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초연결 사회의 대표적인 특징이 집단지성이라고 말합니다.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선 온라인 공간에서는 다중이 운집할 수 있기에 사회적 고민에 대한 해답을 자유로운 토론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과거 집단지성이란 단어를 막연하게 맞닥뜨린 계기는 『백인천 프로젝트』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야구팬을 설레게 하는 한국 프로야구 마지막 4할 타자 백인천. 그를 마지막으로 ‘왜 4할 타자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은 것인가?’라는 연구 과제를 가지고,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와 57명의 야구팬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세이버 메트릭스’라고 불리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설을 검증해 갔습니다. 『백인천 프로젝트』는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었습니다.
유명 작가인 찰스 리드비터는 집단지성의 사전적 의미를 웹이 창조한 집단적 사고방식과 집단적 놀이 방식, 집단적 작업방식, 집단적 혁신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표현은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개인이 보유한 경험이나 한정적인 지식을 다른 영역의 장점과 기술을 결합하여 새로운 과정의 창의성을 발현하는 것입니다. 그는 개인이 정보를 공유하고 저장하는 단순한 지식 소비의 행위를 거부했습니다.
집단으로 표현되는 공동체는 협업을 통해 소유가 아닌 무엇을 공유할 것인가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리고 협업이 일어나는 공간은 ‘웹’입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소멸하면서 우리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개인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앞서 언급한 『백인천 프로젝트』의 시작도 정재승 교수의 트위터의 한 줄이었고, 이를 통하여 다중이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집단지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의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핵심의 원칙입니다. 문제 제기의 핵심이 존재해야 합니다. 이 같은 핵심은 폐쇄적이거나 내부적인 성격을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다중이 참여할 수 있는 개방성을 띄어야 합니다. 둘째는 기여의 원칙입니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통찰력, 도구 활용의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집단에 기여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셋째는 관계 맺기 원칙입니다. 여러 정보가 있어도 결합해서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가치가 없는 아이디어로 치부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정보를 소유한 사람들과 연결돼 의사소통하는 게 중요합니다. 넷째, 협업의 원칙입니다. 여러 사람의 기여와 다양한 정보를 질서 정연한 실체로 창조해내지 못한다면 문제가 됩니다. 집단지성은 대체로 위계적으로 발현되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기에 자율통제가 이뤄져야 합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한 지식을 최대로 활용하며 자율규제가 이루어졌을 때 집단지성의 가치가 커집니다. 마지막으로 창의성의 원칙입니다. 참여자가 다양한 관점과 기술을 독립적으로 활용하며, 기여를 위한 도구를 갖추고, 공통의 목적 아래 단합할 때 집단적인 창의성이 번성합니다.
지난 2017년, 대한민국에는 가상화폐 광풍이 불었습니다. 누군가는 인간의 탐욕과 광적인 투기라는 표현으로 당시를 기억할지 모르겠으나, 근간에 있던 블록체인이 갖는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은 다수의 시민이 공감했습니다. 블록체인의 핵심은 분산 장부였습니다. 이는 모든 금융 거래의 당사자가 네트워크에 참여하여 신뢰성을 높인다는 게 핵심입니다. 또한, 중앙 집중화를 분산한다면 금융에 관한 보안 비용의 감소도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껏 인간이 금융 산업에서 빠져있던 비잔틴 장군의 딜레마를 극복할 단초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집단지성은 생각보다 우리네 가까이 있습니다. 나무위키와 위키피디아로 대표되는 전자 백과사전입니다. 이 같은 전자 백과사전은 다중이 파편화된 정보를 모으고, 이를 수정하는 과정이 융합돼 전자 백과사전에는 읽을 만한 지식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댓글로 반응을 확인하며 콘텐츠를 수정하는 행위는 소극적인 의미의 집단지성이라 할 만합니다.
한편, 집단지성이 무조건 민주주의, 평등, 자유를 유익하게 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웹의 특성으로 인하여 자신과 신념이 비슷한 당파적인 모임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몇몇의 정치인은 이를 악용하여 정략적 이익을 취하려 할 것입니다. 평등은 웹과 정보에 관한 접근의 불평등성으로 인하여 지식의 부자와 빈자로 계층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유의 측면에서도 정보통신의 발달은 감시의 내재화를 불러일으킬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집단지성이 갖고 있는 ‘공유, 인정, 참여‘는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공유를 통해 기존의 틀을 깨뜨리고, 아이디어 공유에 참여하며, 보상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선순환을 일으킬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서문에 밝혔던 사례의 결론을 말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백인천 프로젝트』는 진화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가설이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적용이 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굴드는 저서 『풀하우스』에서 분산 감소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즉, 자연의 시스템이 성숙해질수록 개체 간 특성이 평균으로 수렴하는 모습입니다. 『백인천 프로젝트』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도 프로야구라는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평균에서 뛰어나게 타율이 높은 선수나 지나치게 낮은 선수들이 사라지고 기량이 평준화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결국 전문가의 견해와 다르지 않은 결론을 도출한 것인데, 집단지성이 가치가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요?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과정입니다. 이질적이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58명이 ‘공유, 인정, 참여’의 측면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이 프로젝트를 끝맺음하고 ‘한국야구연구학회’를 창설했습니다. 집단지성을 바탕으로 한 논의를 계속 이어나갔으니, 의미가 있었던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