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시니어카페 , 지금 간판은'라떼는 집밥'ㅡ덕릉로이십 대의 어느 날, 앞으로의 희망사항을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 여러 가지 소원 중 하나가 라디오 디제이(DJ)였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봐도 이상한 점은, 대학 재학 시절이건 졸업 이후이건, 하다못해 아르바이트 일자리로라도 방송국에 입사해 볼 생각 같은 것은 전혀 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쩐지 그 일이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현실적 가능성을 열심히 타진해 볼 용기도 없으면서, 가슴속에 희망의 씨앗 하나 뿌려둔, 이를테면 일종의 몽상이었다. 그리고는 국어교사로 젊은 시절을 보내고 그 이후 한 동안은 무기력한 백수로 지냈다.
내 아버지는, 삶의 중턱에서 도시의 상인이 되어 보기도 했던 천상 농부.
부모님이 고향을 떠나 고향 근처에서 가장 큰 도시라 할 수 있는 '전주'로 이주한 직후 내가 태어났으니, 내 고향은 분명 전주일 것이건만, 도시에 뿌리를 내릴 마음까지는 없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하여, 내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논밭이 없는 도시에 어쩌다 자리를 잡고 사는 농민가족일 뿐이라는 묘한 정서에 사로잡혀 이주민적 감성으로 가족 간의 결속을 다졌던 것 같다.
이제 생각하면, 그런 정서는 다분히 삶의 낙관성을 해치는 면이 있었다. 특히 집안의 가장 막내인 나라는 어린아이에겐 살짝 무겁거나 어두운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든지 가까운 데서 찾아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내겐 거의 없었다. 어린 마음에, 도시란 거대한 존재는 내가 어떤 소망을 품었든 신경도 안 쓰는 냉담함 그 자체로 여겨진 것이다. 나로서의 무기란, 그 거대한 냉담함에 깨지지 않을 만큼 아주 단단한 껍질을 가슴 위로 씌어주는 것, 그렇게 하면 가슴속에 심어진 희망의 씨앗이 언젠가 때가 되면 싹도 틔우고 꽃도 피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어리면 어린 대로 나름의 대항 의식을 마련했던 것이다.
'당신은 목소리가 참 예쁘군요.'
마이크를 사용하거나 전화선을 통해 전해진 내 목소리에 대한 칭찬, 아주 가끔이지만 '라디오 DJ'를 꿈꾼 적 있기에 소중하고 기쁜 말이다. 그래서 기억의 서랍에 곱게 간직해둔다.
그러는 사이 어언 반백(半百)의 나이, 아나운서 시험에 통과했거나 유명한 연예인이라면 모를까, 방송가의 문턱이 감히 넘어설 엄두도 낼 수 없도록 높아지고 말았음을 감지한다.
하지만 소심하면 소심한 대로 꿈은 기회를 엿본다.
"밤새 개인 라디오 방송을 설치해 봤어요."
여학생 하나가, 컴퓨터 모니터를 열고 자신이 간밤에 녹음한 것을 들려준다.
맞아, 인터넷과 개인 컴퓨터가 있지, 꼭 공중파 방송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 언젠가 기술을 익히리라.
바로 시작하는 것도 아니면서 활로를 찾아낸 기쁨을 맛본다.
요즘은 너도 나도 유튜브로 소통하네. 유튜브가 대세인가 봐.
3년쯤 전, 아들은 대학 3학년이었다.
"그럼 유튜브를 개설해서 엄마 글을 올려 볼까요? "
아들이 엄마의 뜻을 살려주려고 맘 쓰는 게 은근 고맙다. 그러나, 실험이 바쁘고 그룹 활동이 바빠서 아들은 유튜브 방송을 할 여력이 없다.
이게 중독이지.
시간 낭비도 엄청나네.
코로나 19의 위력이랄까, 글로벌 시대가 역으로 실감되어진 2020년의 하루하루는 나를 유튜브 중독으로 이끌었다. 재미있고 좋긴 한데, 시각을 자극하는 영상에 매여있노라면 기분이 어지럽고 마음도 산만해져, 공부할 의욕도 잦아든다. 봄, 여름은 그렇다 치고 가을엔 달라져야지.
건강한 생활엔 역시 라디오가 좋겠어.
유튜브에서 우연히 얻어 들은 정보로 스마트폰에 개인 라디오 앱을 깔았다.
내 방송을 개설할 수 있다는 기쁨에 단숨에 녹음을 시작했다. 원고도 없이 1시간도 넘는 양의 말이 줄줄 나왔다.
역시, 난 재능이 있나 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방송 1회분을 즉흥으로 완성했다는 데 희열을 느낀다. 자신에게 뿅~ 하고 하트를 날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어디서 막힌 건지, 내 개인 녹음은 방송으로 올려지지 않는다. 그저 나 혼자만 재생해 들으며 며칠이 지났다. 3차분 녹음을 저장하면서는 스스로도 맥이 풀린다.
"방송이 안 돼. 몰라, 무엇 때문인지."
"그래요? 그 앱이 뭐라고요? 내가 알아볼게요."
이번에도 아들은 내 말에 경청하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대학원 1년 차의 공학도에게 어디 한가로운 시간이 있을까. 바쁜 아들에게 조급하게 굴고 싶진 않다. 그리고,사실은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인 8월 어느 날이었다. 기한이 임박한 논문 쓰기가 있었다. 그런데, 집에서는 자꾸 놀게만 되어, 노트북을 안고 자주 가는 가까운 카페에 가서 글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카페 문이 잠겨 있었다. 그럼 다른 카페로 가서 쓸 수밖에. 골목 뒷길로 나가면 마을버스가 다니는 큰길이 있고, 언젠가 그리로 지나가면서 나중에 들려봐야지 했던 아담한 카페가 생각났다.
간판에 쓰여있길 '시니어 카페'라고 했는데, 처음 볼 때부터 그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ㅡ'시니어'(Senior) 라니, 혹시 노인만 모이는 카페인가, 그렇다면 나는 해당되나 안 되나? 에이, 내 머리가 반백(半白)인데 당연히 되겠지? 그 앞을 지나는 몇 걸음 사이에 이런 등등의 소소한 물음이 생겨났던 곳이다.
그렇다고 그곳에 가서 일일이 물어보자 했던 건 아니다.
나는 그곳에서 딸기주스를 시켰고 주스를 홀짝거리며 글을 쓰고 고쳤다. 그 사이, 아이 둘을 데리고 젊은 엄마가 들어왔고, 아이들에게 줄 것인지 도시락을 사 갔다. 그 다음엔, 아마도 30대? 젊은 남자 하나가 들어와 음료를 시키고 앉아 있다. 나를 포함해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아무도 손님의 나이를 묻지 않았다. 그러니까, 카페는 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카페 주인이 시니어인 것이다. 하긴, 창업주체의 연령을 강조하는 게 요즘 하나의 유행인지도 몰랐다. '청년 다방'도 청년을 강조하듯, 시니어 카페는 주인이 노인 연령임을 알리는 것이다. 여기까지 알았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자 않고 혼자서 이만큼이나마 궁금증을 풀고 나니, 느긋한 만족감이 퍼진다. 그 김에 고개를 들고 통유리 바깥으로 눈길을 돌려 본다.
시니어 라디오 DJ 모집.
기회의 깃발이 오후의 햇빛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서울 마포구인가에서 시니어 방송을 제작하고 그곳에서 시니어를 대상으로 라디오 진행자를 공개 모집한다는 큰 글씨가 읽혀졌다.
드디어 내게 꿈을 실현할 기회가 주어진 건가.
아무도 알 리 없는, 순전히 나만이 느끼는 흥분을 안고서 나는 문을 열고 깃발 가까이로 다가갔다.
"지원자격:65세 이상"
깃발에 써진 자격조건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65란 숫자를 읽은 그 순간, 나는 내가 한참 젊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대단히 씩씩한 기분이 되었다.
지금 내가 만 58세니까 앞으로 5,6년은 더 기다려야겠는 걸.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 끔찍하기는커녕, 꿈을 추구하는 희망의 길일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는 경이로움에, 세상이 달라져 보였다.
나를 중심으로 한낮의 거리는 온통 명랑한 빛으로 가득 넘치고 있었고, 밝은 빛살 사이로 소리도 없이 기쁨의 멜로디가 연주되는 중이었다. 앞날은 어쩌면 기쁨과 희망의 세계로 향하고 있는 지 모른다고 생각되니, 일체가 간단히 수긍되어진다. 그때까지 여태 미뤄왔던 학술집 정리하지 뭐.
나 스스로가 어딘지 모르게 쿨해진 느낌이다.
몇 년쯤, 문제없어.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때를 기다리는 거야.
2020.10.27
나무처럼 견실하게 ㅡ의정부 수락산 쌍암사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