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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 Nov 17. 2022

내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다짐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가장 고민한 순간이 ‘작가소개’ 란에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하루 절반 이상 근로하는 것 외엔 특별한 게 없는 나를 나는 ‘현대노비’ 라고 칭하고 꽤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리고 소중한 첫 댓글이 달렸는데, 대문에 올린 ‘노비’ 라는 문구를 안타까워해주신 분이 삶의 참 주인으로 회복을 바란다고 응원해주신 것을 보고 새삼 뜨끔했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데, 그저 남들처럼 살기를 바라고, 눈치 빠르다는 소리를 자랑처럼 여기며 말 잘 듣는 1인이 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어릴 때부터 조직에 속한 후로는 남들한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다수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양보와 배려가 미덕이다-라고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지내려고 노력해왔는데, 누군가에게 인정 받기 위해, 조직이 잘 운영되기 위해 최적화된 교육을 받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이게 바로 남탓? :-)


물론 사람마다 성향 차이겠지만 나는 주도적이기보다 수동적인 편이라 목소리를 낮추고 사회에 발 맞추는 게 더 편한 것도 있다.

타고난 건지 환경 탓인지 MBTI 만년 INFP 그럴 수도 있고(본인의 멘탈은 털렸지만 친구의 이야기에 눈물로 공감해주는)  어린시절 대부분 할머니 손에 자라 평범하지는 않은 상황에 세상에서 외면받지 않고자 열심히 눈치를 키워온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눈치가 빠르다, 시키는 걸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선을 넘지 않는다는 말에 뿌듯해하기도 한다.(적고 보니 시대에 역행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은데)

주변 상황, 남들 시선에 맞추려는 노력은 조직사회에서 적당히 살아남을 줄 아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지만, 내 마음은 무시하고 곁눈질하며 살아온 세월이라니


주변에는 쓸 때 쓸 줄도 알고, 나를 필요로 하면 귀찮고 피곤해도 외투를 챙겨드는 적극성도 지닌 채ㅡ웃음도 눈물도 많은 여러모로 후한 사람인데

정작 내게는 돈도 감정도 아끼며 살아가는 게 새삼스럽게 아이러니하다


그도 그럴게 집에 고양이 화장실 냄새가 심하다는 핑계로(겨울 분위기도 좀 낼 겸) 겸사겸사 양초를 주문하려는데 추천 받은 양초가 5만원을 넘어가 장바구니에 담아둔 채 고민하던 중에, 지인 생일이 카카오톡 알람에 뜨는 것을 보고 조말론 핸드크림을 간편결제한 게 바로 어제다.


감정은 또 어떤가

남자친구가 헤어지고 붙잡는 걸 반복해 힘들어하는 친구에게는 “힘들 땐 맘껏 울어도 돼. 너를 먼저 생각해” 라고 세상 너그럽게 얘기하고는

아빠는 암투병, 엄마는 공황장애로 힘들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내게는 “힘든 티 내지 말자.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나지막이 다짐한다


다른 사람에겐 이상적이려고 노력하고 나한테는 이토록 이성적이라니. 남을 위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남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만 고민하던 미숙한 나는, 또 남탓을 하며 스스로 ‘노비’라고 조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응원 받기를 바라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위로받고 싶다

남을 위해주는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싶다

힘들 때 얼굴에 티도 좀 내고, 나를 위해 작은 사치품을 선물해 기분전환도 하고 싶다.


나에게 냉정하고 남에게 관대한 사람들

타고난 심성이라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한번씩 의식적으로라도 나를 먼저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싶어서 굳이 이런 다짐을 남긴다.

이런 글을 우연히 만나 아차 싶어도 되고, 하루 얼마 정도는 나를 생각하고 내게 맞추는 노력을 한다면 좀 덜 서글프지 않을까


어쩌다 내 삶을 떠안게 된 게 아니라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되는 내가 될 때까지

남들에게 하는 만큼만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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