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body here?

by 바다에 지는 별

야근하고 10시 쯤 도착한 집은 아침의 말끔한 모습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큰 녀석은 방학이어서 늦은 아점과 저녁을 집에서 챙겨 먹고 한 참 먹성이 좋은 초딩4학년 막내녀석이 무얼 먹었는지 내역을 충분히 알 수 있는 포장지들이 여기저기에 놓여진 모습으로 녀석의 이동동선 파악도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 집 막내 냥양.


고양이임에도 개냥이스럽게 무척이나 반기며

이 방 저 방을 우다다... 위용과 반가움을 격렬히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녀석을 진정시킬 여유가 없어서 원스탑으로 옷을 갈아입고 자신들을 씻겨 달라며 개수대에서 나를 째려보고 있는 산더미같은 설겆이의 부름에 부응하며 설겆이를 한다.


설겆이하는 내내 자신을 모른 척 하는 나를 향해 끈질긴 으르렁과 갸르릉 소리로 다리에 휘감겼다가 김치 냉장고 위 아래를 뛰어다니는 냥양씨와 설겆이 중간중간에 화답하며 대화를 나눈다.


그러고 나니

큰 녀석이 목이 아프단다.

곧바로 증상에 맞춤형 내복약 조제.


양치하러 욕실에 들이갔다 나온 작은 녀석의 발톱이 눈에 들어온다.

녀석을 불러 앉혀놓고 앞 발,뒷 발 손톱깍이로 손질해 준다.


작은 놈 지 방으로 퇴장.


그런데

냥양이 몸 놀림이 심상치 않다.

잠시 사라졌다 나온 녀석.

그리고...스메에엘~~~♡♡♡♡


'왜 이 뇬은 엄마만 오면 꼭 똥을 쌀까? 언니야 놀 때 너의 장운동은 좀 미리 해주면 안 되겠냐 눼이뇬아...

ㅡ..ㅡ*'


응가 처치하고 화장실 모래 갈아주고 씻고 이불을 편다.


11시....


맥주 한 캔과 귤 한 알을 곁에 두고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그 좋아하는 알콜 한 모금 못 하고 기절.


아침에 일어나니 내 소중한 맥주가 사라졌다.


작은 녀석이 아침 밥상에서 말한다.

"엄마..다 마신 줄 알고 아침에 버리려고 했는데 새 거라서 냉장고에 넣어놨어. 못 먹고 잤어?"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녀석은 음식물 쓰레기는 자기가 버리겠다고 했다.

왠지..눈물이...ㅠ.ㅠ



내 인생, 내 새끼를 챙길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다는 평범한 사실 앞에서 조금 외롭고 쓸쓸해 진다..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거 나쁘지는 않은데 가끔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느낌이다.



이번 주말에는 친구들을 좀 불러모아서 거나하게 한 잔이라도 해야 살 것 같다.




일주일 내내 팽팽하게 날 서 있었던 내게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정신줄을 살포시 놓아도 되는 음주문화가 약이 될 때가 있다. 뭐 둘이든, 혼자든 치열하긴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작가의 이전글설마 늙어 죽을 때까지 혼자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