다. 우선 지식이란 관념의 비교에서 발생하는 확증, 실증이란 인과에서 유래하는 논변, 개연성은 불확실성을 수반하는 명증성이다. 개연성에 기반한 추론은 각각 우연에 기초한 것과 원인에 기초한 것이 있다. 인과의 관념은 경험이다. 반대로 우연의 관념은 원인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인과성과 반대다. 우연은 원인을 통하여 개별적 대상을 개별적으로 바라보려는 사유의 결정을 부정하고, 정신을 무차별로 복귀시킨다. 따라서 이러한 무차별이 우연의 본질적 속성이며, 우연끼리는 필연성이 없으므로 우열이 성립하지 않는다. 우연이 사유나 상상력에 미치는 원인으로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정신의 원인과 결과의 관념을 생성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과로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을 우연으로 판단함으로써 개연성과 가능성을 무차별성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 우연적 사건이 정신에 주는 충격들의 상반성과 생동성이 있다. 따라서 귀납에서 비롯된 인과는 우연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추론에는 확증이 없다. 또, 버릇으로 추론되는 유비의 개연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경우 추론은 두 대상의 향상적 결부 혹은 유사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완전히 유사하지 않으면 생동성과 신념, 그리고 합일의 항상성이 약화된다. 그러나 물론 유사성의 정도의 차이는 허용된다.


회의에는 4가지의 종류가 있다. 제 1의 회의는 대상에게 내재하는 근원적 불확실성이고, 제 2의 회의는 약해진 판단기능이며, 제 3의 회의는 오류의 가능성, 4의 회의는 불확실성의 증가로 인한 개연성과 명증성의 약화이다. 감관과 이성, 신념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감관은 대상과 심상의 합일인데, 대상에게 독립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거짓을 전달하기 때문에 감관의 오류가 나타난다. 그리고 혼동은 다른 기능에서 비롯된다. 바로 상상력이다. 독립성과 존재성은 인상의 성질이며 상상력의 성질이다. 존재성을 부여하는 속성은 항상성을 가진다. 이 항상성은 정합성을 가진다. 경험을 통해 상황을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과거와 현재의 대상의 현상을 연관 짓는 것이 정합성이다. 근데 이 정합성과 인과추론은 서로 다른 것이다. 지각의 정합성은 다른 습관을 만들지는 못한다. 지각을 넘어서는 추론, 즉 항상성을 만드는 습관은 정신의 제일성에 대한 관찰과 지각의 항상성에서 유래한다. 지각이 끊어졌다 돌아와도 같은 존재라고 여기려면 실재성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념과 항상성 유지의 본질인 표상작용의 힘과 생동성의 정당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원리가 필요하다. 우선 동일성의 원리. 즉 시간관념을 불변하는 대상에 적용하는 것은 상상력의 허구에 의한 것이나 동일성을 제공하며, 또한 대상이 다른 두 시점에 존재한다고 표상하는 것 역시 동일성을 제공한다. 두 번째로 단절된 지각의 유사성. 즉 지각의 항상성이 시각에 동일성을 부여한다. 이로서 상상력에서 관계들과 관념을 부여한다. 세 번째로 지속적 존재에서 비롯된 현상들을 힙일하는 성향. 즉 감각의 단절에서 비롯되는 모순에 대한 당혹감을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 존재라는 허구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동일성에 대한 신념의 출처. 신념은 관념의 생동성에만 존재하며, 인상과 관계로서만 현전한다. 이른바 관계의 원리. 그렇게 함으로써 인상에서 관념으로의 이행에서 생동성과 성향을 제공하며 이것이 바로 표상작용의 힘과 생동성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은 구별 가능하며 구별 가능한 것은 상상력에 의해 분리가 가능하다. 모든 지각은 서로가 구별되는 것이므로 지각은 실체다. 하지만 실체는 지각과 다른 것이고, 우리는 실체에 대한 관념을 가지지 않는다. 연장은 부분을 가지므로 분할이 가능한데, 그러나 이 분할은 하나의 사유나 지각에 결합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유나 지각은 구별 및 분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영혼이나 물질은 공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있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즉 이데아와 같은 대상은 존재가 가능할지언정 그것이 공간과 지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단지 공상과 이성에 의하여 그러한 대상의 존재가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연장이라는 것은 인상과 일치해야 한다. 물질은 양태가 아닌 실체이며, 그 부분 역시 양태가 아닌 독립적 실체이다. 인과의 필연적 결합에 대하여 우리는 관찰할 수 없으며, 항상적 결부로는 우리는 지식을 얻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최고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우리는 그 존재를 오로지 인상으로만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신의 존재란 오로지 물질이 스스로 운동과 사유를 전달할 수 없음에서만 그 존재성이 요구된다. 선험적 관념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2. 인과성에 대한 비판

관계의 기초는 인과성에서 비롯하는데, 인과성이란 인접성과 계기, 그리고 필연적 연관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원인을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존재물에는 무조건 존재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의 철학의 근본원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생산적 원인없이도 언제든지 존재하기 시작할 수 있다. 존재와 원인은 분리 가능하며, 원인은 필연적이지 않다. 인과의 관념은 독립적이고, 독립 관념은 모두 분리될 수 있다. 또한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원리로 가지지도 않는다. 모든 사물이 각각의 원인을 가질 수는 없다. 즉 1원리 – 1결과는 불합리한 편견인데, 이것은 경험과 관찰에서 추론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그렇기에 자연법칙을 필연이라 착각한 것이다.


인과의 새로운 관계로 원인과 결과의 항상적 결부라는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항상적 결부를 뛰어넘어 개별 실례의 영역 밖으로까지 경험을 넓히는 것을 이성을 통해서 납득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신이 인과를 추론하는 것은 오롯이 관념들의 합일, 즉 상상력에 의하여 발생한다.


습관에 의하여 관념에 생기가 생기면서 정신에 영향을 주는 것, 그리고 경험에서 비롯된 대상들 중 하나가 인상으로 출현함으로써 관념으로 전이되는 것으로 볼 때 인과 관계가 그릇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이러한 잘못된 의견들 중 대다수가 교육에서 유래한다.


원인들의 개연성은 인상에 대한 관념의 연합, 즉 습관에서 유래한다. 개연성으로부터 증거에 이르기까지 판단을 거쳐 우리는 확증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여러 열등한 정도를 거치기에 불완전한 것이다. 그리고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갖게 되는 경험은 불완전한 것이기에 우리의 경험과 관찰은 상반성이 생기게 된다. 즉 개연성의 종류는 두 가지, 불완전한 습관과 상반성이 있다는 것이다. 상반된 결과를 판단할 때, 우리는 과거의 경험으로만 판단하게 되는데, 이것은 습관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며, 이것이 상반되는 것이라면 파편화된 심상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된다.


인과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 첫 번째로 인과성의 이유를 제공하는 것은 결론 또한 불확실한 것이므로 그 자체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둘째로 과거에서 미래로 전이하는 것이 오직 지성의 결론만을 기초로 한다면 그것은 신념과 확증의 원인이 될 수 없다. 확증은 신념에서 관념을 추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이 결정된 대상을 제시하는 일은 없다. 인과는 습관의 오류이며, 필연성은 대상이 아닌 정신에 존재하는 것이다. 원인이 그저 선행과 인접으로서만 놓인다고 정의한다면, 필연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의 추론은 인과성, 즉 경험된 대상들의 결부에서 유래하는데, 경험에 대상에 개념을 제공하며 따라서 우리는 완전한 지식이 아닌 존재를 믿는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


이로서 인과를 부정하고 원인을 다시금 정의하지면, 원인이란 '선행하고 인접하며 유사한 것‘, 혹은 ’앞서 인접하며 합일되어 관념을 형성하도록 정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3. 물체와 인격의 동일성과 지속성

아무튼 동일성은 상상력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지속적 존재의 허상이다. 기존에는 지각이란 독립적이고 지속적인 존재를 갖지 않는다고 보았다. 대상은 지속적이고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각은 우리의 유일한 대상이다. 이중존재를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존재에서 존재를 이끌어내는 것은 인과관계이며 이것은 지각과 경험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인과는 지각 사이에서만 확인된다. 상상력에서도 마찬가지로 지각은 우리의 유일한 대상인데, 사유는 지속적 존재를 인정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으므로 이 부조리로 하여금 지각과 대상이라는 이중 존재가 생겨난다. 그리하여 상상력을 통해 지각에 존재성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기존 철학체계의 공상은 외부대상과 내부대상들의 유사성에 대한 공상과, 대상과 지각이 닮았을 것이라고 인지한 것에 대한 공상이 있다. 이는 모두 지각의 항상성과 정합성에서 유래한다. 물체에 관한 관념은 감관으로 비롯하는 여러 관념에 대해 정신이 행한 집합으로서, 동일성을 계기에 귀속하는 오류이다. 만약 실체와 실체적 형질을 동시에 갖는다고 가정하면 이것들을 통합시켜 줄 분유적 주체가 요구된다. 따라서 정신에서 분리되어 원인이나 작용인의 관념이 우리에게 없다는 결론 대신 작용인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결론을 고대 철학자들은 행한 것이다. 또한 인과와 우연 역시 상상력의 산물이다. 사물의 속성은 그저 지각일 뿐이며, 실재적이고 지속적인 독립적 존재를 가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아는 지속성과 동일성을 지닌다고 주장되어 왔지만, 이는 경험과 상반되는 것이며, 우리는 자아의 관념을 가질 수는 없다. 인간이란 결국 서로 다른 지각의 다발이며, 정신에 단순성이나 동일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성은 관념의 연합이며 정신은 서로 다른 지각과 존재의 한 체계이다. 기억만이 지각들의 계기와 범위를 알려주므로 인격의 동일성의 원천으로서 간주되지만, 기억할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하므로 결국 인격의 동일성의 이유는 제시할 수 없다.


읽은 책들

새뮤얼 이녹 스텀프,『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열린책들 (2008)

데이비드 흄, 『인간이란 무엇인가오성 정념 도덕 本性論』, 동서문화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