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내음 닮은 위로를 받다

박완서 님의 호미를 읽고.....

by 바다에 지는 별


이 책은 소설가 박완서 님이 돌아가시기 4년 전에 완성한 책이다.
워낙 유명한 여류작가이고, 펴낸 책들도 소설에서, 수필까지 다작 활동을 하셨던 분이지만 왠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내가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호미'라는 책부터 시작해 보기로 한 것이다.

여자로서 글을 쓰는 것은 어떤 것일까도 궁금했고, 작가의 굴곡진 인생에서 글은 어떻게 변해갔을지도 궁금했기에 그녀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은 지금에서야 긴 인생 여정을 글과 함께 한 편의 영화처럼 보고 싶어 졌다.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의 박완서라는 사람을 담담하고, 평화롭게 책 속에 녹여 놓았다.

어린 시절에 겪은 아버지와 큰오빠의 죽음과 6.25와 일제 강점기 안에서 십 대를 보냈던 시간, 그리고 중년이 되어 글을 쓰기 시작하고, 등단하여 작가의 길을 가게 된 자신의 인생을 찬찬히 정리해 놓은 느낌의 책이었다.

그녀의 인생에는 죽음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지만 결국은 자연이라는 곳에서 그 아픔과 슬픔들을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내가 늘 동경하는 자연의 품이라는 것에 확신이 들게 되었고 그런 점이 내게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인간이란 슬픔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정화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

[칼 싹 두기의 소박한 맛에는 이렇듯 각기 외로움 타는 식구들을 한식구로 어우르고 위로하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요새도 비 오는 날이면 밀가루 수제비라도 먹고 싶어 진다지만 같이 먹을 사람이 없으면 수제비를 뜨지 않는다. 나는 단지 내 입맛만을 위한 요리도 즐겨하는 편인데 수제비만은 혼자 먹으려고 해지질 않는다. 내가 잊지 못하는 건 메밀의 맛보다 화해와 위안의 맛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글에서 느껴지는 작가는 앞으로 나서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것을 불편하게 느껴 문인들 사이에도 매우 조심스러운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었던 건 같다.
하지만 그 속에는 조심성이 많을 뿐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글을 써서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것은 몰입과 집중도를 필요로 하는 일인 만큼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고, 사색하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가능한 일임을 이해하게 되니 그러한 성격 또한 자연스럽고 평화로워 보여서 참 좋았다.



'호미'라는 책에서는 자연 속에서 사람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어떻게 사라져야 하는지를 작가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조용히 말해주는 듯하다.
읽는 내내 필체의 소박함과 겸손함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다가왔고, 인생의 많은 굴곡으로 슬픔도, 두려움도 충분히 맛보았지만 결국은 순한 마음의 물결로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자신의 보듬어내는 글들이 무척 존경스럽고, 아름다웠다.

내게는 책의 서문은 매우 꼼꼼하게 읽지만 마무리 글은 사실 좀 등한시하게 되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마무리 글은 특별하고, 독특해서 오히려 본문의 내용보다 훨씬 마음을 쏟아서 보게 되었다.

마무리 글은 작가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순서대로 글을 쓰듯 자신보다 먼저 작고한 지인에게 쓴 편지와 자신의 딸에게 쓴 편지글이다.


그중에 작가가 흠모한다는 표현을 쓸 만큼 마음에 담았던 이문구 소설가에게 써 내려간 편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내 내면이 얼마나 남루한지 압니다. 당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일을 당한 게 스무 살 적이었는데도 그때 찢어진 자리를 아직도 합하지 못했고, 내 이지러지고 남루한 인품을 온통 거기다 핑계 대며 살아왔습니다.

친구끼리 애인끼리 혹은 부모 자식 간에 헤어지기 전 잠시 멈칫대며 옷깃이나 등의 먼지를 털어주는 척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먼지가 정말 털려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손길에 온기나 부드러움,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비슷한 큰 일을 겪었던 이문구 소설가에 대한 존경이 담긴 편지글에서 나는 말할 수 없이 깊은 다행 감과 평화로움을 느꼈다.
그들이 죽음이 임박한 그 시점에서 평화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힘든 인생의 역경에서도 그들이 세상과 등지지 않고, 소통하고, 따뜻하게 토닥여 줄 수 있었던 그들의 힘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많은 의문이 들었다.

결국은 마음 그릇의 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잘 모른다. 너무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내게 그들이 주변을 챙기고, 자신의 인생을 너그러이 쓰다듬으면서 죽음을 준비하게 된 이유를.

하지만 나는 희망을 보았다.
내가 감히 그들의 인생만큼 치열하고, 처절한 것은 아니니 나 또한 그들처럼 인생을 그저 부정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등지지는 않겠구나라는 막연한 희망....

박완서 작가는 40대에 전업작가가 되었다. 40년을 글을 쓰며 살았다.
그녀에게 글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녀가 전업작가로 시작했던 비슷한 연배를 살아가는 내게 글은 무엇일까?

치열한 중년의 삶을 버티기 위해 나는 책을 본다. 많은 사람들의 말잔치보다 깊이 침잠하여 스스로의 자생력을 키워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게 지금의 삶을 슬퍼해도 된다고 말해 주었고, 나중에는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 토닥임 때문에 숨 막히는 출근 버스 안에서 나는 자주 콧날이 붉어졌었다.

거칠고, 두터운 어른의 두 손으로 헐겁게 토닥여 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