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한 날, 마음은 90년대를 찾는다.

by 윤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별일도 아닌데 마음이 스르르 가라앉는 날. 바쁜 하루를 마쳤는데도 괜히 텅 비어 있는 기분이 들고,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조용히 집까지 따라오는 날. 이럴 때 보통은 마음이 기댈 곳을 찾고 싶어진다. 누군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고, 따뜻한 분위기에 몸을 묻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안 되는 평일의 밤이면 선택지는 훨씬 좁아진다. 그럴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먼저 90년대를 향해 간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의식한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그 시절의 노래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때의 공기와 감정이 아직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90년대 음악에는 그 시절의 속도가 그대로 담겨 있다. 요즘처럼 빠르게 시작해서 빠르게 정리되는 구조가 아니라 감정이 천천히 올라오고, 오래 머무르고, 자연스럽게 숨처럼 흘렀다. 마치 듣는 사람의 걸음에 맞춰 함께 걷는 듯한 음악이었다. 요즘 음악이 직선이라면 90년대 음악은 곡선에 가깝다. 감정을 서둘러 자극하지 않고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었다.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도 폭발처럼 터지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깊게 번지는 울림이었다.

그리고 가사도 지금보다 솔직했다. 감정을 꾸며 포장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 표현들이 많았다. 서툴러도 진심이면 충분했던 시대라서 그 투박함이 오히려 따뜻함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 들으면 더 감성적으로 들린다. 나는 이런 이유들을 누가 설명해 줘서 알게 된 게 아니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 시절 음악에 마음이 머물렀고, 힘든 순간마다 그 감정에 기대다 보니 내 안에서 저절로 쌓인 결론 같은 것이다. 90년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이 감정의 무늬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느낄 것이다.

그래서 우울한 날엔 괜히 90년대 노래를 틀어놓는다. 노래 한 곡만 흘러도 마음이 조금 풀리고 하루의 끝이 부드럽게 정리되는 순간이 있다. 위로라는 건 꼭 누가 건네는 말일 필요가 없다. 어떤 시절의 공기가 나를 감싸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숨을 고를 힘을 찾는다. 우울한 날엔 빠르고 자극적인 것보다 조금 느리고, 조금 오래 머물러주는 감성이 필요하다. 90년대 음악은 그런 ‘머무는 감성’을 품고 있다. 혼자 위로받아야 하는 날이라면 그 시절의 노래가 은근히 든든한 친구가 되어준다.

목요일 연재
이전 21화읽지 않아도 글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