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바보 할아버지

똑똑한 계산법과 미련한 행동력

by 새벽종 종Mu

뜻밖에 많이 걸은 날이다.


제대로 걷는다는 것은 걸음걸이 자세가 좋아야 한다는데... 언젠가 듣기론, 상체를 곧게 세우고, 무릎을 구부리는 게 아닌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1자로 뻗어 내딛는 자세가 제일 좋다던데... 나는 매번 무릎이 구부러져 있다. 좋다는 걸음법이 잘 안 익혀진다.

암튼 볼거리 넘치는 동대문 일대의 상가 골목골목을 많이 걸었다. 잠시 멈춰서, 어머나, 어머나, 하며 입어도 보고 싶은 꽃무늬 원피스며 앞치마며 색색의 모자며 신발이며, 나중엔 천진한 아동들의 혼을 쏙 빼놓는 신기한 완구거리까지...

책을 산다미처럼 높게 쌓아놓은 헌책방도 군데군데.

나 또한 볼거리 많은 상가 앞에선 하냥 들뜨는 게 아이와 다를 바 없으나, 일행과 보조를 맞춰야 하니 내 충동대로 일일이 다 들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대강의 위치를 봐 두었다가, 나중에 한가할 때 혼자 와서 들르면 될 것이다.ㅡ 속으로 그런 셈을 하며 눈이 쉴 새 없이 굴리며 걷노라니, 얼추 갈증도 나고 배가 고픈 시각이 되었다. 그래서 동대문역과 동묘역 중간쯤의 큰 길가에서 점심을 먹을 상의를 한다.


우선 혼잡한 거리에서 식당 간판만 찾았다.

여기?

저기?

그러다가 네 명의 의견이 모이는 곳으로 들어갔는데 유림식당이라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주인 부부가 우리를 맞이해 주는 것부터가 뭔가 안심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집된장으로 끓인 된장국은 뒷맛이 푸근한 게, 오랜만에 집밥을 먹는 듯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 맛있다며 그릇을 비우고 골목상가를 한 바퀴 더 돌고 기진한 기색으로 흩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몹시 피로했다. 그래도, 아이쇼핑만이었던 반나절에 대한 보충이랄까,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린 다음, 결국 헌책 세 권을 사들게 되었다.

그리고 저녁 바람에 옥상에 앉아 과연 잘 골라온 건가, 책을 이리저리 펼쳐보기 시작한다.

아아, 다 좋구나.

그중에서도 봄날 오후 햇볕에 달아오른 머리를 저녁 바람에 식히며 <그림공부 사람 공부>(조정욱 지음)를 읽는 맛이란!

오카다 코린이 그린 제비붓꽃

옛 그림들이 설명과 함께 사진으로 끼어지고 내가 몰랐던 한, 중, 일 ㅡ동양화가들의 일화들.


특히 오카다 코린( 尾形光琳,1658~1716)의 작품사진 <'연자화도'병풍>은, 소녀적 뒷마당 장독대 옆으로 심겨 있던 제비붓꽃이 '그리워져'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청장년 시기, 상류층의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던 코린은 졸지에 파산지경에 이르렀다고. 그야말로 유명한 바쇼 시인의 시구

"번개를 보면서도 한순간인 걸 모르다니!"와도 같았다고.


그러나 본격적인 그의 그림들은 파산 이후에 출현한다. 다시 번개가 치듯, 그러고 보면 불행에 지지 않고 일어서는 사람에게, 번개는 무상(无常) 지우고, 무참한 절멸 같은 것 모른다고 부정하는 빛인지도?


책장을 뒤로 몇 장 넘기니, 중국의 화가 서비홍(徐飞鸿,1895~1953)이다.

중국 현지에서 공예품이나 그림 중 말을 묘사한 을 많이 보았다. 처음엔, 사람들이 왜 말 그림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중국사람들은 "말은 성공을 상징한다"(马到成功)고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서비홍 화가는 서구인에게 중국이 우매한 나라로 업신여겨지던 시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의 말 사육장에서 엄청난 관찰력으로 말을 사생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 묘사의 대가로 성장하는 것이다.

서비홍이 그린 <우공이산>ㅡ 아마도 오른쪽 막대를 짚고 서 있는 이가 우공이리라.

그의 대작 <우공이산愚公移山>도 보였다. 우공을, 한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읽으면 우 씨 성을 가진 어른처럼 이해하기 쉬운데, 어쩌면 '어리석은 사람'으로 읽는 게 맞을 듯하다. 즉 '미련하다고 여겨진 사람'이 산을 옮기는 큰일을 해내다ㅡ라는 뜻으로.


나이가 90이 다 된 우공이 산에 가로막혀 마을을 멀리 돌아서 다녀야 하는 불편을 개선하고자, 자식들과 산흙을 퍼서 옮기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듣고 똑똑한 친구가 찾아와, 살 날도 얼마 안 남은 사람이 바보 같은 일을 벌였다고, 그만두라고 충고했다.

이에 우공의 대답:" 나는 늙었지만, 나의 자식과 손자, 대대손손 대를 이어서 산을 퍼 나르다 보면, 산 덩이가 점점 줄어 없어질 것이 확실하니, 결국 언젠가는 땅이 평평해질 것이고 내 자손이 그걸 누릴 것 아닌가."

이 말에 친구는 더는 해 줄 말이 없어 돌아갔는데, 정작 더 놀란 건 두 산신령이었다고. 그래서 하늘의 옥황상제가 산신령들의 딱한 처지를 미리 처리해 주려고 두 산 덩이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게 되고, 우공의 목표는 앞당겨 실현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다.


이 고사를 읽을 때마다, 나의 중국 시절 무심코 옷깃을 스쳤던 수많은 보통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국이란 나라의 민중이 가진 보이지 않는 정신력을 상징하는데 우공 이야기보다 더 적절한 비유는 없는 것 같다. 중국에 머무는 기간 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정신적 감화를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우공과 같은 끈기랄까, 서민의 생활 기저에 흐르는 낙관주의 다.


저자는 좀더 자세하게, 우공의 고사에 곁들여, 1939년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고 나서 화가의 뇌리에 우공의 화상(画像, 이미지)이 잡혔다는 일화를 적어넣었다.

이 작품은 그러니까 1940년 인도에서 그려진 것이다. 당시 중국 국민들은 중일전쟁이란 시련을 겪는 중이었는데, 절망에 굴하지 않고 계속 투쟁하는 한 반드시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되었다고 한다. ㅡ 이렇게 그림의 배경을 알고 나니, 내가 이 옛이야기에 가졌던 감동까지 더해져 감격이랄지, 오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때, 카톡이 울린다.

오늘은 사실 누군가에게 <간디 자서전>을 선물로 전달한 날이었다.

"다 읽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하겠는데요."

선물을 받은이의 문자메시지였다.

그렇겠지요, 이마도?


아아ㅡ, 점점 바람이 차가워진다.

이제 책장을 덮고 방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잠깐이지만 알찼어.

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않고도 중세로 고대로 다시 근세로, 일본이며 중국, 인도 그리고 프랑스까지 이 세상 여기저기를 유영(游泳)하였다. 그러는 사이 체내의 열기는 차분히 가라앉고, 청신한 사색의 기운으로 갈아 넣어진 듯.


이렇게 4월의 하루가 또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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