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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me Oct 01. 2020

수영아, 너는 커서 뭐가 될 거야?

#부끄러운 어른의 고백

큰 누나의 슬하에는 두 명의 아이가 있다. 그중 막내 조카는 당차다. 호불호가 뚜렷하고, 의사표현도 확실하다. 최근 그녀는 그림 그리기에 심취해 있다. 디지털 기기, 스케치북을 포함하여 온갖 매체에 좋아하는 게임의 캐릭터나,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신만의 그림을 스케치한다. 때때로 막내 조카의 그림에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이야기가 담겨 그녀의 감정이 그림을 통해 전달되는 듯했다. 가끔 이 아이가 그림을 통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게 아닐까, 하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 와중에 막내 조카와 대화를 하다 부끄러웠던 일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녀가 장래에 그림과 연관된 일을 꿈꾸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수영아, 너는 커서 뭐가 될 거야”라며 화두를 던진 뒤, “화가? 디자이너? 이모티콘 제작자?”라고 덧붙였다. 막내 조카는 나를 일별 하더니 “아직 커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하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아차!’ 싶었다. 어린아이에게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버렸다. 아홉 살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을 느끼고,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할 시기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의 유년기가 떠올랐다. 하루하루 꿈이 바뀌었다. 흥밋거리가 생겼다, 시들기를 반복했다. 자동차에 빠져, 관련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꿈은 오래지 않았다.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축구 선수가 선망의 대상이 됐었다. 중학교 입학 후에는 줄곧 초등 교사를 꿈꿨다.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했고, 누나의 영향도 있었다. 그러다 대학교에 진학한 뒤, 한 야구 경기에 정신을 빼앗겨 스포츠 기자를 준비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지는 못하지만,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며 언젠가는 이루겠다고 다짐한다.


ⓒpixabay


내가 막내 조카에게 무심히 던졌던 우문에는 두 가지가 잘못됐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홉 살에게 꿈이라는 때 이른 질문을 해버린 것. 이 무렵은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하며, 나의 관심사를 찾는 시기이다. 둘째는 직업으로서의 장래를 물은 것이다. 단순하게 화가가 되는 게 아닌, 핵심은 화가가 되어 무엇을 하고 싶은가이다. 예를 들어 내 그림이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 같은 목표 말이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어릴 적 12년 간 개미를 관찰했다고 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스테디셀러인 소설 <개미>를 저술했다. 완벽한 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범죄학, 생물학, 천문학을 공부했다. 베르나르가 단순하게 개미를 주시하는 데만 흥미가 있었다면, 그는 곤충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세상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동반됐기 때문에 우리는 베르나르의 소설 <개미>를 탐닉할 수 있었다.

     

막내 조카와의 낯부끄러운 일을 겪고 나서, 나는 그녀와 대화하는 방식을 바꿨다. “요새는 뭘 하면서 놀아?”, “그게 왜 재밌어?”, “재미있으면 같이 하자, 삼촌도 해보고 싶어”, 하고 말이다. 작가 김금희의 소설 제목처럼 막내 조카가 자신의 꿈에 대해 차분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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