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산문 허송세월 책리뷰 2
어린아이들은 길을 걸어갈 때도 몸이 리듬으로 출렁거린다. 몸속에서 기쁨이 솟구쳐서 아이들은 오른쪽으로 뛰고 왼쪽으로 뛴다. 아이들의 몸속에서 새롭게 빚어지는 시간이 아이들의 몸에 리듬을 실어준다.
호랑이나 사자의 어린것들도 스스로 기뻐하는 몸의 율동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것들은 생명을 가진 몸의 즐거움으로 발랄하고 그 몸들은 신생하는 시간과 더불어 뒹굴면서 논다.
이 장난치는 어린것들의 몸의 리듬을 들여다보는 일은 늙어 가는 나의 내밀한 즐거움이다.
-김훈산문 허송세월의 시간과 강물 중 95페이지에서 발췌-
지금 갓 18세를 넘긴 아들은 중학생이 되도록 걸음걸이가 참으로 기괴했다.
녀석은 언제나 투스텝으로 껑충껑충 뛰어다니기도 하고, 연체동물처럼 몸을 흐느적거리면서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아들의 걸음걸이를 지켜보면서 저 녀석이 과연 제대로 사람구실을 하며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지 늘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 불안한 마음은 차곡차곡 쌓였다가 한 번에 여지없이 폭발하기 일쑤였고
녀석의 걸음걸이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아들만의 독특함으로 정리가 되었다.
이후 야생의 어린 새끼들이 수풀을 해맑게 뛰어다니며 까불거리고 탐험하듯 아들도 이제 막 세상에 나와 온갖 것이 얼마나 신기했을지 이 글을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세상 온갖 것들이 다 두렵고 불안하던 때였다. 세상 해맑고, 즐거운 아이의 고기압과 나의 습하고 무거운 저기압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정리가 되었다.
지금 아들은 자신의 진로를 고민할 정도로 많이 자랐다. 물론 지금은 그 경망스러운 걸음은 볼 수 없고 오히려 조금은 무겁게 가라앉아 뒷모습에서조차 어두운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 기괴한 걸음걸이가 사라진 지금 아들은 하늘을 날 듯 가벼운 발걸음 대신 야무지게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으며 나 또한 인생의 중반인 지금에서야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작가가 인생의 후반을 살아내며 더욱 삶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짙어졌다면 자식을 가진 어미로서의 나는 어느 정도 자식들의 성장에 따라 안정감을 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도 이해되지 않았던 아들의 제멋대로인 걸음걸이의 이유와 그토록 날카롭고, 불안했던 그때의 내가 모두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들이었음을 지금에서라도 이렇게 정리되어서 기쁘다.
지금의 나는 옳고 그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고 그로 인해 여유로워지고 좀 더 시야가 넓어졌다. 극한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 생활에서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 또한 시간의 선물로 돌려본다.
다 어쭙잖고, 어리석었던 시간이 힘과 능력의 미약함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또한 흘러가야 할 시간이었음을 알게 된 지금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