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은 시작일 뿐, 현명함이 필요해.
'간절하게 원하는 것만으로 버틸 수 있을까?'
2009년 5월 23일, 첫아이가 태어났다. 건강한 남자아이였다.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만 같았던 세상에서 아이가 중심이 되었다. 내 목숨을 내줄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아이를 위해 더더욱 영주권을 빨리 따서 안정된 환경에서 키우고 싶었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바로 다시 학교를 다녔다. 고작 일주일 남짓 쉬어서인지 회복도 안된 몸으로 학교에 가는 건 쉽지 않았지만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하러 호주로 와주셔서 그나마 가능했다. 문제없이 학업을 있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마저도 행복했다. 그렇게 2주 동안 엄마의 보살핌 속에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며 2학년의 반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엄마가 한국에 가시니 당장 학교는 가야 하는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간절함만으로 버틸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결국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가게 되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나였지만 따질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도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이론수업을 과제로 대체해 주고 실습 때만 학교에 나오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실기시험을 볼 때는 친구들이 아이를 봐주기도 했다. 늘 문제상황은 내가 해결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기대하지 않던 타인의 배려와 도움을 받게 되니 어색했다. 그렇게 과분한 도움과 배려를 받아 2년의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100시간의 경력과 2년을 학업까지 마치고 나니 마지막으로 남은 건 영어점수였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영어시험공부를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 집중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점점 커가면서 낮잠시간이 줄어들자 공부를 할 시간이 한없이 부족했다. 아이의 활동량이 늘면서 함께 놀어주는 것만으로도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꼈다. 아이를 재우고 공부를 하려다가 나도 잠들게 된 날이 부지기수였다. 졸린 눈을 비비고 책상에 앉았지만 멍한 머리로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돈도 늘 부족했다. 공부를 하려면 교재도 필요하고 학원도 다녀야 하는데 가난한 유학생에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시간도 체력도 돈도 없는 상황. 마치 허들을 뛰는 것처럼 하나를 넘으면 다른 장애물을 바로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간절함은 시작일 뿐, 현명하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거야.'
영주권을 따겠다고 결심하게 된 시작이 간절함이었던 것이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간절히 원하기만 한다고 해결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를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주어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다른 대안을 세우는 것이 필요했다. 전처럼 하루 4시간 계획한 만큼 공부를 하는 대신 그냥 하루 한 시간이라도 공부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부족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걷고 함께 놀아주며 운동을 했다. 원하는 점수를 3개월 안에 받자고 설정한 목표도 없앴다. 대신 그저 때가 되면 시험을 보자고 마음먹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계획을 수정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몸도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현명하게 상황을 대처해나가다 보니 힘든 과정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나를 다잡아가며 영주권의 마지막 관문인 영어시험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저 몇 번 치면 될 줄 알았던 그 시험(IELTS)을 장장 여덟 번이나 보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