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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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개념이 약한 나.
가끔 2와 1을 아무렇지 않게 바꿔 쓴다.
상당히 중요한 서식을 채우면서도 2025년이라고 쓴다는 것이 2015년이라고 써넣은 나였다. 세기가 바뀌고 십여 년 동안은 2001,2년이라고 바로 못 쓰고 19..로 시작하곤 하였다. 쓰면서 아차, 하는 자각도 없어서 뒤늦게 알아채곤 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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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联想이 한없이 이어지는 나.
작년까지 겨울 소품으로 즐겨 매었던 스카프가 있다. 보라색조에 꽃무늬가 있는 것인데 질감도 따뜻하여 거의 날마다 목에 두르고 나갔다.
천년만년 그럴 것 같더니 올겨울엔 잘 찾지 않는다. 인조털목도리로 바뀐 탓이다.
어느 바자회에서 싼 맛에 산 건데 보드라운 털 감촉이 너무나 맘에 든다.
보라 스카프가 옷걸이 구석에서 먼지만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세밑에 빨래를 하던 날이다.
보라 스카프를 펼치고 올이 풀린 자욱을 애석해하다가ㅡ 걸핏하면 갈라지는 내 엄지손톱이 주범이다ㅡ 건성 보았던 꽃무늬가 모란꽃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새삼 만감이 서린다. 모르는 사이 잠가졌던 마음의 오솔길이 슬며시 열린다.
모란!
쓰촨의 홍싱은 왜 모란 얘길 했던가. 새해 전야에 결혼사진을 올렸지...
모란은 내게 중국의 아주 오래되고 화려한 이야기 숲이다. 많이 잊었어도 여전히 그립고 신비한 자원资源. 늦가을 들렀던 싼시의 사원에서 스님 한 분이 꽃이 진 모란밭을 혼자서 일구고 있었지. 이듬해 여름 꽃이 필 날을 기약하면서...
코로나 19의 첫 해 가을, 나는 모란을 그리기 시작했어. 미술 강사는 붉고 흰 모란을 권했지만 두 번째 그림부터 나는 보라 빛으로 그리고 싶다고 말했지. 세 번째 그림엔 보다 진한 보랏빛으로 칠할 때는 내 심장까지 황홀해졌던 거 같아, 그 그림을 0 씨 부부에게 희망의 의미를 담아 선물했지. 0 씨 남편이 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야. 원래는 액자를 맞춰 둔 연보라의 두 번째 작품을 주려고 했는데 굳이 그걸 가져갔어. 아마 눈에 스며들 것처럼 깊은 보랏빛에 그녀도 끌렸던가 봐. 그럴 수 있다고 이해는 하면서도 살짝 걱정되었어. 습관적으로 돈쓰기를 아끼는 0 씨가 액자나 잘해서 걸어둘는지 따로 당부하면 잔소리일 터라서. 하지만 선택권을 준 이상 그녀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수밖에...
첫 작품은 빨갛고 하얀 모란이었어. 모란의 꽃말 부귀를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 족자로 만들었지. 모란 족자는 어느 날 귀퉁이가 찢어졌고 오늘도 '햇볕 안 드는'(처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점에 분개한다) 엄마방에 걸려 있을 거야. 시간과 함께 화폭 위로 잠든 엄마의 숨소리가 쌓여가겠지.
생명의 "富贵"를 실감하는 나의 매 순간이 그리로도 가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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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사둔 헌 책을 어제서야 침대 머리맡에 가져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단편을 읽다가 휴대폰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나는 아픈 몸을 끌고 봉사심으로 가득 차서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도 몸이 고되어서 '좀만 도와주지...'라고 내심 바랬다. 내가 그런 줄을 모르고 아무도 거들지 않았다. 혼자서 끙끙 일하다가 깨어났다.
화가 김환기가 4,60년대에 쓴 에세이집. 아내 얘기, 그림 얘기, 유학 얘기... 훌훌 넘기는데, 노쇠해지기 전에 부지런히 작업해야겠다고 결심하는 대목에서 아아, 정신이 펀뜻 났다. 나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
그와 더불어 뜬금없이 이해하게 된 한 가지 ㅡ 예술가들이 친구들과 술 먹는 일을 왜 그리 자주 언급하나, 의구심을 가졌던 나. 나로서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심지어 시답잖아 보이던 작태였다.
그런데 이 새벽에 깨어나 책장을 넘기는 사이 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예술가로서의 노력 같은 것이다.
24시간 생활인 특별한 노력 없이 가능하다.
하지만 엄밀히 구분하면 생활을 한다는 것과 창작을 한다는 건 똑같이 삶의 행위임에도 그 조건상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예술작업은, 내 안의 어떤 모드를 끄집어 내느냐?가 반드시 대두된다
그래서 생활모드에서 작업모드 사이에 변환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 변환이 결코 간단치 않다.
소위 평생 예술작업을 지속하고 싶은 자는 마음처럼 예술가의 창조적 기운을 발휘하고자 풀무질을 멈출 수가 없다. 화가끼리 작가끼리 때로는 뒤섞여서 술을 마시며 갈망을 부풀리는 것도 풀무질인 셈이다. 그렇게 창작의 열망을 부풀려 둠으로써 언제든 " 작업 모드로 들어설 수 있게" 자신의 상태를 갖춘 것이다.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건 결심과 자극과 습관을 요한다. 삼위일체가 균형을 이루기까지 모든 게 아슬아슬,
그러한 속에서의 작업이니 그 자체가 기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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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권의 책을 침대로 끌고 온 어젯밤까지는 너무 느긋했다.
한 주일 해야 할 일을 마친 주말의 평회.
하지만 이 새벽은 마냥 느긋하지 않다.
일요일은 지나갔고 월요일 아침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