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 조각

승무원은 여성이 아니다

터미널 The Terminal, 2004

by 박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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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샤를 드 골 공항에서 18년 간 살았던 이란인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 <터미널>. 나보르스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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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는 항공기 승무원으로, 공항에 거주하는 나보르스키와 자주 마주치며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신은 책도 많이 읽은 똑똑한 사람인데, 승무원 아멜리아는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불륜을 저지르며 사랑에 어찌할 줄 모르는 여인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승무원에 대한 불건전한 고정관념은 굉장히 오래되었다. 예쁜 얼굴로 몸매가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고 항상 미소를 짓고 있는 존재. 승무원은 아직까지도 다수에게 그렇게 인식된다.


첫 승무원은 여성 간호사다. 여행객의 눈요깃거리나 시종이 아니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안전요원이었다. 하지만 승무직엔 여성만 지원 가능했다. 당시 간호사가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애초에 의사는 남성, 간호사는 여성이 갖는 직업으로 나뉘어 있었기에 사실 첫 승무원의 역할이 정말 안전요원 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연히 웨이트리스 역할도 겸했으니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그 관념을 만든 게 그 때일지도.


왜 조종사, 의사는 남성이고 승무원, 간호사는 여성이어야 할까? 왜 아직도 포르노에는 특수 직종 유니폼을 입은 배우들이 등장할까? 왜 아직도 첫 여성 조종사에 대한 이야기가 기사화 되어야 할까?


201444187_1280.jpg ⓒ 에어로케이


몇 달 전 '에어로케이'에서 젠더리스 유니폼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안전요원 역할에 충실한, 활동하기 편한 유니폼을 입는다. 이 옷을 입고 있으면 누구도 이들의 엉덩이를 슬쩍 만지거나 서슴없이 욕을 내뱉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승무원을 능욕하면서도 아무도 실행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면서도 묵인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정형화된 미의 기준을 당당히 들먹이며 당연시했다.


벌써 2020년, 16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2004년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영화가 나온 2004년 이전부터 몇 번이나 강산이 변할 동안,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이제서야 들린다. 이제야 귀를 연 사람들은 여전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도 귀를 열어주었다고 감사를 바란다.


denied-1936877.png ⓒ tswedensky / Pixabay


긍정적인 현상으로, 최근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 같은 장면은 검열되거나 수정된다. 대놓고 작품을 선보여야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명성과 업적을 방패로 삼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이룬 것은 모두 타인을 착취한 결과물인데도, 여전히 그들을 옹호하는 자들이 있고, 그들은 잘못을 느끼지 못한다.


사회는 바뀔 수 있다. 작든 크든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보가 중요하다. 영화를 감동으로만 관람할 수 있으려면, 적극적인 변화의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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