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과 가치 사이에서
햇병아리 박사과정생일 때, 나는 경영학 연구가 실무에 어떤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학회에서 전략경영 (strategic management) 분야의 저명한 교수님과 나눈 짧은 대화는 그 막연함을 오히려 더 큰 혼란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동안 논문을 읽고 쓰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의구심을 나는 조심스럽게 꺼내어 물었다.
“변수 X가 변수 Y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증하는 가설을 세울 때, 사실상 세 가지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나요? 정 (+)의 방향, 부 (–)의 방향, 그리고 무관계 (no relationship). 그런데 논문에서는 이 중 한 방향만 선택해서 가설을 설정하고, 나머지 두 가능성은 분석의 범위 밖으로 밀려나잖아요. 그 방향성이 유일하게 정당하다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죠?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인과관계를 확립할 수 있다고 믿어도 괜찮은 건가요? 그리고 우리가 분석하는 표본 안에는 사실 이 세 가지 방향성을 모두 보여주는 다양한 관측치들이 혼재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인 효과 하나만을 근거로 ‘이 인과관계는 확립되었고, 일반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한 접근일까요?”
내 질문이 끝나자 그 교수님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어딘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건 당연히 이론이 제시하는 방향성을 바탕으로 설정하는 거죠. 무슨 말씀이신지… 그리고 가설은 제가 그 논문을 통해 주장하고 싶은 바를 담는 거니까요. 물론 실증분석에 사용되는 표본 안에는 서로 다른 방향의 관계가 혼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의 목적은 그런 다양성을 모두 반영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일관된 패턴이나 우세한 방향성을 식별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정한 인과관계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며 기여하는 데 있습니다."
그 반응은 내가 질문을 어설프게 했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학문적 상식이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어떤 태도를 반영한 것이었을까? 이 질문을 한동안 잊고 있다가, 뉴욕에서 함께 박사과정을 밟았던 친구가 같은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친구와의 긴 대화를 통해 나 역시 경영학의 주류 연구 방식에 대한 의문이 더욱 선명해졌고, 우리는 결국 그 문제의식을 출발점 삼아 논문을 함께 쓰게 되었다. 이 에세이는 그 논문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시 풀어 쓴 한국어판 요약이다.
경영학 연구가 시도하는 "설명"은 과연 인간과 조직의 복잡성을 다룰 수 있을 만큼 타당하고, 유효하며, 실제로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는가?
경영학에서 생산되는 학술 논문은 겉보기에는 매우 다양한 형식을 띤다. 크게는 실증적 (empirical) 연구와 이론적 (theoretical) 연구로 구분되며, 일부는 기업 실무자에게 직접적인 조언을 제시하는 처방적 접근 (prescriptive approach)을 취하기도 한다. 방법론 면에서도 설문조사 (survey), 실험 (experiment), 기존 기록자료 (archival data)를 활용한 정량적 분석 (quantitative analysis)부터, 인터뷰 (interview), 사례 연구 (case study), 민속지학 (ethnography) 등을 기반으로 한 정성적 분석 (qualitative analysis)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로 경영학 분야의 상위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들 대부분은 일정한 연구 방식에 수렴한다. 연구자는 기존 이론을 바탕으로 명확한 가설을 설정하고, 정량적 데이터를 통해 이를 검증한 뒤, 그 결과가 기존 연구나 이론이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한다는 점을 들어 학문적 기여를 주장한다. 이러한 구조는 겉보기에 논리적이고 엄밀하며, 예측 가능성을 갖춘 과학적 형식을 따른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과연 인간과 조직의 복잡한 현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경영학은 과학의 외형을 취하고 있지만, 우리가 다루는 현상이 정말로 그 과학적 형식이 요구하는 전제 (e.g., 인과성, 일반화 가능성)에 부합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설명 (explanation) 중심의 연구 형식은 단순한 방법론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철학적 전통과 학문 제도화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결과물이다. 경영학이 “무엇이 Y를 야기하며, X는 어떤 방식으로 Y에 영향을 미치는가? 왜 그런 인과가 발생하는지, 또 어떤 조건에서 그 인과가 작동하는가? (What causes Y? How does X influence Y? Why? And under what conditions?)”와 같은 인과적 설명을 추구하게 된 배경에는, 자연과학 (natural sciences)의 지식 생산 방식을 이상적으로 삼아온 오랜 지향이 자리하고 있다. 근대 과학은 세계를 설명 가능한 질서로 이해했고, 물리학이나 생물학은 정밀한 실험과 관측을 통해 보편적인 인과 법칙을 발견해 왔다. 인간의 몸에서 나타나는 생리학적 반응처럼, 자연은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반복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산출한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경영학에도 옮겨졌다. 경영학은 조직이라는 복잡한 사회적 시스템을 다룬다는 점에서 인간 행동, 권력 관계, 규범, 제도 등 다양한 요인들과 얽혀 있지만, 이 역시 적절한 변수화와 계량적 접근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실증주의 (positivism)의 영향을 받아 왔다. 실증주의는 세상에 객관적인 실재가 존재하며, 연구자는 이를 측정하고 분석함으로써 보편적인 설명을 도출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이 철학은 설명 가능한 인과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신념 위에 서 있으며, 연구자의 역할은 그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데 있다고 본다. 경영학은 이러한 철학적 전제가 학문적 정당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해준다고 믿었고, 결국 설명 중심의 접근을 학문적 표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반면, 해석주의 (interpretivism)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때, 행위자가 "주체성 (agency)"을 가진 존재라는 전제에 기반한다. 인간은 외부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맥락 속에서 의미를 해석하고 구성하는 능동적 주체다. 이 관점에서 연구자 역시 중립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의미 구성 과정에 참여하는 해석의 일원으로 간주된다. 해석주의 전통은 인간 행위를 인과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들이 부여하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러한 철학적 입장을 바탕으로, 많은 연구자들은 인터뷰, 사례 연구, 민속지학 등의 질적 방법을 활용해 왔다. 이들은 의미가 어떻게 구성되며, 행위자의 주체성이 그것을 어떻게 형성하고 변화시키는지를 사회적·시간적 맥락 속에서 탐색해 왔다.
그러나 이처럼 해석주의에 기반한 연구들조차도 오늘날의 학문 제도 속에서는 설명 중심 구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왜냐하면 주류 경영학에서는 변수 X가 변수 Y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고, 그 인과관계를 예측 가능한 형태로 설명하는 것이 곧 이론적 기여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해석주의적 관점을 따르며 인간의 의미 구성과 해석 과정을 탐색하고자 했던 연구들 역시 반복 가능한 경향성을 설명하려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해석주의는 설명을 거부하는 대안이 아니라, 설명을 생산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조건에서는 이런 반응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 형식을 따르며, 실증주의와 유사한 이론적 압력 속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경영학이 설명 중심의 연구 방식을 채택하게 된 배경에는 철학적 기원뿐만 아니라 제도적 압력이 동시에 작용했다. 1950년대 말, Ford Foundation과 Carnegie Corporation은 미국 경영대학원의 교육 수준을 평가한 두 개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Gordon & Howell, 1959; Pierson, 1959). 이 보고서들은 당시의 경영학 교육이 지나치게 실용적이며 학문적 깊이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경영학을 보다 과학적인 학문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들은 단순한 권고를 넘어 경영대학 (business school)이 연구 중심 대학으로 자리 잡는 데 있어 실질적인 구조적 지침을 제공했다.
이후 경영학은 이론, 가설, 실증분석, 통계적 유의성이라는 과학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이는 상위 저널에 실리는 논문의 기본 형식이 되었다. “과학의 통일성 (thesis of the unity of science)”이라는 전제가 학문 전반을 지배하던 시기였기에, 물리학이나 생물학에서 유효한 방식이 경영학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신념이 제도적으로도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흐름은 학계 내부에서만 작동한 것이 아니라, 실무 현장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도 강화되었다. 경영학계는 근거 기반 경영 (evidence-based management)이라는 흐름을 통해 실증적 연구 결과를 현장에 연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경영자들이 개인의 직관이나 과거 경험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검증된 연구 결과에 기반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흐름은 연구자들에게 오히려 더 강한 압박을 가하게 된다. 이제는 단지 설명이 아니라, 정책이나 실무에 유용한 인과관계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경영학은 자연과학에서 차용한 인과 설명의 형식과 실용적 유용성의 기준을 동시에 추구해 왔으며, 그 결과 설명 중심의 연구 구조는 학문적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경영학 연구에서 "기여 (contributions)"는 일반적으로 (1) 타당성 (validity)과 (2) 가치(value)라는 두 가지 기준에 따라 평가된다. "타당성"은 연구 결과가 얼마나 일반화 가능한 인과관계를 보여주는지를 의미하며, "가치"는 그 결과가 얼마나 흥미롭고, 이론적·실무적으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지를 가리킨다. 표면적으로는 이 두 기준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종종 긴장 관계에 놓인다.
타당성이 높은 연구는 반복성과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일반화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종종 우리가 이미 경험적 혹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재확인하는 데 그친다. 예컨대, 직무 만족이 높을수록 이직률이 낮아진다거나, 신뢰 기반의 리더십이 직원의 자발적 조직 기여를 높인다는 결과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이미 체감하고 있는 내용일 가능성이 높고, 이론적으로도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기 어려워 결국 독창성 없는 "재확인"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반면, 연구 결과가 가치 있다고 평가되는 경우는 보통 기존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예상하기 어려운 반직관적 (counter-intuitive) 결과를 보여줄 때다. 일반적으로 예측되던 가설과는 반대되는 관계를 입증할 때 “기여”가 있다고 간주된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대부분 특정한 맥락 (context)에만 유효하며, 다른 상황이나 시기에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Management 분야 최상위 학술지인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 실린 Qin et al. (2018)의 연구는 이런 유형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논문은 상사가 직장 내에서 부하 직원에게 언어적으로 학대했을 때, 오히려 그 상사의 감정 상태가 개선되었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상식적으로는 학대가 부정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이 연구는 그 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반직관성은 사실 그리 놀랍지 않다. 연구의 설명에 따르면, 분노나 좌절을 억누르는 데는 심리적 자원이 소모되며, 이를 억제하지 않고 표출할 경우 오히려 심리적 에너지가 덜 소비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화를 참지 않고 내뱉는 것이 속을 시원하게 만든다는 설명인데,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현상이다. 한국어의 “화를 내고 나니 속이 풀렸다”나 영어의 “blow off steam” 같은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결국 이 연구가 제시한 반직관적 결과는, 맥락을 인식하고 나면 오히려 자명하게 느껴지는 현상에 가깝다. 억눌린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면 일시적인 감정적 해소가 일어난다는 것, 이건 어쩌면 굳이 통계 분석을 거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이러한 예는 반직관적인 결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적절한 맥락을 명시하면 전혀 놀랍지 않은 설명이 학문적 기여로 간주되고 있다는 문제를 잘 보여준다. 정말 놀라운 발견이어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현상을 학문적 언어로 다시 정리했기 때문에 “새로운 설명”처럼 보일 뿐이다.
만약 위 예시처럼 겉보기에 반직관적인 연구 결과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이론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연구의 타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결과는 일반화 가능한 인과관계로 보기 어렵고, 결국 실증분석에 사용된 표본이나 특정 맥락에 국한된 예외적 현상으로 간주되기 쉽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가 흥미로울수록 특정 인과관계를 일반화하기 어려워 타당성은 낮아지고, 반대로 일반화가 쉬울수록 연구의 새로움이나 이론적 가치가 떨어지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적 딜레마는 개별 연구자의 선택이나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경영학이 인과적 설명을 중심으로 한 과학적 형식을 학문적 표준으로 삼고, 이를 제도화해 온 과정에서 비롯된 한계다.
경영학이 이처럼 타당성과 가치를 동시에 충족하기 어려운 이유는, 경영학자가 다루는 연구대상 (e.g., 인간, 조직, 사회, 제도, etc.)의 본질에 "인간의 주체성 (agency)"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순한 자극-반응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다. 특정 조건이 주어졌다고 해서 언제나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인간은 상황을 인식하고, 그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며, 때로는 주어진 조건을 거부하거나 재구성하는 능동적 존재다. 이는 인간 행동이 선형적인 인과모델로 환원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명을 통해 인과관계를 정립하려는 시도는 결국 인간의 선택이 정해진 조건들에 따라 자동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전제에 기초하지만, 주체성을 지닌 인간은 설명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설명을 거부하거나 변화시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구조적 긴장 속에서 흥미로운 연구일수록 재현 가능성이 낮고, 반복 가능성이 높은 연구일수록 상식적이거나 자명한 결론에 머무는 경향이 반복된다.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둘러싼 수많은 연구는 이 같은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연구는 CSR이 재무성과 (financial performance)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다른 연구는 부정적인 효과를 보고하며, 또 다른 연구는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결과가 일관되지 않는 이유는 CSR이라는 행위가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은 제조공정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증가해 성과가 악화될 수 있고, 어떤 기업은 CSR을 통해 우수 인재를 유치하거나 소비자의 호감을 얻어 재무성과가 향상될 수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CSR 활동이 조직 외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 재무성과와 무관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소비자, 투자자, 종업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CSR이라는 동일한 행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지닌 행위자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CSR 활동이 다양한 반응과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인과관계는 필연적으로 불안정해진다.
최근 들어 기존 주류 연구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연구 대상이 처한 "맥락 (context)"을 실증분석에 반영해야 보다 현실에 가까운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스타트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때, 과거 연구들은 대부분 모든 회사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평균적인 효과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새로운 접근은 회사의 성장 단계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사업을 막 시작한 회사는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크게 받지만, 아직 사업 아이디어만 존재하는 구상 단계의 회사에는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맥락을 세분화하면 단순한 평균보다 조금 더 현실에 가까운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방식으로 평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사업 초기 단계’라는 범주 안에서 다시 평균적인 회사를 상정하게 되고, 그 안에서도 창업자의 성별이나 교육 배경,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실질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 등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설명은 점점 구체화되지만 여전히 모든 경우를 포착하지는 못하는 한계가 남는다.
이처럼 주체성을 지닌 인간을 대상으로 설명을 시도할 때 나타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설명이 무한히 분할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맥락에서 경향성이 나타난다고 해도, 그 맥락을 더 세분화하면 다른 경향성이 나타나고,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어떤 경우에는 효과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없으며, 또 다른 경우에는 반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설명은 점점 정교해지지만, 동시에 점점 더 협소한 상황에만 적용 가능해진다. 결국 이는 "주체성을 지닌 인간은 어떤 설명도 완전히 포착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더구나 우리가 실증분석에 사용하는 데이터는 과거에 이미 발생한 결과들에 대한 관찰일 뿐이며, 그로부터 도출된 설명이 새로운 맥락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될 것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 설명은 결국 과거의 구조와 반응 사이에 성립했던 관계를 되짚는 작업이며, 그 구조가 바뀌었을 때 동일한 결과가 반복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이 무한한 설명의 반복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미 결과가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굳이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어떤 이론적 혹은 실천적 가치를 갖는가?
지금까지 많은 경영학 논문들은 설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그동안 축적된 설명들을 돌아보면, 그것들은 종종 반복되는 자명함을 다시 확인하거나 지나치게 복잡한 모델을 통해 인간의 예측 불가능성을 억지로 설명하려는 시도로 전락하기도 한다.
설명은 어떤 결과가 왜 나왔는지를 정당화해주지만, 그 결과가 왜 중요한지 혹은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설명이 갖는 한계는 인간의 주체성과 해석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이론 구조에서 비롯된다. 만약 인간이 맥락과 의미를 구성하며 주어진 조건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존재라면, 경영학 연구는 결과를 예측하기보다 특정한 반응이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렇다면 경영학자로서 인간의 행동과 조직 현상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까? 설명이 인간의 주체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인과관계를 일반화하려는 시도가 반복적으로 실패한다면, 이제는 연구의 질문 자체를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 예측 가능한 설명을 목표로 하기보다 원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설계"란 특정한 결과가 발현될 수 있도록 제도, 환경, 언어, 규범, 감시 장치 등을 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는 존재라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특정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연구자의 역할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설계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통제가 아니라, 그 자유를 전제로 한 유도 장치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CSR 활동은 그 자체로 일정한 효과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기업에서 CSR은 소비자 신뢰를 높이고 직원들의 자부심을 고취해 재무성과 개선으로 이어지지만, 다른 기업에서는 같은 활동이 위선적이라 비판받거나 정치적 편향으로 오해받아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CSR의 효과는 활동 자체보다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고 수용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연구자는 "CSR이 효과가 있는가"를 묻기보다, "어떤 조건 아래에서 CSR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작동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지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설계 기반 접근의 핵심이 된다.
이러한 방식은 실증 연구의 엄밀함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증분석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경향이 나타나는지를 탐색하는 유효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때 실증성은 설명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설계를 위한 실천적 근거로 전환된다. 핵심은 더 이상 연구의 최종 목표를 "인과관계의 일반화"로 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왜 일어나는가”를 묻는 설명 중심의 질문에서, “무엇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에서 논의한 설명 중심 경영학 연구의 딜레마는 내가 속한 Management 분야에서 자주 마주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설명이라는 패러다임이 지닌 구조적 한계는 이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케팅, 회계, 재무 등 다른 경영학 분야에서도 인간의 선택과 해석, 맥락과 제도적 제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인과적 설명이 여전히 표준적인 지식 생산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경영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교육학 등 사회과학 전반에서도 유사한 긴장이 반복된다. 주체성을 지닌 인간을 단일한 인과 모델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시도가 반복될수록 설명은 정교해질 수는 있겠지만, 현실을 바꾸는 구조를 제안하지는 못한다.
기업과 사회문제의 교차 지점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문제를 단순히 설명하는 데 그치기보다 어떤 구조가 변화의 가능성을 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그 가능성이 작동하고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Gordon, R. A., & Howell, J. E. (1959). Higher education for business. Ford Foundation.
Pierson, F. C. (1959). The education of American businessmen: A study of university-college programs in business administration. McGraw-Hill.
Qin, X., Huang, M., Johnson, R. E., Hu, Q., & Ju, D. (2018). The short-lived benefits of abusive supervisory behavior for actors: An investigation of recovery and work engagement.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61(5), 1951–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