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순간

시스템은 끝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by 박루아


그날 오후, 현관 인터폰이 울렸다.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기자도, 경찰도 아니었다.
유튜브 기반 탐사팀 — ‘진실의 순간 팀’ 소속이었다.


“은채님 맞으시죠?”

“… 채널은 종료됐고—”
“사적인 일이 아닙니다.

지금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사건입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은채는 그때 알았다.
조용히 빠져나오려 했지만,
시스템은 조용히 놓아주지 않는다는 걸.
관객은 더 많아졌고, 조명은 더 강해졌다.
무대에서 내려올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 오늘은 안 찍는 거지?”
하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은채는 알고 있었다.
다시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의 영상에는
아무도 웃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그 밤, 하윤은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사과 향 치약 냄새가 희미했고,
속눈썹이 규칙적으로 떨렸다.

이 아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실수가 있었든, 내가 직접 말해야 한다.


커피머신을 켰다.
물이 데워지고,

커피가 떨어지는 소리가 또렷했다.
노트북을 열고,

지워버렸던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했다.


백지 화면.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닿았다.

“저는 누군가의 아내였고, 누군가의 엄마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에겐 도구였고…
어떤 이들에겐 ‘나쁜 징조’로 기억되는 사람입니다.
이제, 제가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저장은 하지 않았다.
‘발행’도 누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분명했다.
누구의 각본도 아닌 나의 목소리가 켜졌다.
늦게 도착한 진실을,
이제 내가 이끌어갈 차례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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