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친한 동생이 나를 힐난했다. “오빠는 자기 이야기를 너무 안 해.” 자신의 고민만 털어놓고, 내가 반응만 하니 불만이 쌓인 듯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듣는 게 버릇이 되어버렸다. 취재기자, 매거진 에디터를 거치면서 수많은 샐러브리티를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 중에 대중의 관심사를 찾아내는 게 일이었다 보니 말하기보다 듣기가 더 중요했다. 인터뷰이와 대화하면서 적절하게 나의 이야기를 섞었지만, 어디까지나 필요한 얘기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사실 내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다. 학창 시절, 일기 쓰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방학이 끝날 무렵 숙제를 몰아서 하는 건 남들과 같았지만, 일기만큼은 뒤로 미뤄놓지 않았다. 또한, 개학 후 일상에서도 일기를 꾸준히 작성했다. 이튿날 받게 될 일기장에 선생님의 코멘트가 기대돼 미주알고주알 내 얘기를 썼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집에는 일기에 관한 상장이 무척이나 많다. 에디터가 된 지금, 어머니는 “네가 예전에 일기를 쓰는 걸 보면서 글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은 했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말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말 한마디로 천량 빚을 갚는다’, ‘말이 많은 집은 장맛도 나쁘다’, ‘노랫소리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오래 들으면 싫증이 난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오고, 사람도 제 말하면 오는 법이다’ 등이다. 찬찬히 살펴보면, 말할 때 조심하라는 속담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말하기보다 듣기에 방점이 찍힌 사회 풍토가 영향을 미친 듯하다. 그러나 듣는 게 미덕인 사회는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다. 소셜미디어가 발전하고 이를 활용하는 MZ세대가 주축이 되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
어느새 나도 ‘바보’라고 쓰인 팻말 앞에 서있다. 직업적인 측면에서도 향후 기자라는 단어는 사전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물론 정보를 취합하여 대중에게 전달하는 건 가치 있는 일이지만, 우리는 인공지능(AI)이 기사를 작성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샐러브리티는 소셜미디어를 창구로 자신의 소식을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알린다. 언론사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면 하고 싶은 얘기가 훼손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기 위해 노력하자. 이를 위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내 얘기를 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자이언트 펭TV>의 펭수는 작년부터 신드롬을 이끌고 있다. 이비에스에서 방영되고 있지만, 펭수는 2030대 직장인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이들이 펭수에게 관심을 쏟는 이유 중 하나는 통쾌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펭수는 하고 싶은 얘기는 하는 성격으로 묘사된다. 자신의 소속사 사장을 “김명중”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려운 일을 시키는 제작진에는 “눈치 좀 챙기라”라고 핀잔한다.
브런치에 게재하는 <내 얘기를 하고 싶어서>라는 글 묶음은 내게 있어 일기와 같은 존재다. 하루를 닫으며 내가 느낀 감정을 추리는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이 같은 과정을 많은 사람이 도전했으면 좋겠다. 만약 자신의 일상을 정리하고 싶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디지털 플랫폼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에서 다이어리를 쓰면 좋다. 펜촉이 종이에 닿을 때, 하루의 지난함이 조금은 감성적으로 변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