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비평 4. 백 년 동안의 고독

스피노자 사상으로 해석한 마꼰도의 의지와 운명, 그리고 고독

by 박제원

1. 서론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마꼰도라는 가상의 마을과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를 통해 인간 존재와 고독의 문제를 탐구한 작품이다. 현실이 환상이 되고, 사건이 신화가 되며, 미래가 과거가 되는 복잡한 서사 구조 속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현실을 은유한다.


작품에 연이어 등장하는 환상과 상징은 단순한 상상적 장치가 아닌, 작품 세계의 존재론적 구조, 나아가서 마르케스가 바라본 인간과 사회의 현실과 연관된다. 반복되는 운명과 순환하는 시간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는 알 수 없는 구조적 필연성을 연상시킨다. 또한 그럼에도 각각의 삶을 전개하는 등장인물들의 투쟁은 그 자체로서 삶의 의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점은 자연의 필연성과 인간 행위의 결정성을 강조한 스피노자의 철학과 흥미로운 접점을 형성한다. 스피노자에게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양태이며, 인간의 삶 또한 정념과 인식의 정도에 따라 필연적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물은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고자 노력한다.


본 글은 이러한 관점에서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즉 마꼰도의 운명과 부엔디아 가문의 의지를 스피노자의 존재론과 인간 이해의 틀로 하여금 해석함으로써, 이 작품에 나타나는 고독과 필연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려 한다.


2. 본론

2-1. 마꼰도의 흥망성쇠

이 작품은 오랜 기간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를 마치 대하소설처럼 늘어놓는다. 환상적으로 반복되는 시간의 구조는 인물들의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육체적이고 충동적인 특징을 가진 ‘호세 아르카디오’라는 이름의 인물과 고독하고 사색적인 특징을 가진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의 인물이 세대를 거듭하며 등장한다. 이 마꼰도의 서사를 한 세대를 각 문단에 배정하여 요약하겠다.


최초로 마꼰도를 개척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이야기로 서사는 시작한다.(이야기 자체는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그의 아내 우르술라는 그와 사촌 관계이다. 그러나 근친혼으로 돼지 꼬리를 지닌 기형이 태어날 수 있다는 소문에 성관계를 거부하고, 이 소식을 들은 프루덴시오라는 인물이 아르까디오의 남성성을 조롱한다. 이에 아르까디오는 그를 살해한다. 하지만 프루덴시오라는 인물의 유령이 아르까디오의 주변을 배회하기에 새로운 정착지를 찾다가 마꼰도라는 마을을 개척한다. 이후 멜키아데스라는 괴짜 과학자와 만나 연금술과 과학 등에 집착하게 된다. 집착은 광기로 변하여, 결국 그는 우르술라에 의해 나무에 묶이게 되고, 그곳에서 사망한다. 그의 아내 우르술라는 100년은 족히 되는 기간 동안 부엔디아의 가문을 지탱한 인물로, 금전적이든 도덕적이든 가문원들의 폭주를 막아가면서 가문을 지키려 했다. 너무 오래 살다 보니 결국 치매와 실명을 겪고 몸이 자그마하게 쪼그라든 채로 사망한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아들로 호세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대령, 그리고 딸 아마란타가 있다. 호세 아르까디오는 필라르라는 여자와 사생아 아르까디오를 낳는다. 그 후 부엔디아 가문에 입양된 레베까(즉 동생)과 결혼한다. 이로 인해 아마란타와 갈등이 폭발하고, 어느 날 집 안에서 홀로 총에 맞아 죽는다. 총성은 들리지 않았고, 피는 마을을 가로지른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은 마꼰도에 파견된 정부 관리의 딸 레메디오스와 결혼하지만, 그녀는 매우 어린 나이에 죽는다. 이로 인해 그는 혁명군에 참여하고, 눈부신 전과를 쌓는다. 그리고 여러 여자와 17명의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이 17명은 어느 날 거의 동시에 다들 암살당하고, 공허해진 대령은 일평생 금으로 물고기를 만들며 고독하게 살아가다가 아버지가 죽은 나무 밑에서 사망한다. 아마란타는 피에트로라는 음악가를 두고 레베카와의 연적관계였으나, 일련의 사건 후 피에트로를 거부함으로써 그를 자살하게 만들고, 평생을 고독하게 살다가 스스로 죽을 날을 예언한 후 수의를 만들고 정해진 날에 죽는다.


호세 아르까디오의 사생아 아르까디오는 사생아라는 이유로 고독하게 자란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필라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전쟁을 위해 떠나면서 아르까디오에게 통치를 맡기자 그는 마꼰도의 독재자가 된다. 하지만 그는 보수당의 군대에게 잡혀 총살당한다. 총살당하는 순간에도 그는 필라르를 떠올린다. 그의 자녀로 미녀 레메디오스와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있다.


미녀 레메디오스는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기에 뭇 남자들을 홀리고 다녔다. 그러나 그녀에겐 백치 같은 면모가 있어 사회 규범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마당에서 빨래를 널다가 하늘로 떠올라, 그대로 하늘로 사라진다.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쌍둥이로, 이름과 반대되는 행보를 보임으로서 어린 시절 서로 몸이 바뀌었음이 암시된다.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는 바나나 공장 파업에 참여했다가, 집단 학살의 광경을 목도하고, 정신이 나간 채 은둔한 채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를 해독하면서 삶을 보내다가 쌍둥이와 동시에 죽는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페트라라는 여자와 페르난다라는 여자 사이에서 두 집 살림을 차린다. 페트라의 집에서 이유 없이 부자가 되었다가 이유 없이 돈을 잃는다. 온갖 고생을 한 끝에 쌍둥이와 동시에 죽는다. 그리고 관이 뒤바뀌어 다시 원래의 이름으로 돌아간다. 페르난다는 부엔디아 가문을 경멸하며 오만하게 살다가 타인의 존재를 그리워하며 고독하게 죽는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페르난다 사이에서 호세 아르까디오와 레나타 레메디오스 - 속칭 ‘메메’ - , 그리고 아마란타 우르술라가 태어났다.


호세 아르까디오는 엄격하게 훈육되며 자라났다. 신부가 되기 위하여 로마로 유학 갔으나 타락한 생활을 하며 돈을 탕진한다. 부모가 죽은 뒤 마꼰도로 돌아온 그는 1세대 우르술라의 금화를 발견하고, 소년들을 불러들이며 문란하게 살다가 소년들에게 살해당한다. 메메는 바나나 회사 정비공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와 사랑에 빠지지만, 어머니 페르난다에 의해 그는 하반신 마비가 되고, 메메는 수녀원에 갇힌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임신 중이었다. 아마란타 우르술라는 부자 남편과 함께 마꼰도를 다시 일으키고자 하며 메메의 아들 아우렐리아노와 사랑에 빠진다. 작품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사랑임이 암시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남편이 떠나가고, 홀로 출산하다가 고독하게 죽는다.


메메의 아들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로 자랐다.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를 해독하고자 하는데 긴 시간을 들인다. 그는 아마란타와 근친 관계를 맺으며 아이를 낳지만 아이는 개미의 먹이가 된다. 아들이 죽은 후에야 그는 양피지를 해독해 내지만, 양피지의 내용은 '백 년의 고독을 운명으로 타고난 가계는 두 번 다시 이 지상에 출현할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였고, 그렇게 마꼰도는 바람에 휩쓸려 사라진다.

바빌로니아의 아들인 아우렐리아노는 근친의 증거인 돼지 꼬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이미 죽은 어머니의 배에서 죽은 채로 태어난 그는, 개미굴로 끌려 들어가며 고독하게 사라진다.


2-2. 코나투스와 자유

호세 아르까디오의 살인과 근친은 마꼰도의 원죄였으나, 그럼에도 부엔디아 가문의 일원은 생존의 의지를 안은 채 살아갔다.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의지와 운명은 이항대립적인 요소다. 자연과 신에게서 마저도 의지를 거세한 그의 사상이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신에게서 분유하는 가장 사소한 사물과 생명들에게는 지속을 위한 의지를 부여하였다. (아무래도 성서의 신보다는 실체와 존재를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자로 판단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그의 철학에서 사물은 모든 것을 신에게서 분유하는데, 신은 스스로를 파괴할 능력을 가지지 않으므로 마찬가지로 사물 역시 스스로를 파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원인에 의해서만 사물은 파괴될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고자 노력한다. 자기 보존을 위하여 이타성과 동정, 연민이 작동한다. 이때, 이 노력이 신체에도 작용하면 그것은 그저 충동일 뿐이며, 오로지 정신에만 작용할 때 그것을 코나투스라고 부른다. 정념에서는 기쁨이 곧 존재 능력의 증가이며 슬픔이 감소라고 보았으며, 또 코나투스를 능동과 수동으로 나누어 수동적으로 행위하는 이는 자유롭지 않으며 본성에 따라 행위하는 이를 자유롭다고 보았다. 이때 자유란 자유의지가 아닌, 본성의 필연에 따른 행동을 의미한다. 자유를 위해서는 이성에 따라 행위하고, 필연성과 질서를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제 우리는 이를 도식화하여, 『백 년 동안의 고독』 속에서 의지조차도 갖지 못한, 정념적이고 수동적인 인물, 의지를 갖추었으나 정념의 지배를 받는 인물, 의지와 이성을 두루 갖추어 자유에 가까운 인물을 파악할 수 있다.


정념적이고 수동적인 인물로 5세대의 호세 아르까디오를 들 수 있다. 그의 행보는, 독자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의 시각에서는 최악의 행보를 보여준 인물로 생각된다. 그는 이타성, 의지, 이성 그 어느 것도 갖추지 않은 인물이다. 어떤 노력도 없이 부를 물려받고, 그 부로 가족의 믿음을 저버리고 문란하고 타락한 생활만을 하다가 그대로 사망한다.


의지를 갖추었으나 정념의 지배를 받는 인물은 이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일단 이 책 전반부의 실질적 주인공인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있다. 가치판단이야 차치하고서라도 레메디오스를 사랑했으며, 비도덕과 부패에 맞서 전쟁을 일으켜 싸웠다.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반발하며, 독립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고 전장을 누볐다. 그러나 그의 행위의 동력은 증오와 집착이었다.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의 욕구를 그는 이해할 수 없었고, 아들들의 잇따른 사망과 정념의 연쇄 끝에 파멸한다. 그는 강한 의지를 갖추었을지언정 정념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령 이외에도 수많은 인물이 정념의 지배를 받았으며 도덕성을 상실한 인물이었다.


그나마 의지와 자유를 갖춘 인물로는 1세대의 우르술라가 있다. 그녀는 부엔디아 가문의 유지와 경제 운영, 공동체의 안정 등의 역할을 평생 수행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는 존재의 보존과 의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실천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전쟁이나 살인, 유흥 등의 정념에 비교적 휩쓸리지 않았다. 비록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근친혼을 함으로써 가장 직접적인 원죄를 쌓기야 했지만, 그녀는 이 가문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인물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다른 말로 하면 그녀를 비롯한 일부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사실 그녀를 포함한 모든 인물이 극심한 정념의 지배를 받는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2-3. 운명, 필연, 고독

마꼰도의 몰락은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프루덴시오를 살해한 순간부터 운명 지어졌다. 즉 원죄를 가지고 낙원에서 쫓겨나 마을을 건설한 순간부터 이곳은 필연적으로 정죄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거듭되는 근친혼과 불륜 등의 행위는 업보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행위다. 아담이 낙원으로부터 쫓겨난 이래로 예수가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이스라엘처럼 수많은 죄를 행한 셈이다. 그리고 이 가문에 예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꼰도는 라틴아메리카의 메타포다. 외부와 단절된 원시 공동체가 외부 세력의 유입과 근대화로 인해 급격한 충격을 받고 반복되는 내전을 거친 후 과거를 망각하는 이들의 행보는 라틴아메리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1세대의 살인과 근친은 그저 죄의 상징일 뿐이다. 정량적인 죄의 총량으로만 보면 어떻게 서방세계의 죄에 비할 수 있겠는가. (혹은 서방세계 역시 마찬가지로 비참하게 사라질 것이라는 암시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마꼰도가 바람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은 정죄와 벌의 시각이 아닌, 존재의 상실과 망각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겠다. 물론 해석이야 어찌 되었든 각 인물은 도덕과 거리가 먼 행동을 함으로써, 의도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마꼰도의 몰락에 기여하거나, 적어도 벗어나지 못한다.(외국에서 귀국하는 한이 있더라도!)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운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계승한다. 모든 것에는 인과관계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의 원인에는 신이 있다. 신은 분할할 수 없는 단일 실체로서, 모든 것이 신 안에 있다. 즉, 신이 곧 자연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필연이다. 혁명군의 영웅 아우렐리아노 대령이든 학살의 고발자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든, 의지와 자유에 기반하여 그 어떤 위대한 행위를 하더라도 결국 자연을 이길 수는 없다. 운명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자연의 속박과 증오, 집착의 연쇄에 묶인 이들은 정념의 지배를 받게 된다.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타인과의 관계에 더 원만하고 이타적이며, 그렇지 않은 이들이 오히려 더 각자도생으로 살아간다. 이성과 도덕을 멀리 할 때, 인간은 자유를 잃으며 필연적 고독을 마주한다. 작품에서 5세대와 6세대간의 합일을 통하여,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마란타 우르술라와 아르까디오 바빌로니아의 근친이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맺어진 진정한 사랑이었고, 이마저도 비도덕적인 것이었다. 정욕과 근친과 살인으로 하여금 정념에 지배당한 이들로 인하여 공동체는 붕괴하고 고립됐다. 그리하여 마꼰도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을 겪은 끝에 모래바람에 휩쓸려 사라진다.


3. 결론

시간은 순환하며 역사는 반복된다. 살인과 근친으로 시작된 마꼰도는 백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살인과 근친으로 얼룩져, 그 마지막까지 그 얼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파멸했다. 의지 없이 정념에만 사로잡힌 인물, 의지를 갖추었으나 정념을 이겨내지 못한 숱한 인물들을 살펴보며 우리는 마꼰도의 파멸의 역사를 지켜보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하지만 위대한 풍자가이기도 하다. 마꼰도의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라틴아메리카, 나아가 세계 전체의 알레고리로 해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부엔디아 가문 역시 인간 일반으로서 해석할 수 있다. 도덕이 황폐화된 세계 속에서, 종교를 무시하더라도 그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죄악을 피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는 남의 고통과 슬픔에 기반해 살아간다. 무죄한 현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문학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의 흥망성쇠와 인간 역사의 순환, 망각을 하나의 우화로 표현한 『백 년 동안의 고독』과, 운명과 이성, 정념을 담은 스피노자의 철학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나아가 문학과 철학, 혹은 그 외에도 사학과 미학 등 인문학 전반은 인류의 삶에 있어서 고독에서 벗어나 화합의 길로 들어서는 데 큰 도움이 될 귀중한 이정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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