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_ 『미각의 제국』, 황교익 지음, 따비 펴냄
조금 시들해진 것도 같지만, 여전히 ‘먹방’이 유행이다. 요리 프로그램이라는 장르를 유행시킨 케이블을 넘어 종편과 지상파까지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과 음식을 즐기는 이들 천지다. 이번에는 한물간 듯한 요리 관련 프로그램에 요리 프로그램 출연자의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숟가락을 한 번 얹어 보려 한다. 그 주인공은 황교익. 맞다. 몇 달 전 백종원표 요리에 대해 비판적인 인터뷰를 해 SNS를 화끈하게 달아오르게 했던 그 사람이다.
그는 tvN <수요미식회>에 출연하고 있는데, 음식재료의 역사를 설명하는 한편으로 재료가 품고 있는 기본적인 맛을 강조한다. 프로그램 안에서 ‘어린이 입맛’을 가진 방송인 전현무와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맛있다’와 황교익의 ‘맛있다’는 서로 다른 의미다.
어느 지역에서 생산한 쌀이 가장 맛있을까?
마트에서 쌀 포장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처럼 생산 지역의 이름을 브랜드로 만든 쌀이 많다. 벼는 작물이고,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을 테니 벼가 더 잘 자라는 지역이 있을 법도 하다. 포장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백이면 백 ‘○○지역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 예로부터 임금님에게 바쳐온 진상품’ 등과 같은 설명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다. 한국에서 화산토가 많아 물을 품지 못하는 제주를 제외하고 벼농사에 최적의 조건이 아닌 곳을 찾기가 어렵다.
그럼 어떤 쌀이 가장 맛있을까? 쌀 재배지, 재배 과정에서 투여한 비료의 종류 등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가장 확실하게 소비자가 맛있는 쌀을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도정 일을 확인하는 것이다. 쌀을 찧은 지 며칠이 지났는지가 밥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어제 도정했는가, 아니면 1달 전에 깎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도정 일이 밥맛을 결정한다. 황교익은 도정 일이 밥맛을 결정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벼는 생명체이고, 이를 도정한 쌀은 주검이다. 주검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 부패가 일어난다. 싱싱한 재료일수록 맛있다는 것은 쌀에서도 똑같다.”
간장게장, 게요리인가 장인가?
밥 도둑 하면 떠오르는 간장게장. 게딱지에 쌀밥 비벼 먹으면 밥 한두 그릇 뚝딱인 그 음식. 간장게장에서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게인가, 장인가. 책은 간장게장을 먹을 때는 ‘장’에 포인트를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간장게장은 꽃게가 간장에 투항한 음식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맛의 포인트가 꽃게에 있지 않고 간장에 있다는 것이다. 제철에 어획한 좋은 게를 장기간 숙성시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간장에 단맛과 다양한 향신료로 맛을 덮어내는 간장게장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컬러TV 보급과 함께 TV에서 선보인 양념을 과하게 한 ‘부잣집 김치’ 때문에 오히려 김치 맛이 나빠졌다는 지적, 신선하지 못한 고기 상태를 가리기 위해 설탕과 간장 양념으로 혀를 속이는 돼지갈비 등 우리가 모르거나 속아왔던 맛의 비밀을 알려준다.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알고 먹자
음식은 그 자체가 한 사회 집단을 둘러싼 자연환경과 사회적 환경, 그리고 역사가 응축된 하나의 문화다. 잘 알고 먹으면 더 맛있게 먹지 않을까. 살기 위해 먹기보다, 잘 먹기 위해 사는 분들에게 더욱. 황교익의 말을 들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그 김치가 쓰고 텁텁한지, 밥알이 곤죽인지 관심이 없다. 미식자입네 하며 유명 식당들을 두루 섭렵하면서도 진작에 그 음식 하나하나에 대한 관찰은 하지 않고 겉멋만 들어 있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하였다. 답은 단순한 데 있었다. 그들은 음식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늘상 먹는 음식이고, 가끔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즐기는 것과 음식을 관찰하고 공부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음식 책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불편하다. 음식과 맛을 다루지만 맛집 소개도 없고, 음식 만드는 방법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음식 사진조차도 없다. 그래도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음식과 음식재료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조금은 피곤하겠지만 공부하고 더 맛있게 먹자.
2015년 10월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 소식지 <날자꾸나, 민언련>에 보낸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