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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me Apr 02. 2021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는 것에 대해

#뚜렷한 취향

보고 읽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언제나 나의 발목을 잡은 게 하나 있다. 바로 ‘결정장애’였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즐길 거리가 있지만, 주어진 시간이 한정돼 있어 종종 선택하는 데 주저하게 됐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나의 감성과 맞는 작가와 감독, 배우, 가수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믿고 보는 창작가가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모호했던 나의 취향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가로 우리에게 유명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소설이 아니다. 어두운 줄거리를 좋아하지 않은 탓에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다 읽고 덮을 즈음, 마음속 개운하지 않은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그의 소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때, 미디어를 통해 김영하 작가의 다른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이듬해 그의 에세이인 <여행의 이유>가 출간됐다.


<여행의 이유>를 읽고 좋았던 점은 분명했다. 여행으로 자신이 느낀 감정을 풀어낸 산문은 소설가가 아닌, 사람 김영하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껏 나는 소설가 김영하가 아닌 지식인 김영하를 좋아했음을 깨달았다. 이후 개정판인 <오래 준비해온 대답>까지 일독하며 앞선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의 또 다른 에세이를 기다리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지난 2017년 겨울, 첫 직장을 관두고 텅 빈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홀로 영화관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극장가는 <너의 이름은>이 입소문을 타며 흥행하고 있었는데, 무엇인가에 홀린 듯 예매하게 됐다. 어느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었,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영상과 사진이 담지 못하는 감성이 섬세한 작화(作畫)로써 발현됐다. 또한, <너의 이름은>이 단순한 청춘 멜로 장르가 아님을 알았을 때, 신카이 마코토 감독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너의 이름은>의 엔딩 장면, 스가신사 앞 계단


그가 연출한 작품인 <언어의 정원>과 <별을 쫓는 아이>, <초속 5센티미터>,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를 찾아보며 느낀 한 가지는 마코토의 내러티브가 점점 대중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편, 그의 신작인 <날씨의 아이>는 은은한 감정선이 매력적이었던 전작과 다르게 선명한 서사가 돋보였다. 누군가는 마코토의 변화가 대중 영합적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코토는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로 불릴 만큼 확고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배우 이지은은 아이유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데, 그가 열연한 <나의 아저씨>는 위로가 필요할 때 몇 번이고 찾게 되는 작품이다. <나의 아저씨>는 범속한 우리네 삶을 잘 표현한 드라마인데, 삶이 무거워 무너지고 싶을 때 치유받기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라고 묻는 박동훈(이선균 분)에게 이지안(이지은 분)이 ‘네’라고 답한 엔딩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꼭 드라마를 통해 그들을 지켜본 우리에게 던지는 말 같아 좋았다.


이지은은 이후로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에 출연하여 배우로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물론 개인적으로 실망했던 작품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가 작품 활동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해 응원하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지은은 자신의 본업인 가수로서 최근 대중에게 호평을 받았다. 지난 1월 발표한 음원 ‘셀러브리티’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소수자를 위로했다.


뚜렷한 취향을 드러낸다는 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좋아하는 작가나 감독, 배우, 가수를 주제로 타인과 대화하는 일을 즐기는 데에 행복감을 느낀다. 좋아하는 관심사가 늘어나고, 이를 향유하는 나만의 방식이 생긴다는 것은 무엇이 됐든 좋은 일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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