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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me Sep 24. 2020

희생번트를 강요하는 사회

#날씨 따위 계속 미쳐있어도 돼

타 체육 종목과는 달리 야구에는 ‘희생’이 기록된다. 스포츠에 웬 희생이냐며 의아해할 수 있지만, 희생번트, 희생플라이 등 방식도 다양하다. 그중 희생번트는 타자가 주자를 한 베이스 진루시키기 위한 의도가 다분한 공격이다. 희생번트를 준비하는 타자는 자신의 생존은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에 과학이 접목되고 고도화되면서, 사람들은 희생번트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는 희생번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고, 통계학자 톰 탱크는 희생번트가 효율적이지 않다고 대중에게 발표한다. 그는 무사 1루의 기대 득점은 0.906점이고, 희생번트로 1사 2루의 상황을 만들면 오히려 기대 득점이 0.831로 떨어진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앞선 연구 결과는 각 팀에게 영향을 미쳤고, 메이저리그에서 희생번트는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날 확률만큼 쉽게 볼 수 없됐다. 희생번트가 효율이 높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됨에 따라 빅 리그의 타자들은 타석에서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국내는 여전히 희생번트가 난무한다. 많은 팀이 한 점을 얻기 위한 주요한 방편으로 희생번트를 생각한다. 또한, 희생번트를 기록한 선수는 팀을 위해 개인을 내려놓은 선수로 치켜세워진다. 때로는 희생번트가 공격 방법이라기보다 팀 하나로 뭉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

  


작년에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날씨의 아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는 일본의 전체주의를 비판한다. <날씨의 아이>는 비가 그치지 않는 세상이 묘사된다. 사람들은 햇빛을 바라게 되고, 주인공 히나는 하늘에 기도를 올려 비를 그치게 하며 ‘맑음 소녀’로 칭해진다. 그러나 비를 멈추는 데는 그녀의 희생이 필요했다. 히나의 몸은 점점 물처럼 투명해졌고, 하늘의 제물이 됨으로써 일본은 맑은 하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녀를 사랑한 호다카는 하늘로 올라가려 애쓴다. 어른들은 호다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며 방관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막아선다. 결국 호다카는, 하늘에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다시 비가 내릴  일본을 걱정하는 히나를 만다. 그녀에게 호다카는 “맑은 날은 두 번 다시 못 봐도 괜찮아. 푸른 하늘보다 히나가 더 중요해. 날씨 따위 계속 미쳐있어도 돼”라고 위로한다. 히나는 지상으로 내려오고, 일본은 비에 잠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노동자는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국내 경제발전의 토대가 됐다. 경제 호황기를 거쳐 1990년대 후반, IMF체제에서는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자신이 일궈놓은 직장을 나와야 했다. 지긋지긋한 희생은 ‘MZ세대’가 주축으로 자리 잡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리고 소위 ‘희생번트’를 친 이들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시금 이야기를 되돌려, 메이저리그에서 희생번트가 사라진 이유는 효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희생번트가 득점 생산력에 도움을 줬다면, 국내 프로야구만큼이나 메이저리그에서도 희생번트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희생번트가 없어진 메이저리그에서 타자는 스스로가 결과에 납득할 수 있는 스윙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다. 이 같은 과정이 쌓여 이들은 개인의 타격을 발전시키며 성장해 나간다. 사회가 있기에 개인이 존재하는지, 개개인의 가치가 모여 사회가 만들어지는지, 케케묵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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