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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늘 May 10. 2020

욕은 면전에서

퇴사하고 나니 가장 후회되는 일

그렇게 좋아하던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매우 충동적이었다. 갚아야 할 대출금이 산더미인 데다 남편 역시 육아휴직 중이었고 이직할 회사도 없었다. 애정을 쏟던 원고의 출간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던 상태라 나올 책들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그러나 불현듯 나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갈등이 발생했고 내가 신뢰하던 사람들과 이전에 나누던 방식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자 내가, 욕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메신저 접속자 리스트를 수시로 드래그 해댔고 카톡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걸어 잠깐 휴게실로 나올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전화기를 붙잡고 복도를 서성이기도 했다.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았고 내 얘기에 대꾸하는 사람이 생기면 급한 업무도 제쳐두고 떠들어댔다. 처음에는 분명히 분노의 대상이 있었는데, 이 멍청한 짓들을 반복하는 사이에 가장 추한 건 내가 되어 있었다.


당시의 내 모습인 것만 같은 구글 이미지 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갈등 당사자와 바로바로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게 되면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자꾸 뒤에서 욕을 하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내 일에 내 의사가 반영되지 못해 업무에 대한 애정과 집중도가 떨어진다거나 더 나은 해결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껄끄러움 때문에 모두가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업무를 종결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식으로 문제를 덮어버리고 난 뒤 모두가 모두의 뒤에서 욕을 해대느라 끝도 없는 소모전을 벌여야 한다는 데 있다. 적어도 내가 회사를 나올 때, 내가 가장 실망한 사람은 나였다. 하루 종일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제발 내 이 분노를 좀 이해해달라고, 이 사람에게 했던 욕을 저 사람에게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고대로 읊어대면서 팀과 팀 사이를, 층과 층 사이를, 옮겨 다니고 있는 내 모습이 문득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 추하구나. 거울을 봤더니 거기 악마 하나가 있는 걸 발견한 기분이었다. 바로 회사에 사직 의사를 전했다. 여럿이 붙잡았지만(아마도 나를 위해서), 그만두기로 한 뒤에야 겨우 나는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벌써 몇 년 전에 팀 사람들끼리 누가 집들이를 한다더라는 말을 나눈 적이 있다. 집이 어디고 인테리어가 어떻더라는 말이 나오다가 새 집이라 깨끗하겠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선배 하나가 그런 말을 했다. “아무리 깨끗하게 정리를 해놔도 남의 집은 다 지저분해 보이게 되어 있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아무리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집도, 살펴보면 걸레는 왜 저기에 뒀나, 화분에 잎이 말랐네, 옷걸이를 왜 저기 걸어뒀지? 하는 생각들을 품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백 명이면, 걸레 두는 곳도 백 군데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백 명이면 한 사람이 남은 아흔아홉 명에게 품는 불만도 오만 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 백 명이 모여서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누구에게랄 것 없는 불만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거기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말하기를 하는 것이다. 아니면 뒤에서 욕을 하며 순간순간의 분노를 발로 밟아 끄는 것이다. 번지는 불을 발로 밟아대느라 소모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작게는 해당 상사나 동료, 크게는 조직에 대한 덮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욕을 하느라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사실상 어떻게 해도 최상의 결과는 낼 수 없다. 결과는 뻔하다. 조직은 당장 저거라도 해줄 애가 아쉬워서, 조직원은 월급 받아야 되니까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관계의 결말은 파국이다.

파국 아저씨


나는  그렇게 분노했던가. 회사를 나오고 반년이 되어가는 지금, 당시는 나라는 존재를 뒤흔들었던 그 거대한 문제들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처음에 왜 그랬지? 그다음에 누가 뭐랬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했던가? 모두 희미한 갈색추억(탑골 가요 검색 요망)이 되어버렸다. 분명한 것은 이 세 가지다. 내가 엄청 화가 났었다는 것. 그거 들어주느라 여럿이 피곤했었을 것이라는 것. 나는 결국 여기저기 욕만 하다가 튕겨나간 퇴사자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라는 것.


입사 직후 아마도 회사 전체에서 막내에 가까웠을 무렵에 이런 일이 있었다. 연관 부서가 모두 모여 건강서를 기획하는 자리에서, 가장 직급이 높았던 참석자 하나가 다음 기획 아이템으로 ‘여자는 가슴이다’가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손이 책상을 탁 하고 내리치더니 입이 동시에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라고 말하고 있었다.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을 한다’는 관용구가 정확히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진짜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온 반사적 행동이었다. 막내의 인생으로서는 대참사였지만, 적어도 그 이후 내가 들어간 회의 자리에서 그런 식의 발언은 다시없었다. 그 일과 관련해서 누굴 찾아가 하소연을 하거나 욕을 해본 적도 없다. 당사자에게 바로 말했기 때문이다. 막내인 당시로서는 실수였지만, 돌이켜보면 회사 다니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욕은 당사자에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당사자에게 할 수 없는 욕이라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 오 분 뒤, 한 시간 뒤, 하루 뒤, 한 달 뒤의 나를 위해서도 현명하다.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와서야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아둔하기 때문인가, 백수이기 때문인가. 문득 새벽에 잠을 깨서는 이런 글이나 쓰고 앉아 있다.         

할 말은 면전에서 바로바로 하시는 이효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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