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 8기가 가능한 걸까?

포기조차 할 수 없다면, 그냥 해

by 박세미

"그래도 영어강사였는데, 쉽게 영어점수를 받을 수 있겠지?"


호주에서 영주권을 받을 때 꼭 필요한 영어시험점수인 IELTS. 처음 영주권을 따기로 결심했을 때도 미용실에서 1년 경력을 하는 대신 영어점수 고득점으로 영주권을 신청하기로 결심했다. 영어를 가르치다 보니 솔직히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학교를 졸업하고 미용경력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학교도 졸업했고 경력인증도 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게 아이엘츠 점수였다. 아이를 낳기 전 필요한 점수를 만들어서 영주권신청을 해놓고 편하게 육아를 하자고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임신 중에도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 네 가지 영역을 하루 한 시간씩 총 네 시간 공부했다. 리스닝과 스피킹이 가장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읽기와 쓰기에 좀 더 집중하며 시험준비를 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으니 당연히 점수가 나올 줄 알았다. 명백한 오산이었다.



임신 막달 무렵 첫 시험을 보았다. 원래 시험 중간에 화장실을 가면 안 되지만 시험관의 배려로 라이팅시험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온 기억이 난다. 당시 고득점으로 영주권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평균 7.0이라는 점수가 필요했다. 평균이 아닌 네 개의 영역 모두 7점을 넘어야 했다. 그런데 첫 시험에서, 그것도 스피킹에서 6.5를 받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스피킹에서 6점을 받았다니 말도 안 되었다. 영어회화 강사였고 모든 과목 중에 가장 자신 있는 게 스피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는 있었다. 시험영어와 생활영어는 엄연히 달랐고 나는 시험장에서 유창한 생활영어실력을 보여주고 나온 것이었다. 오만했다. 자신 있던 분야에서 엄청난 패배를 맛보게 되니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자괴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그마저 쓸데없는 감정소모였다.



2주 뒤에 있는 두 번째 시험을 신청했다. 이제 감을 잡았으니 바로 원하는 점수가 나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스피킹에만 몰두해서 시험준비를 했고 설마 이번에도 떨어질까 하는 의심까지 했었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라이팅에서 6.5가 나왔다. 스피킹은 7점을 넘었는데 말이다. 충격이었다. 주변에서는 두 번의 시험결과가 장난 같다고도 이야기했다. 결국 그렇게 아이를 출산했고 한동안은 시험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육아에 어느 정도 손이 익숙해질 무렵 다시 책상에 앉았다. 아이가 자는 시간을 틈타 공부를 했고 다시 시험을 신청했다. 역시나 실패였다. 엄청난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자 서서히 내 안에서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나 하나만 잘해서 점수를 받으면 영주권을 받아서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데 그걸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총 7번의 시험을 보게 되었다. 쓰기가 잘 나올 때는 말하기에서, 말하기가 잘 나올 때는 쓰기에서 과락이 나왔다. 시험점수를 받아볼 때마다 괴로움에 울부짖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 년이 다되어갈 무렵에는 그냥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데리고 미래가 없는 한국으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포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포기조차 할 수 없다면, 그냥 해'


답은 정해져 있었다. 결국 여덟 번째 시험을 신청했고 평균 8.5점라는 점수를 받았다. 전 과목 모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영주권을 신청하게 되었다. 아이가 딱 한 살이 되었을 때였다. 컴퓨터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결과를 확인했을 때,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 그때의 환희와 설렘, 그리고 안도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마 포기했더라면 호주에서 매 순간 감사하며 사는 나와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을 가진 우리 아이들은 없었을 거다. 정말 행복하게 웃으며 큰아이의 돌잔치를 했던 순간이 추억으로 남았다.


영주권을 신청하고 안정된 환경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 나는 그렇게 호주에서의 삶을 하나씩 채워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