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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Nov 04. 2022

눈을 보고 마음으로 대화하기.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가 바로 "엄마다!"이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제일 먼저 넷째가 나에게 다다다다 달려오며 그렇게 외친다. 22개월, 아마 퇴근하는 엄마를 가장 기다릴법한 나이여서 그럴 거다. 그다음이 여섯 살 셋째,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이다. 사춘기인 큰아들도 게임하는 시간이 아닐 때는 자기 방에서 내려와 반겨주니 그래도 아직은 다행이다. 달려오는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주고 안부를 묻다 보면 아이들의 쉴 새 없는 이야기 공세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손들고 한 명씩 이야기하면 얼마나 좋아. 그래도 아이들에게 기다려지는 엄마라서 좋다.




 엄마라서, 특히 워킹맘이라서 가장 힘든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못 보낸 거라고 늘 이야기한다. 더욱이 아이가 넷이다 보니 한 명과 오롯이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늘 그렇듯 죄책감에 변명만 늘어놓다가 해결책이 없을까 고민하던 어느 날, 아이에게 잠깐이라도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대화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어디 육아서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빠들이 집에서 잠깐이라도 양질의 육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구절이 있었다. 다른 집 아빠들만큼 밖에서 시간을 보내니 나도 해당되는 것 같았다.




 알고 보면 아이가 신생아일 때부터 나는 늘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했다. 말 대신 눈으로 대화를 했달까? 그런데 아이가 커갈수록 대화처럼 보이는 대화만 있을 뿐 진심을 담은 대화는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대화를 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기회가 되면 아이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스럽다 느끼며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로 했다. 물론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다. 아이 말 중간에 내 말을 자꾸만 섞고 다른 것에 쉽게 정신이 팔렸다. 옆에서 다른 아이들이 방해꾼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30초만이라도 매일 네 명의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의식적으로 연습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신기하게도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게 되었다. 말하는 대화가 아니라 들어주는 대화를 말이다.

품에 안은 그 순간부터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해주었는데 말이지.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와 둘만 있게 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늘 내 주변을 위성처럼 맴도는 넷째, 아직도 엄마가 재워줘야 잠을 자는 셋째와는 그래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직 엄마손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째, 둘째와는 아무래도 노력이 필요했다. 일부러 데이트하는 시간도 만들고 취미를 둘이서만 같이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회가 생기면 질문을 던지고 들어주려 노력했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대화자세에 돌입하는 엄마에게 반사를 날리지 않고 아직은 맞장구쳐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노력이 가상했나 보다.

골프로 대동단결.




 오늘 밤, 셋째의 눈을 바라보고 아이의 귓가에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져주며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엄마 치아 요정이 내 베개 밑에 어떻게 들어와서 이를 가져가지? 선물로 얼마나 놓고 갈까?" 방은 어두웠지만 아이 눈에서는 반짝이는 빛을 보았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둘째가 방으로 왔다. 내 옆에 슬며시 누우며 내 팔에 얼굴을 살짝 비볐다. 나보다 몸무게가 훨씬 더 나가는 아들을 슬며시 안아주었다. 물론 징그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아이는 내일 학교에서 점심을 시켜먹겠다며 메뉴를 읊기 시작했다. 자신의 방에 침범한 넷째를 안고 안방에 들어온 큰아이까지 합류했다. 사랑방이 따로 없게 느껴졌다. 눈을 보고 진심을 담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방 단골메뉴인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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