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de to Journey

요망한 것 ..

Otto Friedrich

by 복자의 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가면 아주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림이 하나 있다. Otto Friedrich 오토 프레드릭이라는 오스트리아 작가가 그린 Lady in Red라는 그림인데 파티복에 모피를 뒤집어쓰고 비스듬히 앉아 있는 여자의 초상화이다.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아니 이 여자를 왜 늙지도 않냐…” 괜히 혼자 짜증을 내게 하는 그림이다.


Otto Friedrich, Lady in Red 1909


내가 이 그림을 처음 본 것은 2005년이었다. 유학하던 죽마고우 덕에 비엔나를 와서 미술을 좋아한다는 나를 배려한다고 비엔나 중심가에 있는 이곳에 데려와 이 미술관의 아무 의미도 모른 채 이것저것 휘리릭 보는데 이 작품이 눈에 들어와 버렸다. 그 뒤로 2006년, 2010년, 2023년에 비엔나에서 그녀를 만났고, 2025년 이번 여행에도 어김 없이 다시 재회했다. 20년 터울로 5번을 만난 것이다. 가끔 사람들이 왜 비엔나를 그렇게 자주 가냐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날 괴롭히는 여자가 하나 있다고. 그동안 나는 나이가 들어 걸어 다니며 무릎이며 고관절이 아픈데.. 늙지도 않고 날 괴롭히는 한 여인이 있다고 너스레를 뜬다. 늙지도 않는 요망한 것.. 이렇게 푸념하는 것을 보면 내가 이 그림을 그림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이 여인의 눈동자가 아… 주.. 묘하다. 그림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마치 도발이라도 하는 듯. 큰 그림이라 양 옆으로 스텝을 옮겨도 눈동자는 나를 따라온다. 아주 시크하게 바라보는 그리고 살짝 웃고 있는 것 같은 아주 묘한 표정이다. 한동안 그림 앞에서 이 요망한 것과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그림 앞에 서 있던 모든 순간이 그러했다. 요망한 것 …



Immanuel Manet, Olympia 1863

내가 이 그림을 보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이 작품은 마네의 올랭피아의 뉴버전이라는 것이다. 올랭피아가 1863년에 전시되었고, 위의 그림은 1909년에 그려졌으니 꼭 46년 차이가 난다. 르네상스 시절부터 정형화된 고전주의 미술이 19세기 파리에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인상파’라는 별명을 가진 새로운 세대가 나타난 것이다. 그때, 가장 강력한 한방으로 높은 모자와 긴 콧수염으로 위세 등등 하던 꼰대들을 머리끝까지 화나게 폭탄을 터뜨린 장본인이 마네였으며 대표 그림이 올랭피아였다. 사회적으로 아직 여성의 신분은 노예나 다름없었지만, 화폭에서의 여성은 언제나 그리스 여신처럼 완벽하기만 했던 철저한 모순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올랭피아는 핵폭탄의 위력으로 미술계의 판을 뒤집어 버렸다. 같은 시기에 그려진 ‘풀밭에서의 식사’에서 마네가 그리는 여인의 모습은 더 과감해진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남자들 사이에 누드로 앉은 여인이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정면으로 끌어당긴다. 워낙 큰 사이즈의 그림이라 어디에서도 그 여인의 눈길을 피할 수가 없이 그려졌다. 올랭피아의 위력은 대단했고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버린 낭만파 시대가 시작된다.



다시 처음의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의 그림으로 돌아가자면.. 이 여인은 과도한 노출도 없이, 거기다 털 옷으로 무장한 채 있는데.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를 비웃고 있나, 내가 자기를 계속 보고 있었다는 걸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내 속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난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래봐야 소용없다 이놈아..라고 하는 듯? 그런 순간들이 정지되어 보는 이는 그 자리에서 굳어져 간다. 그렇게 그림에게 내가 동화되고, 이 그림은 더 이상 그림이 아니라 나랑 대화를 하고 있는, 내가 별 이유 없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만난 지 벌써 20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난 이 아줌마의 비웃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의도였다면 완… 전 성공하셨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그림이 있는 곳에서 트램으로 5분만 가면 프로이트 (Sigmund Freud) 뮤지엄이 있는데 나의 루틴은 그림을 본 후 그 프로이트 뮤지엄 일층에 있는 카페에 앉아서 프로이트의 기를 받아 두근거리는 마음을 이해해 볼려고 해본다. 그리곤 나를 위로한다. 난 캥기는 것이 없어. 쫄지 말자…



Leopold Museum, Vienna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Otto Friedrich이라는 헝가리 태생, 오스트리아 화가이다. 이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은 Leopold Museum이다. 비엔나의 가장 중심인 Ring Strasse에 박물관들이 모여 있어 Museum Quarter라고 불리는 구역이 있는데 거기 가장 중심적인 미술관이다. 미술사에서 20세기 초반 비엔나를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활발하게 현대작가들이 활동을 했는데 그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룬 미술관이다. 보통 특별전을 하면 그들을 모아 Vienna 1900이라 부르는데 거기에 대표적인 작가들이 우리가 잘 아는 구스타프 클림트, 이곤 쉴레, 오스카 코코슈카 등이 있다. 이 뮤지엄은 Vienna 1900을 상설 전시한다. 그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현대작가들의 모임인 ‘Secession’ 모임이 비엔나에서 탄생하는데 초대 회장이 클림트였다. 비단 회화뿐 아니라, 건축, 가구, 음악, 철학, 의학분야도 Secession 모임에 동참했는데, 거기엔 심리학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음악에 구스타프 말러, 물리학자 Erwin Schrödinger도 있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나를 괴롭힌 그 그림의 작가인 Otto Friedrich도 그중의 한 명이다. Leopold Museum 자체가 바로 Secession의 기록물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서 과언이 아니다. 2025년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Secession의 대표작들이 한국으로 가서 Vienna 1900 특별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많은 그림들이 없어진 터라 소장고에 보관된 다른 작품들이 빛을 보았는데, 나에게는 차라리 좋은 기회였다. 보지 못한 코코슈카의 많은 그림들이 전시되었고, Otto Friedrich의 그 그림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나랑 한번 더 만나기 위함이지 않았을까 즐거운 상상도 해 보았다.



Otto Friedrich, Gabrielle Gallia 1910

Leopold Museum에서 트램으로 오분만 가면 벨베데르 궁이 있고 거기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 유명한 키스가 전시되어 있다.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다. 그 바로 옆방은 비슷한 시기의 오스트리아 작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에선 그림을 보기 위해 머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바로 거기 내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걸려 있다. 어디서 많이 본 여인의 모습…? 분명 어디서 많이 보았는데.. 누구지.. 하다가 그 얼굴에 찍은 점을 보자마자.. 아 그 요망한 것이 여기도!.. 하며 내 발길을 사로잡는다. 그렇다. Otto Friedrich의 작품이고 같은 여인의 모습이다. 이 화폭에선 빨간 옷을 입었을 때처럼 요망해 보이진 않고, 인기 많은 귀부인 모습이다. 여기서도 화풍에 마네의 풍이 느껴진다. 무척이나 반갑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의 그림에 관심을 두니 숨어 있던 이 그림도 이젠 눈에 들어온다. 이왕 그렇게 된 것, Friedrich에 대해 시간을 투자했다. 그의 모든 그림을 섭렵하고, 배경을 공부하니 찔끔 이 여인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조강지처를 두고도 뮤즈를 하나씩 데리고 있었던 터라 그중 한 명 일거라는 개인적인 추측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벨베데르 뮤지움이랑 리오폴드 뮤지움이 유럽에서 시작한 다다이즘, 아방가르드의 작품들과 그 역사를 제일 제대로, 자세히 보여주는 곳이다. 말레비치의 그림들이 연대적으로 걸린 뮤지움이 있던가.. 이 곳에서는 모더니즘 (순수회화)과 반예술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가 역동적으로 교차하던 20세기 초 미술사를 교과서처럼 보여준다. Friedrich 의 Lady in Red 그림도 그 중의 하나이다. 2차 대전후 미국으로 넘어가지 전 순수미술의 끝자락을 제대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말 귀한 뮤지움이다. 클림트의 그림 한두개로만 대표되는 것이 좀 안타깝다..



Otto Friedrich, Eitelkeit (Price realisedUSD $137,000)

Friedrich은 이후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하니 난잡했던 예술가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말년은 Munich에서 보냈다고 하니 그의 흔적을 모른 채 두 번이나 간 Munich 여행이 좀 아쉽기도 하다. 검색을 하다 보니 그의 작품 하나가 크리스티 경매에 나와 있는 것을 본다. 가격이 13만 불 정도이다. 생각보다 상당히 낮다. 음.. 그의 위치는 그 정도로 평가받고 있구나 하며 살짝 아쉽다. 가격이 그 정도면 무리해서 하나 구입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유혹도 살짝 들긴 하는데.. Otto Friedrich 은 미술사에서 그리 중요한 위치에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비엔나에서 자리 잡은 Sucession 아티스트중 중요한 인물이었고, Viennese Art Nouveau (아르 누보) Movement에서도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 인물을 안다면 그런 Movement를 시작하게 만든 고전주의, 인상주의들을 공부하게 되고, Friedrich 시대가 오픈한 현대미술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Key Person 임에는 틀림없다.


언제 다시 비엔나를 방문하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그 여인은 그때도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또 어떤 대화를 하게 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이제 그만 그런 눈빛 치우시지,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우리 오래 봤잖아? 당신 속에 있는 말을 한번 해 보지? 그리고 우리 칭구 아이가~~ .. “



250px-Laszlo_-_Otto_Friedrich,_1890.jpg Otto Friedrich 1862-1937, V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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