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

아이가 오지 않는 이유는? 모름

by 레모니

우리는 동갑내기 양띠부부로 2017년 꽃다운 26살에 결혼했다.


올해로 결혼 7년 차.

이제는 신혼이라 부르기에는 어색한 2인 3묘 가족.


21살에 만나 가정을 이루었으니 함께한 세월이 어언 11년 정도 되었다.

이제는 정말 '가족'하면 엄마, 아빠, 동생보다 남편이 더 먼저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왜 아이가 없을까?


우리는 딩크부부도 아니고 아이를 천천히 가지고 싶은 부부도 아니다.


그저


안 생긴다.


사회 초년생 시절 살던 동네 근처에 유명한 난임병원이 있었는데 지나갈 때마다 나는 정말 그곳과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참.. 오산이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아이를 참 좋아한다.

심지어 나는 어렸을 적부터 아이를 너무 좋아해 장래희망이 유치원교사에서 바뀌지 않았고 결국 꿈을 이뤘다.


중학생 때부터 아토피 없고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탄산음료, 과자 등을 먹지 않아 주변에서 별나다는 소리를 듣곤 했을 정도다.


아이를 일찍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 친구들 중에 가장 빨리 결혼했다.


이때쯤이면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체외수정 전문 병원에 다닌다.







우리 부부라고 7년간 마냥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결혼 뒤 산전 검사를 바로 받고 매우 건강하다는 결과와 함께 애국자라며 산부인과 병원 식구들의 힘찬 응원과 칭찬을 등에 업고 1년간 신혼생활을 즐겼다.


이제는 2세를 기다려보자! 하고 시작한 임신시도.


한 달 한 달 기대로 가득 차 바라보던 얼리 임신테스트기는 번번이 한 줄을 보여주었고 점점 임신테스트기와 멀어지게 되다가 이제는 생리예정일이 지나서 소식이 없을 때만 임신테스트기를 하게 되었다.


6년의 세월 동안 나는 흐린 두 줄도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만보 걷기도 하고 좋다는 영양제도 사 먹어보고 물구나무도 서보고 경주의 유명한 한의원에서 한약도 달여 먹어보고 심지어 한 달 동안 물과 소금만 먹는 단식도 해보았다.


2년에 한 번씩 각기 다른 난임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아도 건강하고 나이가 젊으니 자연임신을 더 시도해 보자던 선생님들.


원인불명이란 네 글자는 참 신기하게도 기대와 답답함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을 동시에 안겨준다.


나도 서른까지는 자연임신을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여러 방법을 쓰며 기다려봤지만 이제는 마지막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


내 별명이기도 한 박긍정의 마음으로 이왕 하는 시술!

최대한 즐겨보리!!!


2023년 3월.


남편과 손을 마주 잡고 차로 세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부산 난임병원에 갔다.

집에서 병원으로 운전하는 내내 한숨을 내쉬던 그가 난임병원을 졸업하고 환하게 웃으며 집으로 올라갔으면 좋겠다.


병원은 공교롭게도 몇 년 전 시아버님이 디스크수술을 했고 결과도 참 좋았던 그 병원과 같은 건물에 있었다.

우리의 결과도 좋을 거라는 의미 부여를 하니 기분이 좋았다.


남편과 손깍지를 꼭 낀채로 설렘과 걱정을 안고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병원이 새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내부가 참 깨끗하고 예뻤다.

의료진분들도 너무나 친절했다.


그 순간 떠오르는 기억.

차에 잘 놓아둔 병원 방문 시 필요한 이전 병원 검사 결과지들.


기대감에 차서 우리 둘 다 깜빡한 것 같다.


차 어디에 서류가 있는지 모르겠으니 네가 주차장에 갔다 오라던 남편은 서류를 찾아서 다시 병원에 들어오니 대기의자에 없었다.


텅 빈 의자만 바라보던 내게 간호사님이 다가와 말씀해 주셨다.


"남편분은 (정자)검사하러 가셨어요."


아...

그렇구나..

들어갔구나...


마음 속으로 나마 응원한다!


잠시 후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많은 감정이 담긴 눈으로 내게 걸어왔다.

그의 마스크 속의 표정이 너무나 궁금해서 마스크를 잡아 내리고 싶었지만 살짝 초점이 사라지고 말이 없는 걸 보니 남편의 심리적 타격이 생각보다 커 보여서 참기로 했다.


병원으로 운전해 오면서

"나의 능력을 보여주겠어!"

라고 외치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조금 뒤 간호사님이 나를 불렀고 난임진단서 작성과 진료를 위한 간단한 문진을 받고 다시 로비로 왔다.


나는 인지도와 유명세, 환자 수 대신 의사의 인간성에 끌려 이 병원을 선택했다.

이 병원을 다닌 사람들마다 성공률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건 의사의 열정이었다.

나에게는 열정 있는 의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진료실에 들어선 순간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의자에 앉기도 전부터 열정을 발휘해 설명을 시작하셨다.


그런데 자꾸만 내 시선을 강탈하는 책상 위 모니터.

모니터에는 내 이름 석자가 적힌 골반이 떡하니 보이는 X-레이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보자마자 알았다.


저것이 나의 난관 조영술 사진이구나!


난관 조영술은 자궁에 조영제를 투여하며 X-레이를 찍는 시술인데 난관이 자궁까지 막힌 곳 없이 뚫려 있어서 난자가 수정이 되어 자궁까지 도달하는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볼 수 있다.


마취 주사를 맞고 시술을 하지만 통증은 케바케다.


나의 경우는 자궁이 부풀어 터질 것 같은 그런 통증이었는데 대략 10초간 아프기 때문에 참을 만은 한데 통증 때문에 제어할 수 없이 두 다리가 달달달달 떨렸었다.


당시 의사 선생님은 '잘 뚫려있네요.' 이 한마디만 해주시고 사진을 따로 보여주시지는 않아 궁금하지만 결과가 좋다 하니 아쉽지만 그러려니 했었다.


참고로 나는 볼 수 없는 내 신체를 관찰하는 것을 매우 흥미로워하는 편이다.


궁금했던 나의 골반뼈와 자궁의 모습, 난관과 난소의 모습이 찍혀있는 사진이라니!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면서도 자꾸만 눈길이 X-레이 사진으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한차례 설명이 끝나고 나는 물어보았다.


"이 세모난 게 제 자궁인 거죠???"


"네. 정확히는 자궁의 내부입니다."


"생각보다 굉장히 작네요!"


"원래 이 시기(생리 후)에는 2~3cm 밖에 안됩니다."


굉장히 신기하고 호기심이 매우 충족되어 즐거웠다.


그 뒤 바로 체외수정과정을 시작하고 싶다는 우리의 의견에 선생님은 매우 힘차게


"자 그럼 초음파를 한번 봅시다!"


하며 우리를 이끌어주셨다.


나는 늘 궁금한 게 있었는데 그건 '체외시술과정은 생리 2~3일 차에 첫 방문 한 뒤 초음파를 보는데 탈의실에서 진료의자로 걸어가는 동안 흐르는 생리는 어떻게 하지?'라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궁금점이었다.


속옷을 입고 걸어가서 의자 앞에서 벗나?

휴지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가나?

뭔가 다른 도구를 주시려나?


혼자 엄청 궁금해했지만 탈의실로 안내해 주시는 간호사님은 아무 말씀이 없었고 나는 결국 물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그냥 속옷까지 다 탈의하시고 옆에 있는 물티슈와 티슈로 잘 닦으신 뒤 치마 입으시고 나오시면 돼요."


??


생리 2,3일째는 양이 제일 많을 시기다.


그럼... 피 흘리며 걸어가면.... 내가 바닥을 닦으면 되는 것인가..? 간호사님이 닦아주시나..?


어느 쪽이든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하라는 대로 최대한 열심히 닦고 의자로 걸어갔다.


참 신기하다. 그날은 생리 3일 차였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신나게 나오던 생리혈들이 그동안은 나오지 않았다.


안심하고 진료 의자에 앉았더니 앞에 초음파 모니터가 보였다.


오오!


또다시 시작된 나의 신체에 대한 흥미.

내 난포가 몇 개가 있는지 볼 생각에 살짝 신이 났다.


하지만 간호사님의


"의자 내려가는 동안 움직이지 마세요."


라는 말과 함께 의자가 자동으로 뒤로 젖혀지며 점점 머리가 밑으로 내려갔고 모니터는 시야에서 멀어져만 갔다.


아무리 눈알을 굴려도 모니터를 볼 수 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시야를 가리는 커튼을 손으로 쳐버렸다.


간호사님이 다시 커튼 위치를 조정해 주시는 걸 보며 커튼을 그냥 걷어달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이미 아까 진료실에서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내 난관 조영술 사진에서 눈을 못 떼던 내 모습이 생각나 오늘은 이만 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뭔가 다른 볼 게 없을까 하고 내가 열심히 눈알을 굴리는 동안 선생님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오른손으로는 초음파 기기를 이리저리 움직이셨고 생리 중 초음파는 처음인지라 아프려나 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아주 스무스하게 초음파 검진이 진행되었다.


몇 번의 촬영 버튼 누르는 소리가 들린 뒤 초음파 기기가 빠져나가고 간호사 선생님이 내 치마를 내려주셨는데 가랑이 사이를 열심히 꾹꾹 닫아주셨다.


음... 이미 모든 걸 보여드린 상태라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은 배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내 옷을 챙겨 입고 진료실로 돌아가니 고개를 푹 숙이고 책상 밑으로 휴대폰을 보고 있는 남편과 맞은편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보였다.


자리에 앉으니 방금 찍은 따끈따끈한 나의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셨다.

설명 전부터 내가 이제 짬이 좀 찬 건지 난포 수와 크기가 대략 착착 파악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다시 설명을 시작하셨다.


"자. 모든 결과치가 좋은데 왜 우리는 안될까?"


와 정말 제일 답답한 부분부터 긁어주시기 시작했다.


"지금 초음파 사진을 보면 이 결과를 보고 대부분 산부인과에서는 '좋네요. 건강하고 자궁 두께도 좋아요. 과배란약을 먹어보며 기다려봅시다.'라고 했을 거예요."


"오. 맞아요. 항상 좋댔어요."


"그런데 지금 생리 중이라서 그럴 것 같긴 한데 자궁 내부에 혹이 없긴 하지만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아요."


오 이런.. 어쩐지 이번에는 덩어리 혈이 평소보다 잦더라니..


"이건 다음 초음파 때 보면 알 수 있을 거고."


오 이런.. 자궁경 각인가..

(수면 마취 후 자궁 내부에 카메라를 넣어 상태를 관찰한 뒤 필요시 자궁벽을 기구로 긁어 청소? 하는 시술.)


"보면 왼쪽에 6개 정도의 난포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1개 정도의 가능성 있는 난포가 보여요. 그런데 보면 크기가 다르죠. 이 왼쪽에 네 개는 크고 나머지 두 개는 크기가 시기상 적당해요. 오른쪽의 한 개도 크기가 적당한데.."


호오라 이번엔 왼쪽에서 배란인가?


"제 생각은 그래요. 아마 이번에는 오른쪽의 이 한 개가 배란이 될 예정일 거예요."


잉????


"본인은 지금 AMH 수치(난소기능을 알 수 있음)를 보면 충분히 건강한 난자를 키워낼 능력이 있거든요. 그런데 아마 이때까지 하필이면 오른쪽의 한 개처럼 시기상 크기가 적당한 이 난포에는 난자가 없었거나 부실한 난자가 들어있었던 거죠. 건강한 난자가 들어있는 다른 난포들은 퇴화하고요."


덧붙여 설명하자면 원래 한 달에 한번 나온다는 난자는 원래 이렇게 선택된다.

우리 몸은 여러 개의 난포 중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크기와 좋은 상태를 가진 한 개의 난포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퇴화시키고 선택된 난포에 투자를 한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한마디로 운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보통 이렇게 이상이 없어 원인불명이라는 부부들은 이 케이스가 7~80%에요."


아아... 우리가 그 7~80%에 해당되는 것이었을까..?


"이렇게 된 원인이라 하면 호르몬 문제일 수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시술을 진행하다 보면 알게 될 수도 있어요."


뭔가 그래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예상되는 난임의 이유라도 하나 알려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


"이제 오늘부터 자가주사를 시작할 건데 4일간은 오전에만 주사 한 대. 5일째부터는 저녁에도 한 대가 추가될 거예요."


"아 배란 억제 주사인가요?"


"오! 맞아요! 공부 많이 하셨네!"


열정적인 우리의 의사 선생님은 나의 그 한마디에 함박웃음을 띠며 매우 좋아하셨다.


맞다. 나는 공부를 많이 했다.


사실 시험관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 건 결혼 3년 차부터였다.

하나에 꽂히면 마구 파고드는 성격이라 당장 할 생각이 없음에도 지식만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시술을 하고자 하였으니.. 하하


최근에는 남편을 앉혀놓고 체외수정 강의를 해댔었다.



그에 대한 반동인지 의사 선생님이 설명을 하시는 동안 자꾸만 학창 시절 책상 밑에 숨겨놓고 휴대폰을 보던 친구들처럼 남편이 자꾸만 팔을 밑으로 쭉 내리고 고개를 푹 숙여 휴대폰을 넘기다 말았다 했다.


아무래도 우리 남편은 불편한 상황에서 회피하려는 성향이 많은 것 같다.
설명 듣는 동안도 이러는데 내가 나중에 출산할 때도 자꾸 휴대폰을 볼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임신 기간 동안 멘탈을 튼튼하게 키워줘야겠다.


그 모습을 힐끔거리다 '나라도 선생님 말씀에 정말 집중해야지.' 하고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그러다 시술 일정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자 남편이 고개를 들고 눈을 빛냈다.

드디어 한마디도 했다.


"채취 날짜는 언제일까요?"


체외수정 시술 중 27일이라는 기간 동안 부인은 계속 배에 자가주사를 넣고 질정을 넣고 채혈을 하고 세 번의 초음파 검진을 받고 수면마취 후 난포를 채취하고 배아를 자궁에 이식받는 등 수많은 과정을 겪는데 남편은 시술상 할 일이 한 개뿐이다.


남편은 채취일에 드디어 할 일이 생긴다.


정자를 채취해서 통에 담아내는 일이다.


채혈도 마취도 주사도 긴 시간도 필요 없다.


시술 기간 동안 시술 상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고 아내의 과정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끝이다.

그 스트레스를 쉽게 보는 건 아니지만 과정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겪는 주체인 나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우리 남편은 교대근무자다.


이미 나의 강의에서 일정을 다 알려주었었는데도 제대로 계산을 안 해봤었는지 운전하며 내려오는 동안 내가 예상 채취일을 다시 얘기하며 그날이 아침 근무임을 알려주자 휴가를 내기 어려운 날임을 알고 그제야 엄청 걱정하는 중이었다.


시술 기간 동안 본인이 딱 하나 할 수 있는 과정을 제대로 못 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정자 냉동이라는 방법이 있긴 하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예상 채취날은 내 예상일로부터 하루, 이틀 뒤였다.


그나마 예상일보다는 휴가 내기가 조금 쉬운 날짜인터라 다행이었지만 교대근무자의 특성상 휴가를 내려면 대신 근무해 줄 대근자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최대한 빨리 확실한 채취일을 알아야 했다.


의사 선생님께 상황을 말씀드리자 초진 날로부터 6일째인 첫 번째 초음파 때 거의 확실한 배란일을 알려주시겠다 하셨다. 그리고 3일 뒤에 두 번째 초음 파을 보는데 그때는 확실한 채취일자가 나온다고 하셨다.


선생님 예상으로는 두 번째 초음파 3~4일 뒤에 채취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시술을 시작하고 난자를 채취하기까지 대략 12일 정도가 걸리는 것이다.


설명을 다 듣고 나오니 간호사님께서 오셔서 정자를 냉동하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남편은 조금 고민한 뒤 일단은 날짜를 기다려본다고 했다.


이제 대망의 자가 주사 놓는 방법을 듣는 시간이었다.

나는 시술을 함에 앞서 남편에게 고통을 나누자며 네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에는 나에게 네가 주사를 놓으라고 했다.

주사 놓는 게 무섭다는 남편은 그래도 노력해 보겠다고 했었다.


간호사선생님이 주사실로 오라고 하셔서 '드디어!'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걸어가는데 뭔가 허전해서 뒤를 돌아보니 남편이 대기실 소파에 앉아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주사 놓는 법 배워야지! 이리 와!"


남편은 오들오들 거리며 무거운 걸음으로 잘 따라 들어왔다.


간호사님이 난임에 도움이 될 만한 영양제를 추천해 주신 다음(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먹고 있는 영양제들이 있어 구매하지 않았다.) 시술 일정이 적힌 종이와 함께 주사를 보여주셨다.

매일 아침마다 주사할 나의 과배란약은 LG화학에서 만든 FSH(난포자극호르몬)인 폴리트롭이었고 5일째부터 주사할 길항제는 GnRH antagonist(성선자극호르몬 분비호르몬 길항제)인 오가루트란이었다.



과배란약은 퇴화할 난포들을 계속 키워내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하기 위한 호르몬제이고 길항제는 난포들이 채취 전에 터져서 난자를 배출해 버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주사한다.


대략 15일, 10일간 주사할 이 약들은 경험자들에 따르면 아픈 축에도 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알고 있기에 침대에 앉아 담담히 설명을 듣고 있는 나의 앞에서 남편은 의자에 앉아 끙끙 아아.. 거리며 마른세수를 하고 내 두 손을 잡고 얼굴을 묻는 등 매우 불안해하다가 간호사님이 주사를 뜯는 방법을 보여주시자


"으아.. 그 주사 아파요?"


하며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아프지 않은 걸 아는 나는 그 모습이 퍽 귀여워 보여서 남편을 보고 있었는데 간호사님이


"개인마다 달라서 아프다는 분도 있고..."라고 하셔서 다시 주사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간호사님이 알려주신 자가주사를 놓는 방법은 이러하였다.

주삿바늘에 꽂힌 뚜껑을 빼고 손가락으로 주사기 용액이 담긴 부분을 두어 번 튕겨 공기방울을 뺀 다음 피스톤을 밀어 올려 약이 두세 방울 나오는 걸 확인한다.


배꼽 세 마디 옆을 지난 부분을 알콜스왑으로 소독하고 집게손으로 잡아 불룩하게 만들어 준 뒤 배에 찔러 넣고 천천히 주사액을 밀어 넣으면 된다.


왼쪽에 주사했으면 다음에는 오른쪽에. 같은 곳 말고 다른 곳에 주사하라고 했다.


지금은 간호사님이 놓아주신다고 하셔서 나의 숨겨놨던 뱃살을 보여드렸는데 남편이 나중에 집에 가면서 내가 치마를 내리니 뱃살이 메롱하고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놀렸다.


바늘이 얇아서 들어가는 따가움도 적고 약이 들어가는 것은 거의 전혀 아프지 않았는데 간호사님이 꼬집고 있는 뱃살이 더 아팠다.


이 정도면 15일간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며


"잘할 수 있지?"


라고 말하며 남편의 어깨에 손을 올렸는데


그 순간 채취일에 올 수 있을까 걱정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르며 그때까지 남편이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네가 나 주사 놓아줄 날이 없잖아????"


교대근무표를 보며 내 생각을 확인하고 남편을 다시 쳐다봤다.
남편은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 웃음소리를 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남편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흔들고 있다 보니 간호사님이 필요한걸 다 챙겼다며 이제 가져가시면 된다고 아이스팩을 넣은 하늘색 가방을 주셨다.

안에 든 주사를 꺼내 냉장보관하고 시술스케줄 종이는 병원 방문마다 들고 와야 한다고 하셨다.



주사실에서 나와 수납처에서 병원비 52,240원을 내고 처방전과 난임진단서를 받았다.


난임국가지원금 신청을 정부 24 앱에서 할 예정이라 jpg 파일을 부탁드리고 오늘 병원비 지원은 어떻게 되는 건지 여쭤보았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만큼을 제하고 내가 내야 하는 부분만 청구하신 거라고 하셨다.

원래 오늘 병원비는 20만 원이 좀 넘는다고..

그와 함께 보통 시술하며 국가지원금은 다 쓰게 된다고 덧붙이셨다.


작년 7월까지만 해도 우리는 지원대상이 아니었는데 8월부터 경북 지역 난임부부들은 소득에 관련 없이 모두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급여항목의 90% 정도와 두 가지 비급여 항목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 심각한 저출산 시대에 정신적, 신체적인 고통을 감내하며 출산을 위해 노력하는 난임부부들에게 왜 모든 과정을 지원을 안 하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처방전은 설명 들은 게 없어서 여쭤보니 항생제라고 시술 전에 염증 등 안 좋을 수 있는 것들을 싹 정리하는 역할이라고 하셨는데 약국에서 2,300원을 내고 약을 받아보니



기생충약과 위장보호제인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난임진단서를 읽어보는데 난임의 원인란은 여전히


'원인불명'


에 체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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