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뜩 임창용이라는 야구선수가 생각나는 날이었다. 새로운 결심을 세우니,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야구팬이라면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명언인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임창용의 야구 인생을 압축하고 있다. 그라운드의 풍운아로 불릴 만큼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야구에 있어서만큼은 그를 존중한다.
지난 2002년 임창용은 소속 팀을 우승으로 이끈 뒤,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처참한 결과와 마주하게 된다. 단돈 65만 달러의 포스팅(공개 입찰) 금액이었다. 지금은 류현진과 추신수, 김광현과 같은 선수들이 빅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어 국내 선수에 대한 평가가 높지만, 당시는 아니었다. KBO리그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한 임창용이었지만, 메이저리그의 팀들은 하나같이 냉정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며 고개를 떨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간의 비아냥뿐 아니라 고질적인 부상과도 싸우게 된다. 임창용은 조금 더 자유롭게 야구를 하고 싶었고, 선택한 무대는 일본이었다. 외국인 최저 연봉을 받으며 야구선수로서 경력을 이어간다. 국내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확신이 있었던 그는, 본래의 자리를 찾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연봉은 수직으로 상승했고,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투수라는 명칭도 따라왔다.
범인(凡人)이라면 현실에 안주하기 마련이지만, 임창용은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메이저리그에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된다. 만 36세, 처음 빅 리그에 도전했던 무렵에서 십이 년이 훌쩍 지난 시기였다. 결국 2013년 가을, 그는 시카고 컵스 소속으로 꿈의 구장인 리글리 필드의 모래를 밟는다. 이후 영화 같은 결말은 없었다. 운동선수로서 하향기에 접어들던 때였다. 그의 공은 더 이상 세계적 수준의 타자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단 여섯 경기에 출장하며 미국에서의 생활은 끝맺음이 된다. 하지만 임창용이 보낸 십이 년이 절대 헛된 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도전에 감동했고, 삶의 의지를 되새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닥친 현실에 조급함을 느끼고, 때로는 빠른 길을 찾는다. 또한, 조급함 때문에 감정 소모는 커지고 무력감을 경험한다. 종국에는 도전을 장기간 지속시키지 못한다. 설사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해도, 빠르게 올라간 만큼 내려오는 속도도 가파를 것이다. 혹 걸어가는 길이 아득하여 불안하다면 자신을 믿는 담대함을 키워보자. 스스로 설정한 방향이 맞다면 조급해하지 말자. 천천히 오르면 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기 때문이다.
사실 임창용의 입으로 전해진 이 문장은 독일의 대표적인 문호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명언이다. 괴테는 명저로 일컬어지는 <파우스트>를 완성하는 데 육십 년이 걸렸다. <파우스트>의 집필을 끝마친 그는 이듬해 영면했다.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쏟아 저술한 것이다. 괴테의 삶도 그의 명언처럼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이 이야기가 결심을 주저하는 당신에게 조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