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혜 Oct 13. 2020

육아가 즐겁습니다만

나는 육아가 즐겁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느냐며, 양쪽 눈꼬리가 사납게 올라갈지 모르겠다.

사실 육아는 힘들다. 하지만 육아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100이라고 해보자. 40 정도는 힘들고, 60 정도가 즐겁다면, 우리는 육아에 대해 뭐라고 총평을 해야 할까? 저울이 좀 더 기울어진 '즐겁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40이라는 숫자 무게 때문에 육아란 얼굴에 ‘불행’이라는 딱지를 붙여 버리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 키우기 힘든 시대라고 말한다. 아이 낳는 순간부터 대학 졸업까지 손에 만져보지도 못할 몇 억의 돈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게다가 주변 도움받으며 애들 키우기가 더 어려워진 요즘은 엄마 혹은, 부모 두 명의 더 많은 헌신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주변에는 아이가 너무 예쁘다며, 둘 낳고, 셋 낳은 가정도 많다. 애 키우기 너무 힘들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행복하고 즐겁게 아이 키우는 가정도 많다.


물론 아이 어릴 때는 육아가 즐겁다는 말이 쉽게 나오질 않는다.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고, 굴러 떨어지면 다시 올리는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매일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재우고를 반복하는 일상은 고된 과정임에 틀림없다. 그때 끓어오르는 분노, 육체의 노쇠는 당연하다. 


하지만 호러 무비 못지않게 무시무시한 일상 속에서도 그 시절 육아는 즐거웠다.  

잠에 허덕이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똥도 제대로 못 싸 보는 힘들고 우울한 일상이 그 시절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노라 말할 수 있는 건 정말 그 시절 까꿍이들은 너무나도 예뻤다. 

 

내가 쏟아준 미량의 사랑, 관심, 도움으로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은 행복했다. 사진 찍을 때마다 시그니처 포즈로 눈 옆에다가 V자를 그리는 일, 오물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의 입, 통통하게 흔들리던 토실한 볼살, 가식 하나 없이 환하게 웃는 표정. 엄마만 바라보는 눈동자, 천사 같이 잠들어 있는 모습.

애들 까꿍이 시절 사진을 보면 나는 분명 잠 못 자고, 피곤에 절어 있었다. 한약을 물대신 드링킹 하고, 한의원에 저린 손목, 어깨를 치료하러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면 지금보다 더 해 같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이들이 조금 자란 지금은 또 다른 육아의 재미가 있다.

레벨 업하듯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이 좋다. 킥보드 타다가 세발자전거, 두 발 자전거 타게 되는 여정이 얼마나 신기하고, 대견하고, 재미있는지. 열 손가락을 구부려 가며 셈을 하다 나눗셈, 곱셈을 착실히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또 신명 나는지.


그리고 내가 사랑을 준다고 느꼈는데, 사실은 내가 아이들에게 받는 사랑이 엄청나다는 걸 느꼈을 때 육아가 즐겁다. 가끔 아이들이 나를 안아주고, 뽀뽀해줄 때면 성질도 불같은 이 아줌마를 누가 이리 사랑해주겠는가 싶을 정도로 황송해지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을 만큼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


육아가 즐거운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나의 성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옛날보다 더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한 인간을 기르기에 미숙했던 나는 선배들의 지혜가 담긴 육아 비법과 인생의 지혜가 담긴 책들을 펼쳤다. 젊은 시절보다 아이들을 낳고 더 많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무술 수련을 위해 물 긷기 3년, 장작 패기 3년, 청소 3년의 시간을 보내듯,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인내심(예전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혜가 자라고, 삶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육아하는 엄마란 극한직업의 결과는 나의 성장으로 이어졌고. 아이들의 성장만큼 나의 성장은 육아가 즐거운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아! 누군가는 아직 사춘기가 오지도 않았는데, 좀 만 더 기다려 라고. 육아가 즐겁다는 말은 쏙 들어갈 거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12월 31일생인 아들을 그대로 출생신고했을 때 주변의 염려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바로 힘들 거라고. 힘든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들은 혼자 온라인 수업도 잘 듣고, 학교 가는 날도 씩씩하게 잘 다녀오는 요즘이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존재로 내 곁에 와준 고마운 존재고, 아이들을 통해 내 삶은 성장했고 풍요로워졌다는 태도를 가진다면 지금처럼 육아가 즐겁다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분명 육아의 어려운 순간들은 온다. 힘든 순간은 온다.

하지만,

그 어려운 순간, 좌절하지 않고 아이들과 손잡고 지금처럼 성장과 사랑으로 함께 한다면, 그 좌절의 순간조차 미래에는 즐거웠노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육아가 즐겁노라 수줍게 고백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