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헤어집시다.

by 바다에 지는 별

햇살이 차 안으로 따스하게 들어오고 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아이들에 대한 지극히 일상적인 얘기들을 호탕한 웃음과 함께 이어가고 있었다.


중3이 된 딸 아이의 지저분한 방을 비난하는 아이 아빠에게 십대 아이들의 일반적인 모습일 뿐이라고,

방법은 알지만 그저 안 할 뿐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는 말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아들녀석의 일상적인 거짓말을 걱정하고 열받아 하는 내게 아이 아빠는 자신이 잘 하겠다는 말을 주고 받으며 지나가는 풍경에 눈을 돌렸다.









우리는 결코 함께 마주 보지 않았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한 사이로 지낸지가 7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쇼윈도우 부부이다.



우리가 그런 슬픈 이름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지가 그렇게 오래 되었지만 우리는 이런 일상적인 사소한 불편감에 익숙해질 만큼 오랜 시간을 협업하는 동료로 지냈다.




하지만

나는 인내심의 바닥이 드러난지 오래 되었고

의미없는 울타리를 자식이라는 이름으로도 참아내지 못할만큼의 갑갑함이 내 숨통을 끊어놓을 것 같은 절박함에 나만이 아는 우울감에 무너져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어진 내가 아직은 어린 아들 녀석에게 몇 번의 고백을 했었고 몇 일전에 마음을 먹고 양해의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너 어린이 집에서부터 절친이었던 정우랑 며칠 전에 심하게 싸우고 엄마한테 정우 너무 미워서 더 이상은 친구로 지내기 싫었다고 했었지?"


아들은 맑은 눈으로 내게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지난 번에도 몇 번 말했었는데 한 번 더 비슷한 말을 하려고...

정우랑 너. 그렇게 친하고 좋아했던 친구였어도 너무 밉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만큼 너무 싫었었던 것처럼 엄마, 아빠도 남자친구, 여자친구였지만 네가 5살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 싫어진지 오래 되었고 더 이상 여자친구, 남자친구 안 하기로 한지 6년이 넘었어. 알고 있지?


그런데 네가 알고 있는 이혼이란 거 안 하고 있었던 건 네가 꼭 이해하고 그래도 된다는 말을 할 줄 알게 되면 헤어지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주말에 아빠가 와서 너랑 놀아주고 언제든 아빠가 필요하고 보고 싶을 때는 봐도 돼.

지금처럼 똑같아.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여자친구, 남자친구만 아닌거야.

그게 이혼이란 거야.


그냥 아빠, 엄마로 지내기로 하는 거.

그러니까 이제는 네가 허락하면 엄마, 아빠는 이제 여자친구, 남자친구 그만하려고..."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같이 밥먹고, 지금처럼 지낸다고 하면 자기는 괜찮다고...






차 창 밖으로 지나는 풍경은 한 없이 밝고 해맑지만 나는 마음이 한 없이 무겁다.

그가 데려다 주기로 한 장소에 거의 다다랐을 때 즈음 나는 입을 열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정리하고 싶어. 아들도 괜찮다고 했고....언제쯤 괜찮을까?"


그는 여전히 내 얼굴을 보지 않고 앞만 응시하며 대답했다.


"두 달 뒤 즈음이면 나도 일이 좀 정리가 될 것 같으니까 그 때 정리하고 집도 정리하자. "


"응...알았어...데려다 줘서 고마워. "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그는 참 모질고 차가운 남자였다.

그런 남자를 나는 무척이나 헌신적으로 사랑했고, 무던히도 기다렸다.


늘 나를 기다리게 했고 나는 그를 처절하게 기다렸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 처절함은 늘 미래의 행복을 향한 소박한 저축 쯤으로 생각했기에

착하고 예쁘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많이도 울게 했고,

외롭게도 했으며 고민하게 했고 초라하다 못해 비참하게 했다.




그는 내게 무엇일까?


그는 기다림이었고, 닿을 수 없지만 늘 닿고 싶어 더욱 나를 채찍질하는 삶의 희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방황하게 했던 외로움이란 이름을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어 줄 근사한 희망고문이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고

눈물을 꾸역꾸역 삼켜가면서도 결국은 나를 뜨겁게 안아줄 사람이라 나는 믿었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세상의 단 하나 뿐인 내 답이라고, 버겁고 숨이 끊어질 듯 애닳음이 있지만 결코 놓아서는 안 되는 내 운명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그날 그에게 내가 당신에게 무엇이었냐고 울부짖었다.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는 말만 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서 내가 원하는 그 어떤 답도 듣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한 때, 짧은 불 같은 그 시간만큼 사랑하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처음부터 혼자 뜨겁게 타오르다 스스로를 다 태워버렸다고.



이후 나는 엄마로 살기로 했고, 그는 아빠로 살기로 했다.




아이들은 커가고 있었고 우리는 나이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아빠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좋은 아빠라서 고맙다고 했고, 좋은 아빠, 좋은 엄마를 만난 딸의 인생은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당연했던 아빠의 챙김에 고맙다는 코맨트를 달기 시작했다.

작은 녀석도 아빠의 장기간 출장에 잘 다녀오라는 안부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이 시간을 위해 오랜시간을 참아왔었던 내가, 또 그가 고마웠고 대견했다.


남녀로 만나 아빠, 엄마가 되고 남녀의 간단한 이별로 끝이 나면 나도 내 아이도, 그리고 더 이상 내 남자가 아닌 저 남자도 모두 무너져버리고 마는 이별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라는 결론으로 오랜시간 인내했던 우리의 노력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이기적이고 차가웠던 그 남자는 50이라는 숫자가 가까워 옴에 따라 책임이란 것을 절실히 느끼는 듯 했고 자신의 행복보다 아이들의 소소한 행복이 훨씬 더 자신의 행복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현명함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로서의 자신보다 아빠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멋진 모습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해서 내게 고맙다고 했다.




사랑과 증오만으로는 설명할 수도, 결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란 것이 얼마든지 있다.

증오만 남았지만 자신조차 파괴 할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삭히면서 최대한 이별을 늦춰야만 할 때가 있다.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있다면 충분한 이유가 된다.


멀리 보아야 했다.


단 시간에 결정했을 때에 생기는 많은 부정적인 상황과 감정들.

그 중에 미움과 증오는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


용서할 수는 없지만 기회를 주고, 적어도 스스로 자멸해 가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아 남아

서로가 필요로 할 때 곁에 최대한 있어 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별을 늦춰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제는 진정한 이별을 하고 싶다.

더 이상 관계되지 않고 서로의 길을 가도록 놓아주기.


우리는 어떤 이름이든, 어떤 모습으로든 최대한 서로의 벌을 받았으니까...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제는 되었다.


수고한 당신과 나.

이제는 헤어집시다.

그대와 나의 오랜 수고로움에 cheers!!!!!


https://youtu.be/1WXQ2XG9Njg

미련스럽게 그대를 사랑했던 내 자신을 용서할 그날이 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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