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정착기
처제와 한 달간 다사다난했던 여행이 끝나고 11월 말부터 우리 부부의 시드니 정착기가 시작됐다.
처제의 배려로 거의 마지막 주는 우리가 살 곳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막연한 계획으로 우리는 한국에서 돈을 모았으니 이걸 환전해서 시드니에 렌트를 하고 쉐어생을 받아 집값을 줄여 살아가보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건 아무것도 모르고 했던 생각이었다. 호주에 이제 들어와서 노동조차 해보지 않았던 우리는 금전적으로 아무런 기록이 없었다. 호주는 아무리 돈이 있다고 증명해도 호주은행 서류상 이 사람이 정확한 직업과 매주 들어오는 수입이 있어서 주마다 내는 주세를 낼 수 있는지 확인시켜주지 못하면 서류심사에서 집을 빌려주지 않았다. 더욱이 집 렌트를 알아보다 보니 호주의 집 값이 이렇게나 비싼 줄은 몰랐으며 렌트를 했을 경우에 집에 있는 모든 가구는 우리가 채워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1년을 살러왔는데 집을 빌리고 그 순간부터 매주 집세를 내면서 집에 있는 가구를 새로 사서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까마득했고 집을 빌릴 수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남들과 집을 쉐어할 수 있는 곳으로 거처를 알아봐야만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짜증이 났고 시드니 서큘러키 근처에서 맥주를 마시며 화를 식히다가 한인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리드컴이라는 지역에 방을 쉐어한다는 글을 읽고 바로 연락을 해서 집을 보러 가도 되냐고 물어봤다. 결국 그날 집을 계약하고 한집에 5명이 거주하는 집에 한 방을 쓰기로 했다.
처제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우리의 거처는 리드컴이 되었다. 그래도 거처는 마련했으니 큰 고민이 줄어들었다. 어찌 보면 한 달을 꼬박 여행하면서 여기서 살 궁리를 한다는 게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와서 나를 누르던 알 수 없는 무게감을 줄여보려고 한 것인데 어쩌다 보니 무게를 쌓고 있었는지도.
거처를 구하고 다음으로 해결할 일은 일자리 구하기였다. 호주에서 본격적으로 워홀 생활이 시작되면서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시작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 이상여행객의 여유가 있질 않았다.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잘한 일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