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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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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Jun 02. 2024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글을 쓰지 않아서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어떤 일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연속성을 잃은 글은 단상이 되고, 상념이 되며, 머릿속에서 켜켜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무수한... 까진 아니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저녁에는 교회 사람들이랑 성경 읽기를 한다. 그날 읽은 구절에서 느낀 점을 나눈다. 올해 초부터 했으니까, 이제 반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는 루틴이라고 할까나. 귀찮아도 하고 나면 보람차다. 여하튼 성경 읽기 모임을 하면서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 생겼다. '요즘 방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인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붙잡고 뜻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충실히 살겠다'는 식의 나눔. 그런 나눔을 하면서 그렇지 못한 생활을 이어온 5개월이다. 사실 성경 읽으면서 집중도 잘 못했다.


불안함과 막연함은 작년부터, 날씨가 추워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호주에서 열심히 놀다 왔다. 돌아와서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나의 경솔함이었다. 커피를 하겠다는 호기로운 도전은 한나절 부푼 꿈에서 그쳤다. 아직 애매한 경계에서 발목 정도까지는 담그고 있다만, 이 길이 내 길이라며 자부하기에는 용기가 턱없이 부족하다. 개강하고 나서는 H&M에서도 잠깐 일했다. 정말 잠깐 일했다. 학교도 다니고, 커피도 만들고, 옷도 파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공부하기 싫은 마음에 애써 일로 시선을 회피한 걸까. 힘들지 않겠냐는 면접 질문에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궤변을 놓았다. 버질 아블로는 이랬다나 뭐라나... 그렇게 주 28시간 근무와 학업, 주말에는 본가로 향하는 얼마간을 보내면서 '이러다간 죽겠다' 생각하고 점장님한테 문자를 보냈다.

'대외활동 때문에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대외활동 같은 건 없었다.


남한테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했다. 독특해 보이고 싶었달까. 비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자의식에 푹 절여져 책임지지도 못할 언행을 삼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순간, 방황은 극에 치달았다. 더는 글을 쓰지도, 무언가에 집중을 하지도 못하는 한 달 정도를 보냈다. 불안했다. 잘못된 것 같았다. 아침에는 눈을 뜨기 싫었고, 밤에는 눈물깨나 흘렸다(이따금씩 유튜브에 '울고 싶을 때 듣는 노래'를 검색했다. 졸라 창피하다.) 본가에 가는 주말이면 더 심해졌다. 되고 싶은 것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도리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몇 날 며칠을 보냈다. 간신히 책만 읽었다. 머리에 들어오건 말건 텍스트를 집어삼켰다.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손에 잡고 읽을 수 있는 건 마냥 붙들고 읽었다.


세상의 속도는 분명 존재했다. 환경의 속도가 분명한 집단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 속도를 따라 나도 보폭을 맞춰야 한다는 것일까? 대학이라는 곳이 원래 그런 곳인가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어쩌면 참 잔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을 한 공간에 몰아넣고서는 본인들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강요당하는 모습이 죽기 위해 사육당하는 가축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필사적으로 알고 싶었다. 대체 어딜 그리 바쁘게들 가는 거냐고, 나 좀 알려주면 안 되겠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속도에 적응하고, 그들의 보폭에 내 걸음을 맞추는 일이겠구나 싶다가도, 그게 맘처럼 잘 되지도 않았다.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불안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준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글이 좀체 읽히지 않는 재미없는 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는 의문을 품고서부터는 더는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갔다. 학기는 끝나가고 나는 여전히 방황을 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곧 그 시간에 몸을 포개어 같이 흘러가는 것인데, 언제부턴가 세상의 속도와 나의 삶 사이에 균열이 일었다. 그 벌어진 시차를 애써 따라잡지 못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고 분초를 다투어 생각을 바꿨다. 부모님한테 전공도 적성에 안 맞고, 학교도 지방이고, 이럴 바에는 한 해 더 휴학하고 편입을 하겠다며 떵떵거리다가도 그다음 주가 되어서는 덜컥 겁이 나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았다.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알던 세상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남들과 나를 계속 비교하는구나, 저 사람은 어떻고, 그래서 나보다 어떻고, 나는 그래서 어떻고, 계속해서 계산을 했다. 독특한 사람, 비범한 사람, 황새가 되고 싶었던 나는 끊임없이 나의 가치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찾았다. 그토록 외치던 '좋아하는 일'은 타인의 시선에서 찾은 나의 속없는 가치였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일, 남을 의식하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선 인스타그램을 한동안 지웠다. 저녁에는 산책을 했다. 책은 계속 읽었다. 시간이 날 때면 계속 밖으로 나갔다. 목적지 없이 발끝에 몸을 싣고 걸었다. 발 끝에 마음을 두고 걸었다.


노트를 펼치고 글을 썼다. 나의 불안함, 결핍, 멍청한 결정들,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시간들에 관하여 적었다. 생각에 꼬리를 물리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고민과 걱정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마음을 뒤로한 채 지난 어제를 들춰내며 나를 찾아 나섰다. 불안하고 막연한 마음을 애써 모른 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마저도 부정해 버린다면 나는 정말 내가 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행위로써의 기록은 나의 하루를 만족스럽게 빚어냈고, 체계를 만들어주었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기록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떤 날에는 내일을 향한 기대로, 또 어떤 날에는 지난한 하루 끝 위로가 되었다. 쌓아 올린 기록의 행위에서 내가 찾은 당위는 나만의 속도로 잠잠히 나아가기 위한 노젓기였다. 그 감각을 얼마간 잊고 지냈다. 글이 나를 살려낼 거라는 감각을. 모든 것을 그럭저럭 괜찮게 돌려놓을 거라는 믿음을. 예전만치 가벼이 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오늘에서야 다시 한번 다짐한다. 타인에 시선을 두는 것이 아니라, 기록 끝에 담아낸 나를 반추하며 내일을 기대하는 일. 굳이 비교대상을 꼽자면 지난날의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정답은 내가 알고 있으니까. 세상의 속도는 존재한다만, 나는 빙 둘러가더라도 유유히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매일로 향하는 시선 끝에서 지나온 것과 마주할 것을 발견하는 마음으로, 그 안에서 기도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산책하는 마음으로.


세상에서 나는 이름 하나 없는 엑스트라일지라도, 내 삶에서 만큼은 내가 주인공 아니겠냐며.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다시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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