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제보자에서, 시스템의 추적자로
은채는 핸드폰을 든 채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김태연 기자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중입니다’라는 메시지만 되돌아왔다.
그녀는 채로운 하루 채널의 관리자 페이지를 열었다.
광고 제휴, 제3자 제공, 보도용 가이드…
모두 낯선 단어들로 빼곡했다.
처음엔 단순히 영상을 기록하고
감정을 나누는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그 감정은 상품이 되어 돌아왔다.
아이의 얼굴, 티셔츠, 방 안의 그림자조차
‘이용 약관’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결국 그녀는 유튜브 고객센터
공식 채널로 들어갔다.
수많은 자동응답 항목 중
‘도움이 되지 않으셨나요?’를 눌렀을 때,
처음으로 빈칸이 열렸다.
그녀는 그곳에 본명을 입력했다.
“제 이름은 박서현입니다.
아이의 신상이 유출되었습니다.
해당 영상은 비공개 요청드립니다.
이 영상은 제가 의도적으로 게시한 것이 아니며,
시스템 오류 또는 외부 접근 가능성을
확인해 주십시오.”
손끝이 떨렸다.
‘제 이름은’이라는 문장을 쓰고도
한동안 덧붙이지 못했다.
이름을 밝힌다는 건 또 하나의 노출이었다.
‘채로운 하루’라는 이름 뒤에 숨을 수
있었던 마지막 장막이 벗겨지는 기분.
이제 그녀는 시스템 속에서
완전히 ‘박서현‘이 되었다.
그때, 방문 틈으로 하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 오늘 학교 안 가도 돼?”
“응, 오늘은 우리끼리 있는 날이야.”
“사람들이, 엄마 영상 보고 우리 집도 알아낸대…
그거 진짜야?”
은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아이의 머리를 감싸 안고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작고 따뜻한 이마가 가슴께에 닿자 눈물이 고였다.
‘지켜줄게’라던 약속은
이미 허공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그날 오후, 메일함에 낯선 메시지가 도착했다.
보낸 사람 없음, 제목 없음.
첨부파일 이름은 catalog_index.ENC.
본문엔 단 두 줄의 문장이 있었다.
“브랜드 협찬 시점의 모든 연결을 되짚어보세요.
큐레이터는, 늘 당신보다 먼저 알고 있었어요.”
그녀는 숨을 삼켰다.
‘큐레이터’ — 그 단어는
오래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 협찬 제안을 받았을 때,
메일 한 줄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은채님은 큐레이터가 추천한 채널이라
안심된다고 하네요. “
그땐 단순히 브랜드의 마케터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입구였다.
시스템으로 향하는 은밀한 문.
은채는 망설이다가 파일을 클릭했다.
암호화된 확장자였지만,
클라우드와 연동된 노트북이
자동으로 해독을 시작했다.
잠시 후, 화면에 표 형태의 목록이 펼쳐졌다.
브랜드명, 제안 날짜, 키워드, 유입 경로, 추천자…
그녀의 눈이 한 줄에서 멈췄다.
가장 처음 유료 협찬을 받았던 브랜드, ‘시엘앤코’.
제안 날짜는 2023년 4월 16일,
캠페인명은 ‘일상의 위로’,
그리고 마지막 항목 — 추천자: J.W.
그 순간, 심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정우.
그녀는 그가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1년 전, 아무 말 없이 사라졌던 남자.
하지만 그가 떠난 게 아니라면?
그저 ‘추천자’라는 이름으로,
플랫폼 어딘가에서
여전히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었다면?
은채는 메일함을 뒤졌다.
2023년 4월, 그녀가 처음 받았던
협찬 제안 메일이 있었다.
“은채님 콘텐츠 잘 보고 있습니다.
시스템 협력 브랜드의
큐레이션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다음 링크를 통해 제안을 확인해 주세요.”
이름도, 서명도 없었다.
도메인은 ‘connect.media-hub.org’.
그때는 그저 기회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모든 것이 연결되고 있었다.
정우, 큐레이터, 시스템 — 그리고 Judge99.
은채는 다시 목록의 끝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마지막 줄에서 눈이 멈췄다.
브랜드명: 비공개.
제안일: 자동화 수신.
캠페인명: 후속재생.
추천자: Judge99.
손끝이 차가워졌다.
정우와 Judge99,
그리고 수많은 큐레이터들.
그들은 서로 다른 이름을 쓰지만,
결국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된 존재들이었다.
‘추천’이라는 말로 포장된 감시의 구조.
은채는 노트북을 덮었다.
이제 그녀는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찾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채로운 하루의 은채’가 아닌, ‘박서현’으로
스스로를 다시 호출한 그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