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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모 Jul 18. 2019

배곯는 돼지 vs 배 나온 소크라테스

배가 고픈지, 배가 부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배가 고프든, 배가 부르든, 돼지는 짐승 취급을 받고 소크라테스는 철학자 대우를 받는다.



  옛날 옛적, 어느 작은 농장에 돼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살이 토실토실 오른 돼지는, 돼지우리 안에서 배불리 먹고 마시며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돼지는 문득, 자신이 게으르게 뒹굴거리기만 할 뿐, 가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과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돼지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돼지가 돼지답게 산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돼지는 몇 날 며칠을 머리를 쥐어짜 내며 고뇌를 했다.

  평소 맛있게 먹던 여물이 맛없게 느껴졌고, 안온하던 돼지우리도 자신을 가두는 감옥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돼지는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졌고 농장에서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돼지는 모두가 잠든 늦은 밤, 몰래 농장에서 도망쳐 나왔다. 돼지는 농장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뒤로한 채,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고자 고행의 길을 선택했다.

  이후, 돼지는 마을 도서관 안으로 몰래 들어가 그곳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내려갔다. 그는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어 가며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돼지의 지적 갈증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강력하게 불타올랐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독학을 하는 것만으로는 그의 궁금증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돼지는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그의 몸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고 건강도 나빠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돼지는 인근 마을에 소크라테스가 방문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이 소문을 듣자 돼지는 가슴이 매우 설렜다. 소크라테스라면, 자신을 괴롭히던 여러 철학적 질문들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돼지는 서둘러 소크라테스가 방문 중이라는 마을로 달려갔다.


블로멘달, <소크라테스에게 물을 붓는 크산티페>


  돼지가 소크라테스를 처음 본 것은, 그가 제자들과 함께 디저트를 먹으며 나른히 휴식을 즐기고 있었을 때였다. 소크라테스는 살이 쪄서 배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고, 소문대로 엄청난 추남이었다. 돼지는 제자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소크라테스 앞에 나아가 서서 말을 했다.

  “소크라테스님, 저는 선생님께 가르침을 얻고자 먼 거리를 한 걸음에 내달려온 돼지입니다.”

  식곤증에 졸고 있던 소크라테스는 비몽사몽 눈을 뜨며 돼지를 힐끗 쳐다보았다. 소크라테스는 돼지의 등, 목, 배를 훑어보며 돼지의 몸에 붙어있는 살점을 확인했다. 뼈만 앙상히 남아있는 돼지의 몸을 보고 흥미를 잃은 소크라테스는 하품을 하듯 말했다.

  “그래, 돼지야. 너는 무엇이 알고 싶으냐?”

  “저는 진리를 알고 싶어서 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제게 진리를 알려주세요, 선생님.”

  케이크 부스러기가 잔뜩 떨어져 있는 배를 북북 긁으며 소크라테스는 말을 했다.

  “진리에 대해 알고 싶다고? 음...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네, 바로 그것이 알고 싶어서 선생님께 온 것입니다. 제게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시오.”

  “내게 가르침을 원한다고? 음... 그렇다면,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돼지는 소크라테스의 뚱딴지같은 답변에 당황을 했다. 하지만 돼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말을 이어갔다.

  “가르침이란, 소크라테스님처럼 위대하신 분이 저처럼 미천한 동물에게 진리를 알려주는 것이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너는 이미 진리를 알고 있다. 산모의 출산을 돕는 산파처럼, 나는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끄집어낼 뿐이다. 어서 내 질문에 답하기나 해라.”

  소크라테스는 옆에 놓여 있는 케이크를 한 스푼 떠먹고는 포도주로 입을 축이며 말을 이어갔다.

  “돼지야, 네게 묻겠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 옆에 놓인 케이크를 보자 돼지는 배가 몹시 고파왔다. 그의 배에서는 꼬르륵하는 소리가 큰 소리로 났다.

  “글쎄요... 철학이란 ‘인생의 자양분’이 아니겠습니까?”

  “자양분? 나는 삼겹살을 먹으며 그것을 나의 자양분으로 삼는다네. 그렇다면, 자네의 갈비뼈에 붙은 그 살이 곧 철학이란 말인가?”

  돼지는 ‘삼겹살’이라는 단어를 듣자 섬뜩함을 느꼈다. 혹시 소크라테스가 자기를 잡아먹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했다. 하지만 돼지는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꼭 받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두려움을 꾹 참아냈다.

  “물론 아닙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돼지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더욱 요란하게 났다.

  “선생님, 제가 며칠간 밥을 먹지 못해서 정신이 많이 어지럽습니다.”

  “정신이 어지럽다고? 음... 그렇다면, 정신이란 무엇인가?”

  돼지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가 진짜 많이 힘듭니다. 제발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 어떤 답도 주지 않고, 고장난 레코드처럼 ‘OO이란 무엇인가?’를 계속 반복해서 말했다. 돼지는 화를 꾹 참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했다.

  “선생님... 저는 철학을 위해 맛 좋은 여물과 따뜻한 잠자리를 버리고, 고행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선생님, 불쌍한 저를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돼지는 소크라테스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돼지의 몸은 절박함에 부르르 떨고 있었다. 돼지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질문에 제발 진지하게 임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때, 돼지는 소크라테스의 손바닥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느꼈다. 돼지는 고개를 들어 소크라테스의 얼굴을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연민이 어린 눈빛으로 돼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의 상황이 몹시 딱하구나...”

  드디어 가르침을 주려는 것인가? 돼지는 감격에 겨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소크라테스의 손을 꽉 붙잡았다. 돼지는 온 정신을 소크라테스의 말소리에 집중했다. 소크라테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의 상황이 몹시 딱하구나, 딱해. 쯧쯧... 음... 그렇다면... 딱함이란 무엇인가?”

  이 말을 듣자 돼지는 그만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그의 안에서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고 온몸이 노여움에 부들부들 떨렸다.

  “에이 썅! 그냥 속 시원히 알려주면 어디 덧납니까? 젠장맞을.”

  돼지는 소크라테스의 손을 뿌리치며 땅에다가 가래침을 카악 퉤 뱉었다.

  “됐습니다. 다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그 염병 맞을 말들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돼지는 주린 배를 감싸고는 씩씩대며 뒤돌아 나갔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돼지를 향해 야유와 비난을 퍼부었다.

  “무엄하다!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행동하느냐! 저런 못 배운 짐승 같으니라고!”

  “역시 머리가 텅 빈 짐승은 어쩔 수 없다니까.”

  하지만 정작 소크라테스는 마치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는 또다시 케이크를 한 스푼 떠먹었고 포도주를 들이켰다. 그는 의자에 등을 붙여 기대앉으며 눈을 감았다. 그는 포도주가 주는 취기에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코를 골기 시작했고, 곧 침을 흘리며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바구니에 담긴 소크라테스. 희극 <구름>의 한 장면.


  몇 달 후, 돼지는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 갔다. 끼니를 걸러 가면서까지 공부를 하다가 결국 쓰러진 것이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돼지는 영양결핍으로 이미 심한 뇌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결국 돼지는 사지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불구자로 평생을 살아가게 됐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인문학 강연을 했고, 최고급 숙소에 묵으며 최고급 음식을 즐겼다. 소크라테스는 가끔씩 고위 관료의 초대를 받아 호화로운 저녁식사 자리에 참석을 하곤 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가 “OO이란 무엇인가?”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쳐대며 소크라테스 철학의 심오함 칭송하였다. 저녁식사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고급 스테이크를 썰며 모두들 한 마디씩 말을 했다.

  "인간역시 짐승들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한 능력있단 말이야. 오직 인간만이 철학을 있으니까 말이야."

  "맞아요. 왜 옛말에,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말이 있잖아요."

  "맞아! 우리 모두 배가 고프더라도 소크라테스가 되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소크라테스를 위해 건배를 올립시다! 소크라테스를 위하여!"

  "위하여!"

  진수성찬으로 차려놓은 식탁 위로 여러 사람들의 포도주 잔이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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