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아 NONE Design Apr 11. 2021

디자이너가 수정을 피하는 방법

D 자이너 (Designer 이야기)

수정에는

내 네 번째 손가락 위에 있었으면 하는 이런 수정
근항 궁금한 이런 수정22
조금 멀리 갔다 싶은 이런 수정..


도 있지만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수정은


니가 사람이면 그만해라 진짜..


이런 수정이에요.


주제를 조금 비틀어서,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는 기분을 아시나요? 예를 들면


'밥 먹었어?'


상대의 안위를 묻기 위해 좋은 의도로 꺼낸 이 짧은 한 마디도


'뭐라고? 못 들었어'


가 반복될수록 말하는 심정이 바뀌더랬죠.


상황을 조금 더 해봐요.


상대방이 내게 질문을 하고 답을 요청합니다. 저는 받은 요청에 답을 하기 위해 한 시간 자료를 찾아보고 두 시간 설명을 해줘요. 이때 답이 끝난 후 돌아오는 말이

'내 질문은 그게 아니었는데?' 라던가 '질문을 살짝 바꿔야겠어' 따위의 말이면 같은 마음으로 답을 준비하고 설명을 해준다는 게 가능할까요?


경험자로써 말하자면 불가능입니다. 다시 해볼 수는 있겠지만 같은 마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거죠. 우리의 가슴 안에는 무뚝뚝한 배터리 대신 심장이 뛰고 있으니까요.


자 이제 이런 아름다운 상황이 회사에서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회사는 누구에게도 마냥 편할 수는 없는 공간이잖아요. 회사란 곳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무조건적으로 친해져야 하는 곳인 동시에 그 사람들과 애매하게 걸쳐진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숯불에서 방금 구워진 감자라도 만진 마냥 어쩔 줄 몰라하며 서로에게 떠넘겨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곳이 잖아요.

이렇게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곳에서 하지 않아도 될 업무가 마구잡이로 늘어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쯤 됐으면 불 필요한 업무(수정)를 줄이는 방법을 같이 한 번 찾아봐요.


1. 질문을 정확히 이해한다.


디자이너가 받는 질문은 '이렇게 해 줄 수 있어?' 같은 말의 형태가 아니라 기획자로부터 받는 '기획안'을 의미해요. 기획안을 받아 드는 동시에 우리의 업무는 시작됩니다. 그 과정은 앞서 말한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하게 진행돼요.


기획안 안에는 '키 카피', '서브 카피', '그 밖의 텍스트들', '의도', '느낌'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을 거예요.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의 완성도 있는 비주얼 안에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답을 찾아야 해요.


어떤 디자인을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비교적 간단한 SNS 등의 콘텐츠 디자인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 과정을 살펴보자면 제일 먼저는 비슷한 구성을 가진 선례들을 보면서 레퍼런스를 찾고, 디자인 기획을 시작할 거예요. 이 '의도'와 '느낌'을 표현하려면 이런 '레이아웃'과 '컬러'를 사용하면 효과적이겠구나. 각 텍스트들이 전달하고 있는 의미의 중요도를 살펴보니 이 정도의 위계를 갖는 게 적당하겠구나. 이렇게 큰 그림을 먼저 그려보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본격 적으로 답을 찾는 거죠. 찾아놓은 레이아웃을 적용해보고, 컬러를 입혀보고, 의도가 분명하게 표현되도록 그래픽 소스를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이 모든 것들이 한 데 어우러질 수 있도록 각각의 톤을 조절하고. 원하는 퀄리티가 나올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하겠죠. 그러고 나서 마침내 '답'이 나올 거예요.


다시 앞선 상황으로 돌아가서, 이 '답'을 질문자(기획자 혹은 클라이언트)에게 건네주자 그들의 입에서 '내 질문은 그게 아니었는데?' 나왔을 때 작업자의 심정이 이해가 되시나요?

  

 

예방할 수 있는 대참사는 막아야 합니다.


기획안은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느낌이 담겨 있는 문서예요. 차분히 대화하는 도중에도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 사람의 생각이 함축적으로 담긴 문서를 매번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누구인가? 누가 내 얘기를 하였는가?


기획안을 보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왕왕 등장합니다. 그때는 건조한 날 등산을 하다 작은 불씨라도 발견한 듯 그 불씨를 최대한 빨리 꺼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 작은 불씨가 저희의 몸과 마음을 어디까지 황폐시킬지 모르니까요.


그 불씨는 기획안을 보면서 '이게 무슨 말이지?' 혹은 '이렇게 하라는 게 맞나?'처럼 마음속에 작은 의문이 등장할 때 발화돼요. 이때는 주저 없이 기획안 작성자와 대화해서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질문을 살짝 바꿔야겠어' 같은 어마 무시한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때부터는 쓰나미나 홍수 같은 겁니다. 우리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들이죠.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산불 예방이라도 해야 하는 겁니다.


2. 닫힌 질문을 받고 있다면, 열어 달라고 요구한다


닫힌 질문은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밥 먹었어? 응.

일 재밌어? 아니.

회사 다니기 싫어? 응.


좀 더 나아가면 이런 거고요.

어서 얘기해봐 내 말이 맞아? 틀려? 네 말이 맞아..


기획안 중에는 가끔 모든 걸 다 정해 놓은 것들이 있어요. 질문이 제한적이다 보면 답변도 당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겠죠? 기획안 안에 구성된 것들이 지나치게 상세하게 짜여져 있거나 각 요소의 형태들이 이미 모두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의 결과물도 제한 적일 수밖에 없어요. 이럴 때도 역시 기획자와 논의하여 맞추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겁니다.


길게 썼지만 결국 이번 글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디자이너에게 수정이라는 것이 심적으로 얼마나 개탄스러운 것인지, 그것을 피하기 위해 기획자 혹은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 인지 하는 것이 었어요.


지금도 힘들고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니 힘든 것들은 서로 공감하며 힘을 주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들을 하나씩 터득해가면서 목표했던 것들이 이루어질 때까지 힘내 보기로 해요.





작가의 이전글 Notion 단축키 모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