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이르게 피고 이르게 졌다.
벚꽃 개화시기가 자꾸 앞당겨지는 것도, 지구온난화가 원인일 것이라고 분석하는 소리도 들렸다. 지구에서 가장 큰 빙산이 결국 깨졌다는 짧은 보도도 들었다. 하긴, 속에 겨울 내의를 껴입고 걷는 4월의 산책길에서 라일락꽃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건, 불과 2,30년 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벚꽃은 기뻐하면서 피어난다고, 마음을 읽는 직업을 가진 이의 개인방송에서 들은 적 있다. 그래서 그 기쁨이 전파되는 거라고.
마음이 대기 중에 퍼져 나서 어떤 아름다운 순간을 만드는 장면, ㅡ어제 보았던 영화에서 감동으로 꽂히던 바다와 하늘 풍경도 그런 것일까.
은밀하게 탄생되어 해변의 거대한 선박 안에서 조심스럽게 키워진 소년은 점차 바다에 동화되어 간다. 자신의 희로애락을, 달의 인력을 흡수하여 표현하는 바다처럼 대기 중의 중력을 끌고 내뿜으며 그것으로 허공 중에 움직이는 그림을 그려 보인다.
아마도 소년의 이러한 초능력은, 엄마와의 교감, 그러나 둘 사이에 도저히 세계가 일치할 수 없는 절망적 인식을 받아들인 이후에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어째서 모자(母子)의 세계가 나뉘었을까? 그것은 엄마는 그냥 사람의 자식이고, 소년은 복제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즉 사건의 발단은, 도저히 아들을 그냥 떠나보낼 수 없어 복제기술을 빌려 죽은 아들을 복제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게 한 엄마의 사랑이다.
어린 아들과의 사별(死别)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엄마의 간절함. 그러한 엄마가 아들을 되살려놓고 싶다는 소망으로, 오직 그 맘으로 의료기술과 과학실험,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하여 결국 아들을 재탄생시켰다.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사람들 눈에 소년은 그저 수단일 뿐, 똑같이 존중해야 할 생명체로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 쓰여야 할 어떤 물체일 뿐이다.
내 아이가 거대한 탐욕의 불구덩이 위에 희생물로 올려질 내일에 대한 예감으로. 겁에 질려 굳어가는 엄마의 표정.
이러한 엄마의 표정 외에, 바다와 독서가 다인, 그 외의 치료로 겪는 고통이 다였던 소년.
영화<서복徐福>
가츠시카 호쿠사이 작품<가나카와 앞바다의 파도>, 원래 가로로 된 화폭인데 필자의 실수로 세로로 들여넣었다. 배안의 사람들 시점에서는 이 수직의 파도가 더 맞겠지?#.
모처럼 영화관 나들이를 했던 날이라선지 늦게까지 여운이 맴돌았다.
그래서 밤잠을 미루고 읽다만 책을 꺼내 펼치면서 소년을 떠올리고, 바다를 그리워하고, 그저 자신의 혈육이 무탈하게 살아있기만을 바라는 이 세상 엄마들의 막연하고도 한결같은 소망을 이해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딘가에서 소년들, 엄마도 모르는 곳에서 더러는 고독과 고통 속에 분투하고, 또 더러는 엄마의 기도 소리가 메아리 되어 울리지도 않는 골짜기에서 영문 모를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는데....
활자들이 이어지며,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삶이 펼쳐진다.그가 그린 일본 최고의 산 후지산이 등대처럼 견고하다.
파도는 높이 올라 (산 자들의) 배를 덮친다.
위험하지만, 두렵지만, 사람들은 납작 엎드린 채 파도를 헤쳐 나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모두 그런 존재다.
각자, 평온하면 평온한대로 가슴속의 파도를 견디며, 불안하면 불안한대로 가슴속의 평정에 의지하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도상(人生途上)의 행인(行人)1,2,3들이다.
그렇게 걷고 걷다가, 내가 걷는 이 세계에 가끔씩 홀리는 것.
#.
순전히 영화관람이 주목적이었지만, 여의도로 향하는 길에 나는 새삼스레 여의도의 자태에 홀리고 말았다. 현대문명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도시적인 이미지만 골라 모아놓은 것 같은 여의도란 섬.
마포대교에서 여의도로 진입할 때 보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군더더기 하나 없이 고층건물의 실루엣으로만 존재를 드러내는 '미래도시'.
네가 내 맘을 훔쳐가는구나.
조카는 자주 와본 듯,
여의도는 평일 낮에만 번화하다고.
직장인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밤이면 너무 고적하여 주거지로는 적당치 않아 보인다고 말해준다.
아아, 여의도의 밤에 그런 도시적인 고요를 느낄 수 있단 말이지?
내 자유로운 영혼 한 줄기가 어느새 차창 틈으로 빠져나가더니, 신비하고 고요한 이 미래도시의 밤공기를 들이마신다.
그 밤, 소년들이 꿈결 속에서 고독한 등불을 휘황하게 피우며 미소 짓고 있는 게 희게 빛나는 달빛 유리창에 투영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