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ing Dr. Ivan Montiel
Summary: This is a personal reflection on my late PhD advisor, Dr. Ivan Montiel. As I travel to Spain to visit his family, I recall our academic journey, his kindness, and the lasting impact he had on my life and work. His absence is deeply felt, but his influence remains with me.
Resumen: Este es un ensayo personal en memoria de mi director de tesis doctoral, el Dr. Ivan Montiel. Mientras viajo al sur de España para pasar tiempo con su familia, reflexiono sobre nuestra relación académica, su generosidad y el profundo impacto que dejó en mi vida profesional y personal. Aunque su ausencia todavía se siente intensamente, su influencia permanece conmigo.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의 가족들과 함께 일주일 정도 시간을 보내기 위해 미국 뉴저지 (New Jersey) 주에 있는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 (Newark Liberty International Airport)에서 스페인 남부지방에 위치한 말라가 (Malaga)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어제 말라가 공항에 도착했어야 했지만, 뉴저지에서의 환승 비행기가 기상 악화로 연착되며 연결편을 놓쳤고, 뜻하지 않게 뉴욕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맨해튼 (Manhattan)에서 뉴욕 피자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Dr. Ivan Montiel은 스페인 출신으로, 그의 가족들은 모두 스페인에 살고 있다. 그라나다 (Granada)와 네르하 (Nerja; 말라가 근교의 휴양 도시)가 그들의 삶의 터전이다. 물론 Ivan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바르셀로나 (Barcelona) 근교에 있는 루비 (Rubi)라는 소도시이긴 하지만, 현재 그의 가족이 머무는 곳은 안달루시아 (Andalusia) 광역자치주이다. 작년 추수감사절에도 말라가와 그라나다 일대를 찾았지만 그때는 겨울이라 꽤 쌀쌀했었다. 이번에는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 아래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와 습한 바람이 나를 맞이할 것이다.
스페인에 가면 Ivan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Ivan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2년 전 너무도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Ivan을 처음 만난 건 2018년 3월 초에 있었던 박사과정 Skype 화상 면접이었다. 내가 이 박사과정 프로그램을 지원한 동기 중 하나는 Ivan의 연구 분야와 내 관심사 간의 적합성이었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성 관련 주제에 대해 꾸준히 논문 작업을 해온 학자였기 때문에 그런 교수에게 사사를 받고 싶었다. 당시 Ivan은 젊었고 아직 중견 학자 정도의 위치였기에 흔히 말하는 “대가”는 아니었지만, 최상위 학술지에 논문을 꾸준히 게재해온 연구자라 충분히 지도를 받고 같이 일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면접 이후 입학 허가 (admissions offer)를 받은 뒤, 4월 말에 1주일 정도 뉴욕을 방문했을 때 처음 대면으로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대화했는데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Ivan's Google Scholar Profile Link
2018년 8월 말 박사과정 첫 학기를 시작하고 나서 Ivan은 내 관심 분야에 관련된 중요한 논문들이나 새로 나온 논문들을 이메일로 공유해줬고, 그가 맡고 있는 MBA 수업의 조교로 함께 일하게 되었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당시엔 영어 실력이 훨씬 더 형편없었기에 미팅이나 수업 조교를 할 때 실수하지 않으려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Ivan 역시 원어민은 아니었고 본인도 박사 유학으로 미국에 처음 왔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많이 이해해줬다. 박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Prof. Montiel"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박사과정생들이 그냥 교수들의 이름을 부르는 걸 보고 나도 그렇게 불러도 되는지 이메일로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질문 같긴 하지만... 당연히 괜찮다며 이후로는 "Ivan"이라고 불렀다.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함께 일하며 점차 가까워지던 어느 날, Ivan과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어떤 주말에 무슨 이유로 일을 못 하게 되었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주말에 일하고 말고는 네가 알아서 할 일이야. 나한테 알려줄 필요 없어"라는 답장을 받았다. 한국에서 석사할 때는 주말에 나가서 일하는 게 당연했기 때문에 적잖은 문화 충격이었다. 그렇게 첫 1년이 흘렀다.
2019년 가을 학기, 박사과정 2년 차가 되자마자 Ivan과 함께 첫 번째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개인적인 일도 있었고, 영어로 첫 강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압박이 컸다. 내가 박사과정 중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조차 확신이 없던 시기라 모든 것이 예민하게 다가왔고, Ivan과도 괜히 조금 데면데면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Ivan이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강의에 자신감을 갖고 전적으로 통제하는 느낌을 가지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려. 하지만 너도 곧 그렇게 될 거야."라고 말하며, 맨해튼 허드슨 야드 (Hudson Yards) 근처 Mercado Little Spain에 있는 한 식당에서 스페인식 타파스 (tapas: 스페인 전통의 작은 안주 요리)를 먹으며 맥주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날 처음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전까지의 어색했던 관계가 눈 녹듯 풀렸다. 그전까지는 개인적인 질문도 거의 하지 않았고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일만 하던 사이였는데, 그날 이후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2020년 봄 학기, Ivan과 그의 기존 공저자들과 함께한 두 번째 연구 프로젝트를 첫 번째 프로젝트에 이어 진행했지만, 전적으로 내 잘못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술지에서 제시한 마감일까지 논문을 제출하지 못해 결국 그 프로젝트는 폐기되고 말았다. 여러모로 다시 힘든 시기였고, 3월 중순부터는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집에 갇혀 혼자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정말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벼랑 끝 같은 시기였다. 그런데 그 시간을 어떻게든 버텨내고 나니 오히려 Ivan과는 더 가까워졌다. 원격으로 논문 작업을 이어가며 서로 물이 올랐고, 첫 번째 프로젝트 논문은 수정 후 재제출 (Revise & Resubmit, R&R)을 거쳐 최종 게재되었다. 이후 다른 논문들도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팬데믹이 조금씩 잠잠해질 무렵에는 Ivan이 나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점심을 먹고 논문을 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미국에 가족이 없던 나를 여러모로 챙겨주고 신경 써준 덕분에, 외롭고 고립될 수 있었던 시기를 오히려 따뜻하고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었다. 물론 Matt, Jeff를 비롯한 여러 좋은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박사과정 3년 차 (2020년 가을 학기-2021년 봄 학기), 4년 차 (2021년 가을 학기-2022년 봄 학기)에도 그 좋은 흐름이 이어졌다. 2022년 봄 학기 말, 교수 취업시장 (job market)에 나가기 직전까지 Ivan과 함께 최상위 학술지에 논문 2편을 게재했고 다른 논문도 3편이나 함께 냈다. 논문 작업과 수업 관련 업무뿐 아니라 Ivan이 맡고 있던 여러 가지 활동들을 같이 해나가며 보람찬 나날을 보냈다. 2022년 8월에는 시애틀 (Seattle)에서 열린 Academy of Management 연례 학회 (AOM: 전 세계 경영학자들이 모여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교류하는 경영학 분야 최대 규모의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한 뒤, 초대를 받아 인생 처음으로 스페인에 방문해 Ivan의 부모님, 여동생, 조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로 많이 의지했고 덕분에 박사과정 생활은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정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2022년 9월, 첫 교수직 최종면접 (campus visit: 교수 후보자가 학교를 직접 방문해 강의 시연, 인터뷰 등을 진행하는 공식 일정)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Ivan은 정신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스페인으로 잠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뉴욕에 남아 남은 취업시장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고, Ivan은 스페인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 와중에도 추천서를 써주고 늘 응원의 문자를 보내주었다. 그 덕분에 10월 말 몇 개의 취업 제의 (job offer)를 받을 수 있었고, 11월 초에 최종적으로 현재 일하고 있는 학교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Ivan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하고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싶어 11월 중순에 스페인에 가서 일주일 정도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안심했는데, 이후 Ivan은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2023년 4월, 박사학위 논문 심사 (dissertation defense)를 마친 후 짧게나마 Ivan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 정말 오랜만에 아주 많이 울었다. 가까운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인지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무엇보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펐다. 학위 논문 심사 후 약 2개월 후에 있었던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영광스럽게도 대학원생 대표로 연설할 기회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Ivan에게 감사한 마음을 다시 한 번 표현할 수 있었다.
나는 Ivan의 첫 번째 박사과정 제자이자 마지막 제자였다. "처음"이라는 수식어는 의미 있었지만,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는 결코 원치 않은 것이었다. 슬픈 감정은 이제 많이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Ivan이 자주 떠오른다. 조교수 생활 2년 차를 마무리하는 지금, 가끔은 그에게 WhatsApp으로 투정을 부리고 싶어진다. 이따금씩 Ivan이 내 상황이나 고민을 알고 있다면 뭐라고 말했을지 혼자 상상하게 된다. 이런 감정은 가족이나 친구와도 쉽게 나눌 수 없는 것이다.
Ivan은 내가 경영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단단한 토대를 마련해 준 큰 은인이다. 함께 쓴 논문들은 당시 기준으로 나름 새롭고 도전적인 주제들이었고, 그는 열린 마음으로 그런 주제들을 함께 고민해주었다. 아마 다른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면 기업과 공중보건 (public health)의 접점을 다룬 논문들을 박사과정 중에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 양적 분석을 하기보다는 개념적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힘을 길러주었다. Ivan이 환경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경영학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사고체계를 갖고 있었고 그런 부분을 공유해준 점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학계 인적 네트워크도 Ivan 덕분에 구축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 있는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포함해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게 해줬다. 또한, Ivan이 여러 국가에 있는 친구들,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연구자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었다. 특히 연구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개발도상국에 있는 연구자들과 함께 협력하고 그들을 도우려는 그의 태도는 항상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일을 할 땐 진지하게, 놀 땐 신나게 노는 삶의 태도도 내게 큰 영감을 줬다. 궁금한 게 있으면 모르는 사람에게도 용기 있게 이메일을 보내 묻는 그의 적극성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앞으로 30년, 40년이 흘러 교수라는 직업이 여전히 존재할지, 내가 그때까지도 이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나는 분명 이 계절의 빛과 공기 속에서 Ivan을 떠올릴 것이다.
Ivan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