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아도 글을 만날 수 있다.

by 윤스

사람들은 흔히 책을 많이 읽어야 유식해지고 말을 잘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책장을 넘기며 읽을 필요는 없다. 나 역시 그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책을 펼치면 시선이 금방 흐트러지고, 마음이 다른 곳으로 튀었다. 한 장 넘기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하고, 다시 이어 읽는 그 모든 과정이 마음에 잘 붙지 않았다. 읽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읽는 방식이 나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나는 책을 잘 못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귀로 듣는 방식을 선택했다.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누워 있으면, 책 한 권이 누구의 목소리를 타고 천천히 흘러오고, 문장이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어느 날은 잠들기 위해 틀어놓았다가,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다. 그 시간들은 내가 글을 배우는 방식이 되었고, 문장의 흐름과 말의 선택을 익히는 또 다른 학교가 되었다.

문장을 만나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책을 눈으로 읽고, 누군가는 목소리로 듣고, 또 누군가는 드라마 속 대사나 영화의 한 장면으로 이야기를 배운다. 드라마에는 의외로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들이 많다. 말 한 줄이 상황 전체를 바꾸기도 하고, 대사 한 마디가 오래 기억되는 순간도 있다.

중요한 건 책이라는 물건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나려는 마음이다. 글을 읽는 과정이 다를 뿐,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은 똑같다. 우리는 이동하면서도 문장을 만날 수 있다. 걸을 때, 버스를 기다릴 때, 지하철에서 잠시 멈춰 설 때. 그 짧은 공간에 흐르는 오디오북 한 편은 생각보다 많은 걸 남긴다. 어떤 문장은 그 순간 스쳐 지나가지만, 어떤 문장은 한참 뒤에 다시 떠오른다. 그게 책으로 읽은 것이든, 목소리로 들은 것이든, 영상 속에서 본 것이든 상관없다. 문장은 형태만 다를 뿐, 삶을 조금 부드럽게 만들고 감정을 조금 풍성하게 만든다.

중요한 건 남들이 읽는 방식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이야기와 만날 수 있는 나만의 길을 찾는 일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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