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라는 꿈을 꾸기 시작하다.

by 바다에 지는 별

숨 가쁘게 달려서 올라탄 버스에 앉은 그녀.

급하게 달려오느라 떨어진 왼쪽 이어폰이 그녀의 귀 옆에서 달랑거렸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이어폰을 다시 그녀의 귀에 끼우고 창가 풍경으로 시선을 돌린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지만 온전히 그녀만의 세계에 갇힐 수 있는 시간...


그녀는 지난주에 보았던 영화, 쎄시봉이란 영화의 OST를 며칠 전부터 계속 듣고 있다.

영화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아 듣는 내내 평온함과 달콤함에 젖어든다.

그대가 모른 게 있어요..하지만 괜찮아요..그대가 알든 모르든 그대를 사랑하는 내 맘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쎄시봉이란 영화는 1년 전에 알고 있었던 그와 처음으로 사석을 마련해 보게 된 영화였다.

그 만남이 있기까지 그녀는 무던히도 그와의 조우를 위해 많은 노력들을 했다.

그 사실을 그는 알리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그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기분 좋았던 그녀였기에 영화를 보고 간단한 식사를 하는 지극히 평범한 순간들에 들끓어 오르는 행복감을 들키지 않으려 무척이나 신경 써야 했다.


그녀가 아는 그는 참 밝고 유쾌하며 따뜻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의 그런 면을 닮은 그의 그녀가 있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것이다.


영화를 보며 팔걸이에 걸쳐진 그의 손을, 그의 발을 본다.

생각보다 그는 크지 않은 손과 발을 가졌다.

그의 옆모습도 궁금했지만 차마 시선을 옆으로 돌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영화가 끝났고 그도 일어선다.


무얼 먹을지 식당가를 천천히 걷게 된 두 사람..

고깃집도 지나고 횟집도 지나고...

그와 걸으며 뭘 먹을지에 대해서 얘기하며 그녀가 망설였던 그의 옆모습을 본다.

그는 작은 턱과 서글하고 편안한 눈매를 가진 사람이었다.

입술과 귀는 생각했던 것보다 자그맣다.

그대를 지켜보는 내 시선은 참 달콤합니다.


십 여분을 걷다가 들어간 매운 불갈비 집.

술을 잘 못하는 그를 위해서 그녀는 그에게 식사를 먼저 권했고 공깃밥과 소주와 맥주가 나온다.

그녀는 소주잔에 그가 건네는 술을 받았고 그녀는 그의 컵에 맥주를 따라준다.

하얀 거품과 함께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는 그.

표정이 환한 걸 보니 그도 더웠나 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차 몇 번 태워드린 게 뭐라고...ㅎㅎㅎ

무튼 오늘 덕분에 영화도 보고 술도 한잔 먹네요?

자주 태워 드려야겠네...ㅎㅎㅎㅎ"


그의 웃음을 따라 웃는 그녀.

"그냥 고맙기도 하고...

밥 한번 먹는 게 뭐 어렵나요?ㅎㅎㅎ

그런데 영화 이거 저 두 번째 보는 거예요.ㅎㅎㅎ"


그는 놀라며

"네에? 아.. 근데 왜 말 안 했어요?"



"두 번 봐도 좋을 영화라서 그냥 또 보고 싶었어요. ㅎㅎㅎ 두 번 봐도 좋긴 하네요.. 진짜...ㅎㅎㅎ

저는 이 영화 음악이 너무 좋더라고요..

지금 계속 이 영화 음악만 듣고 있어요..ㅎㅎㅎ"


"그냥 멜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여운도 있고...ㅎㅎㅎ.. 나이가 저랑 비슷한 주인공 이야기라서 그런지.. 좋네요..

그리고 뭐.. 나이 먹어가니 이제는 남성성도 없는지 이런 영화가 좋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요..ㅎㅎㅎ"


"그럼 저는 반대로 여성성이 없어지고 남성성이 올라오는 건가요?ㅎㅎㅎㅎ 하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제가 앞으로 남성답게 맛있는 거 사 줄 테니 나오라고 할게요..ㅎㅎㅎㅎㅎㅎㅎㅎ"


그녀를 따라 웃는 그의 웃음이 참 부드럽고 기분 좋게 느껴지는 그녀.

그렇게 그에게 또 다른 만남을 넌지시 건네었다.


음식이 나오고 그와 함께 잔을 부딪히며 한잔을 마시고 그녀가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 준다.

그는 한참을 맛있게 먹는다.

배가 고팠나 보다.



모임에서 그는 별 말없이 열심히 음식에 집중하던 그의 모습에 익숙했던 그녀였기에 그에게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참 맛있게도 먹는 그의 모습을 그녀는 소주를 홀짝이며 안주 삼아 지켜본다.

그가 열중하며 음식을 먹는 동안 그녀는 카카오톡의 그의 사진을 무심코 스크롤하며 본다.

그는 그녀의 핸드폰을 흘끔 보다가 먹는 손을 멈추고 말한다.



"맬리사 님은 사진 하고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음.. 평소 때 볼 때는 참 밝은 이미진데 사진은 왠지 좀 어둡고.. 좀 다른 느낌이 있어요."



"ㅎㅎㅎ제 사진을 들여다보긴 하셨네요?ㅎㅎㅎㅎ.. 근데.. 뭐 둘 다 제 모습이지 않을까요? 항상 밝으면 조증 환자잖아요?ㅎㅎㅎ"



"ㅎㅎㅎ맞아요.. 그래도 이왕이면 밝은 모습이 좋지 않겠어요? 나이가 있으니 이제는 심각하고 뭐.. 골치 아프고 그런 게 별로 보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나이를 먹을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서 조금이라도 놓이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었을까 그녀는 애써 가볍고 즐거운 얘기들로 그와의 시간들을 채워갔고 그와 감사의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녀는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왔다.

남녀의 진지한 마음이 아니라 그저 인간적인 호감으로 본 그는 쉽게 그 감정이 희미해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만난 그는 평소 그녀가 짐작했던 그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 역시 남자들의 단순하고 직선적인 감성의 소유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마음이 어두워졌다.

표면적이고 자극적인 사람들과의 모임 속에 있는 그녀의 모습만을 봐왔던 그에게 그저 자극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잔잔한 자신의 이면을 들여다 봐주길.. 알아차려 주길 바랬던 그녀의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욕심...

그렇다. 그녀는 처음의 그저 인간적인 호감에서 한걸음 앞으로 다가가 있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애써 지금의 작은 욕심의 싹을 자르지 않기로 한다.


지금의 마음이 무엇인지, 그의 마음 또한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감정이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녀는 혼자만의 감정이라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오늘도 그녀는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해서 장을 보고 아이들을 챙기고 그리고 집안 일로 늦은 잠자리에 드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그를 떠올리는 순간마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 것 같아 기분 좋아진다.

그는 아직까지 그녀에게 딱 그 정도의 기분 좋은 존재인 것이다.


그가 한걸음 더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그대가 내 맘 속에 들어와 불이 하나씩 켜지고 있어요..그 밝음이 밝을수록 어두움도 짙어질까 두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