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람들

남은 자들이 기억하는 방식

by 박루아


어느 순간부터였다.
댓글창이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다.
좋아요는 줄지 않았고,

조회수는 오히려 늘었다.
사람들은 모여들었지만 말은 멈췄다.


늘 영상마다 댓글을 달던 그 여자 시청자,
꽃말을 분석하던 그 계정이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은채는 그 사람이 남긴 마지막 댓글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 협찬사는 뭔가 이상해요.
혹시… 꽃말이 어떤 건지 알고 계셨나요?”

짧지만, 뼈가 닿는 말이었다.


은채는 그 댓글을 멍하니 바라보다

답글을 달까 망설였다.
하지만 그 밤, 댓글은 삭제됐고

계정은 비활성화되었다.
누군가가 신고했는지,

아니면 스스로 지웠는지 알 수 없었다.


플랫폼에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은 같았다.
“보안 정책상 개별 정보는 제공할 수 없습니다.”
흔적은, 조용히 지워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처음 유치원 앞에서 말을 걸던 형사는

어느 날부터

“휴가 중입니다.”라는 자동 응답이 대신했다.
그는 혹시 영상 어디엔가 댓글을 남기던

또 다른 관찰자였을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남편은 세 달째 연락이 닿지 않았다.
치과 예약도, 열이 올랐던 밤도 공유되지 못했다.
하지만 은채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눈앞에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진심으로 궁금해했던 건

‘아이의 상태’가 아니라
’그날 저녁 약속에 방해받지 않을 권리’였다.

그의 세계엔 늘

온라인 게임, 친구들 모임,
자신이 총무로 있는 동호회가 우선이었다.
육아는 “애는 자면 되잖아.” 한마디로 정리됐다.



그제야 은채는 깨달았다.


‘사라진다’는 건

꼭 어디로 떠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같은 공간에 있어도,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말을 해도, 눈을 맞춰도,

거기엔 영혼이 없는 공허만 있을 뿐이다.

그 공허는 부재보다 더 깊은 고독을 남겼다.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숨어 있었고,
누군가는 거리를 둔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침묵’은 방향을 바꿔,

그녀를 더 낯선 곳으로 몰아넣었다.


은채는 채널을 닫았다.
별다른 알림도, 작별 인사도 없이
조용히 메일 하나를 보냈다.


“이 계정은 오늘로 운영을 종료합니다.
후원, 광고, 계약 등 어떤 요청도 받지 않겠습니다.
필요시 법적 대응하겠습니다.
— 은채 드림.”


그게 끝이라 믿었다.

이틀 후, 포털 실시간 검색어 6위.
“전직 유튜버 은채, 꽃말 콘텐츠 논란”


”딸을 도구로 이용한 암호 시스템?”

어디서 찍혔는지 모를 사진, 모자이크 된 캡처,
자극적인 자막이 교차했다.


악마의 편집인가, 침묵의 공모자인가.

뉴스 앵커의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거실에 냉기처럼 퍼졌다.


“특정 시간·소품을 활용해
암호를 삽입·전달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해당 채널은 현재 중단 상태이며,
당사자는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실감했다.
내가 멈춘다고 세상이 멈추진 않는다는 것을.
그녀에겐 작업물이었지만,
사람들에겐 사건의 단서였고
수백만이 달려들어 해독하려는 퍼즐이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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