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치과 공부를 거의 마쳐가는 아들에게 공부가 어떠냐고 물어봤다. 대학교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가지고 치대학원을 시작한 아들이라 아카데믹한 공부는 좀 만만하게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학교에서 처음으로 본인을 쩔쩔매게 만든 과목을 접했다 한다. 이름하야 “DENTAL ANATOMY”이었다.
시신을 이용하는 GROSS ANATOMY도 만만치 않게 힘드나 이 과목은 일 학년 이학기에 시작한다. 치대가 치대인 만큼 Dental Anotomy는 첫 학기 때 시작한다. 이빨이 이빨이지 뭐 별거 있을까, 다 합쳐봐야 32개 밖에 안되고 그나마 좌우대칭을 생각하면 16개만 외우면 되겠지 하면서 시작은 한다. 과연 그럴까… 진도가 조금만 나가다 보면, 이빨 하나하나가 다 모양이 다르고 그 이빨 하나하나마다 어마어마하게 내재해 있는 Anatomy를 하나씩 외우려고 하면 다 들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특성상 외우기가 쉽지 않다.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 어떤 천재라고 금방 과부하가 오고 만다.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치아에 보이는 Anatomy의 이름들을 다 외우고 나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각 치아들에 내재한 것들을 넘어 옆의 치아들, 반대편 치아들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옆의 치아들과 마주하고 있는 높이가 어딘지 하는 그런 디테일이 나오기 시작하면 학생들 대부분 기절하고 만다. 생각해 보면 나도 힘들었던 기억뿐이다. 거기에다 엄청 줌 인을 한 슬라이더 이미지 5초 보여주고 어떤 치아인지 치아번호로 적어내야 하는 시험은 정말 악몽이었다. 치아번호부터 헷갈리는데.. 지금 같아선 졸면서도 만점 받을 것 같은데…
기말시험을 앞둔 아들이 집으로 왔을 때였다. 내일이 Dental Anatomy 기말 시험이라고. 네가 제일 어려운 부분이 뭐냐고 물어보니.. 심각한 얼굴을 하고 나에게 문제를 내어보는데.. 아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답을 너무 쉽게 맞힌다. 자기는 죽어라 외워도 헷갈리고 정신없는데 나는 일말의 기다림도 없이 답을 척척 맞혀버리니.. 약이 오르는 것 같았다 위로를 해주었다. 네가 이것이 어려운 것은 아직 이빨치료를 시작하지 않았고 그 Anatomy 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외우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너만 그런 것 아니고 다 똑같으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서 시험 쳐라... 나중에 맨날 이빨만 쳐다보고 있으면 네가 거부해도 다 외워질 수밖에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징글징글하게 디테일한 Dental Anatomy를 보고 있으면 정말 왜 이렇게 많고 복잡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봐도 정말 디테일한 Anatomy들이 다 고유한 역할들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거기다 또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 디테일이 무뎌지고 달아지기도 한다. 몇천 년 전의 사람의 흔적에서 발견되는 치아의 Anatomy 가 동양사람, 사양사람 상관없이 여전히 똑같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런 치아들을 보다가 틴에이저 아이들의 치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책에서나 보던 그 디테일한 anatomy 가 신기할 정도로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어찌 보면 숭고하기도 하고 아름답게 느끼지기도 한다. 그나마 굵고 깊이가 있는 선들은 그 Significance를 이해할 수 있으나, 작은 선들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많다. 그래서 많은 경우 소위 때운다고 표현하는 Fillings, Direct Restoration을 할 때에는 고유의 Anatomy를 생략하고 밋밋한 표면으로 마무리할 때가 많다. 신기한 Dental Anatomy 예를 또 하나 들자면.. 이빨이 옆의 이빨이랑 가지런히 있지만 Proximal Contact Point가 치아마다 다르다. 이빨의 윗부분, Coronal Third에 그 Proximal Contact 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빨들은 Middle Third에 Contact 이 있다. 왜 그럴까 의문이 들었지만 30년 경험 후 하나씩 깨달음이 온다. 치아가 Side에서 옆 치아들과 나란히 부딪히는 부분을 Height of Contour이라고 하는데, 그 고유의 정확한 부분에 Proximal Contact 이 맞아야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이빨 사이에 음식이 끼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뭐가 자꾸 끼는 괴로움을 당한다. 그 Contact 이 아예 없으면 음식이 이빨 사이로 그냥 들어가 씹히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고 괴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없어도 안되고, 있어도 적당한 Tightness를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디테일한 것까지 신경을 써서 맞추려고 하는 치과의사는 거의 없다고 보지만, 알고는 있어야 한다. (내 아들에게 조언을 준다면.. 크라운이나 필링을 할 때, 눈에 보이는 Coronal Contact 은 반드시 피하고, Dental Anatomy에서 배운 Proximal Contact Point - Middle, Apical Third를 반드시 기억하라고..) 이렇게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디테일.. 우리로서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는 장치이다.
치아가 왜 이렇게 디테일한 Anatomy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몇 십 년 동안 관심 있게 바라보았지만, 도무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디테일은 여전히 의문이고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처럼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리고 여전히 건재한 것을 보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섭리라는 막연한 결론뿐이다. 그리고 그런 섭리가 서려있는 현장이 우리의 매일이다. 섭리가 여전히 왕성한 현장, 그냥 무시할 것이 아니라 가끔은 뒤돌아 보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Dental Anatomy가 재미있는 퍼즐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