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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노의질주 Dec 01. 2021

닳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기도

  

  아빠가 길에서 넘어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작년에 넘어져 손에 박은 철심이 아직도 매일 욱신거린다는 사람이 또 넘어졌다. 균형을 잘 잡지 못하는 아빠가 걱정돼 하룻밤을 본가에서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친구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얼마 전 암 판정을 받으셨다고, 기도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었다. 입원은 잘하셨는지 안부를 여쭙는 메시지를 보냈다. 문득 잃는 것이 두렵다는 감정이 뭔지 아는 나이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숭숭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는데 핸드폰 화면을 끄자마자 알람이 왔다. 많이 편찮으신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는 지난 연인의 문자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구나, 생각했다. 나의 기도발이 우리 엄마의 기도발만큼이나 세야 할 텐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성심껏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작년 이맘때 쯤 이별을 하고 나서 지난 연애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우리는 굉장히 이성적인 연애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지점에서 만나 적당한 데이트를 하고, 적당히 서로에게 애정 표현을 하고.. 누구 탓을 하기보단 그런 관계였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지금 나는 서로에게 무엇이든 더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원하는 건가? 그러다 한참 반성을 했다. 희생하거나 양보할 줄 모르는 인간이 바로 나였고, 지난 관계와 상관없이 여전히 그런 사람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희생이나 양보를 한다는 행위는 자비롭거나 인색한 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인 것 같다. 나도 많은 것을 베풀 줄 안다. 다만 내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그런 행위는 희생이나 양보라기보단 단순한 선의에 가까운 것 같다. 내가 닳지 않으니 내어줄 수 있는. 마치 남을 위한 기도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 기쁘지만, 이것도 내가 잃는 게 없으니 맘껏 아낌없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나님은 이런 사람의 기도도 받아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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