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만들어진다

20220427 일기 내용

by 박시현

"삶을 강타하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예측 불가능한 물결 효과를 동반한다. 삶의 어떤 조각들은 한데 어우러지고, 또 어떤 조각들은 소용돌이 속에 맴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안착한다.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순간들,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 순간들을 통제할 순 없다. 뒤엉킨 조각들이 어디로 떨어질지 기다릴 뿐. 바로 그게 우리네 삶이다."


영화 '서약'의 마지막 장면 속 주인공의 독백이다.


우리가 품은 추억이나 행복한 기억은 계획된 패턴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불현듯 찾아온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늦은 저녁 학교 강당에 모여 낡은 빔프로젝터로 이 영화를 봤던 기억이 몽글몽글한 그날의 분위기로 남아 군생활에 지친 22살의 박시현으로 회상하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트럭 충돌 사고로 기억을 잃은 레오의 아내 페이지를 두고 그가 페이지와 함께한 순간을 회상하면서 영화 초입 레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신이 겪은 경험이나 주변인들과 공유한 순간들의 집합체다. 근 순간들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각자의 기억은 히트 앨범처럼 우리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우리의 기억과 경험은 자생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변의 자극과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향유한 순간들로 비로소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페이지를 바라보는 레오의 아픔보다 그가 페이지와 향유한 추억의 힘이 더 컸던 것일까, 레오는 각고의 시간 끝에 그녀와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여전히 페이지는 사고 이전의 레오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사랑한 순간을 함께한 친구들의 기억이 페이지의 마음으로 다시금 레오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치 종이의 서로 다른 접혔던 면이 되돌아와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에 가치 없는 순간은 하나도 없다. 매 순간 주변의 모든 소중한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살아가야 한다.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마음의 주파수를 맞춰야 한다. 언제 우리의 기억이 뭉치고 쪼개져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이, 나아가 인생의 변곡점이 되는 순간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 삶의 최고의 순간은 어쩌면 이러한 우연한 기억의 계획된 연속으로 만들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