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이제 좀 움직일 생각도 하고, 수리도 좀 해야하지 않겠어? "
장마 때 이곳 저곳이 빗물이 스며들어 얼룩덜룩한 벽지를 보고 간 언니가 마음이 불편했는지 내게 연락이 와서는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안타까움의 열정으로 가득한 언니에 반해 나는 그렇게 적극적이지도, 어떤 열의도 보이지 않고 묻는 것에만 대답을 한다.
"운동 좀 해야지...맨날 살 안 빠진다고 고민만 하지 말고....거기서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빠지겠구만 왜 그러고 있어?"
6이라는 앞자리에서 5로 바뀐 체중의 숫자에 그저 만족하며 지내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나의 몸뚱아리.
결코 만족하지는 않지만 땀 흘리고 열정을 끌어모아야 하는 일이 썩 내키지 않아 나는
" 그래야지..." 라는 미적지근한 답으로 얼버무린다.
"장어구이 먹자..요즘 날도 덥고 보신 해줘야해..우리도 잘 버틸려면..."
장어라는 생소한 이름의 생선에 대해 맛있게 먹어 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아 대답한다.
"아...그 멀리까지 가서 사람 북적거리는 데서 먹을만큼 맛있을까? 별로인데...나는..."
친구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나의 등짝을 후려치며 화를 낸다.
"다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왜 그렇게 맨날 퍼져 있는 거냐구!!! 정신 좀 차리고 뭔가 좀 하고 싶어하면서 살아봐!!! 요즘 왜 그러니? "
결국 눈으로만 먹어야 맛난 한정식집에서 열심히 먹는 척 연기를 했지만 결국 반을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언제부터인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일 자체가 너무 싫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보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어졌다.
스스로가 고장났다는 결론을 내려보지만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하고, 생계에 필요한 활동을 유지해가기에 병식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태인 나.
워낙 에너지 넘쳤고, 허덕거리며 살았던 어린 시절과 결혼생활에 문제였을까?
한 사람이 보유하고 태어난 한정적인 에너지를 현명하게 안배하지 못한 탓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명확한 원인규명을 할 수가 없다.
어떤 결론을 얻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으니 답 또한 명확할리 없다.
갑자기 어느 책에서 봄직한 단어가 떠오른다.
욕망하기.
나는 욕망하기를 잊은 것이다.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고, 기대하는 일이 이제는 너무 지친다.
그래서 나는 욕망하기를 멈춘 것인지도 모른다.
바라고 기대함에는 기다림이 필수조건이다.
그 시간이 너무 불편하고 피곤해서 차라리 원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식욕이든, 의욕이든 생활의 전반적인 곳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겠지.
다시금 열정을 불러 일으킬 그 무언가를 찾아내게 된다면 다시 뜨거워지고, 욕망하게 될까?
확신할 수 없다.
여름의 한 중간인 지금.
겨울의 동면하는 곰처럼 여름의 뜨겁고 찐득진득한 공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최대한 움츠리고 있다.
최소한의 활동과 최소한 식품 섭취 그리고 최대한 멍해지기.
마음과 육체의 모든 전원이 소등되어 최소한의 에너지로 깔딱깔딱 숨만 쉬고 있는 식물인간처럼 모든 자극에 반응하기와 동기부여를 거부한 채 욕망하기를 멈춘다.
그렇게 뜨겁고 습한 여름바람이 지나고 서늘한 가을 바람이 살갖에 와닿을 때 즈음이면
나는 욕망하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다시 그 무언가에, 그 누군가에게 욕망스러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