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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me Dec 11. 2021

게으름이 덮친 일상들

#좋았다면 추억, 나빴다면 경험이었는데….

나에게는 해결하지 못한 고질병이 하나 있다. 닥친 일을 끝까지 미루는 습관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공적인 사안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주변의 눈치를 심하게 보는 소심한 성격 탓이다. 하지만 마주한 일이 지극히 개인적이라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갑자기 없던 오기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괜한 보상심리 때문이지 잘 모르겠다. 짧디 짧은 이 글을 쓰면서도 게으름이 피어나, 노트북을 화면을 덮었다 열었다를 몇 번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최근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개인적인 삶이 즐거워야, 공적인 영역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라고. 너무나도 당연한 조언이지만, 치기 어린 마음에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절반인데, 이곳에서의 성취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냐”라고 반문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어떤 가치를 우선시할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명제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활동 못지않게 개인적인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흥미롭게 일독한 에세이가 하나 있다. 미아 작가가 쓴 <바다로 퇴근하겠습니다>이다. 목표했던 대기업 광고팀의 카피라이터로 입사한 그는 곧 권태와 무력감에 빠졌다. 조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현실에 맞닥뜨렸다. 그는 에세이에서 자신에게 닥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꿈이라고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좋았다. 그러나 꿈을 이룬 뒤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에 나는 너무 근시안적인 인간이었다.”

  


결국 작가는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삶의 동기를 찾게 되는데, 바로 서핑이었다. 금요일 저녁마다 서핑을 타러 책의 제목처럼 바다로 퇴근한 그는 결국 더 큰 용기를 낸다. 큰 파도를 마주하기 위해 사표를 내고 호주로 떠나기로 한다. 물론 앞선 결단을 쉽게 내릴 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자신한다. 소심한 나 역시도 여기에 포함된다.

  

나는 <바다로 퇴근했습니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표를 자신 있게 상사에게 던지고 떠나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지 말자는 다짐처럼 들렸다. 약속이 없는 주말마다 게으름을 피우며, 방 안에서 뒹굴뒹굴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됐다.


믿기지는 않겠지만,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최고의 증거는 단연 경험이다”를 삶의 목표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몇 년 전, 20대의 나는 취미의 파도 속에 휩쓸리길 즐기는 사람이었다. 좋았다면 추억, 나빴다면 경험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을 말로 주변을 설득하며 이것저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어느새 ‘익숙함’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기성세대가 돼 버렸지만 말이다.


또다시 실패해 현실의 삶에 안주해버릴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란 거창한 표현보다 게으름이 덮친 일상을 탈출해 보려고 한다. 종종 지금도 괜찮다고 위안할 때마다 내 안의 뭔가가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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