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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Apr 13. 2016

4월의 어느 날, 한남동 골목 투어

이번 주말, 한남에서 만날까요?

미세먼지가 뿌옇게 끼었던 4월의 어느 주말,

누군가는 이 세상 최고로 행복한 신부가 되었고, 누군가는 그런 그녀를 부러워했던 그 날. 우리는 하객 패션을 하고, 중국발 미세먼지를 뚫으며, 한남동 카페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오랜만에 바깥구경을 하다가, 잠시 조는 사이에 한남동 입성! 골목골목마다 가볼 곳이 참 많은 동네, 한남동. 예전엔 이태원이랑 경리단길 위주로만 다녔는데, 요샌 한남동이 왜 이리 좋은지. 어렸을 때는 마냥 비싼 동네인 줄 알았는데, 가격보다도 곳곳에 가게들이 숨어있는 게 한남동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다시서점, 그리고 초능력자

'들어와' 라는 입간판만 보고, 호기심이 발동해서 지하로 성큼성큼 내려갔던 우리. 무슨 가게인지는 생각치도 못했던 것 같다.

프리저브드 플라워가 반기는 계산대
이런 인테리어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여기, 카페에요?

생각치도 못했던 인테리어와 그에 맞는 공간 활용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아버린 그 곳, 다시서점.

사장님은 사진만 찰칵찰칵찍는 우리를 보며 '사진 많이 올려주세요'라고 하셨지. 우리는 그런 사장님께 동시에 '여기 카페에요?'하고 물었다.

알고보니 오후 6시 전까지는 차를 판매하는 '다시서점'으로 운영하고, 오후 6시부터는 주류를 판매하는 매력적인 '초능력자'라는 바로 변신한다고.


저기 보이는 책이 반갑다.

독립출판물을 좋아하는 나와 언니에게는 눈 돌아가는 곳이었다. 사진도 엄청 찍었고, 서로를 찍어주기도 했고. 사장님의 그 한마디에 괜히 움찔! 했지만, 저 사진 많이 올리고 있습니다. 사장님 (우쭐)

아쉽지만 이 공간보다 더 가보고 싶은 공간이 있어 한남동에 왔으니! 여긴 다음 기회로 미뤄둘게요. 다시서점 덕분에 눈 호강하고 갑니다.


한남동 카페, 수르기

바로 오늘의 목적지, 카페 수르기(sous le gui)

영어인지, 프랑스어인지, 알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이 카페는 요즘 가드닝 카페로 인스타그램에서 핫하다고 한다. 사실 나도 이 카페는 모르다가, 같이 간 언니가 너무 가보고 싶어해서 찾아보다가 꽂힌 곳.


자체 베이킹을 하는 카페 수르기

우선 내가 상상했던 수르기의 첫 인상은 식물이 가득할거야! 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수르기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이 맛있는 냄새는 뭐지?' 였다. 사람이란 너무 단순한 것. 눈에 보이는 식물들보다 코로 들어오는 맛있는 냄새가 더 먼저였다.

카페 수르기는 직접 디저트 베이킹을 하고 있어 카페에 있는 내내 달콤한 향을 맡을 수 있다. 위에 보이는 디저트 역시 카페 수르기에서 만든 것들. 개인적으로 타르트보다는 에클레어를 더 좋아하는데, 이 날은 타르트인 애플자스민플레어와 바닐라라떼를 주문했다.

타르트와 바닐라라떼의 조합

우리가 주문한 애플자스민플레어 & 바닐라라떼

개인적으로 애플자스민플레어는 우리가 상상했던 그 맛은 아니었다. 자스민향이 꽤 강해서 이거 파스향 아니야? 라고 생각할 정도. 하지만 아래 깔려있는 타르트와 사각사각 씹히는 사과 조각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우리가 배만 부르지 않았다면, 뷔페에서 정줄 놓고 배를 채우지만 않았다면, 다 먹었을 일.


카페 수르기의 핫 스팟, 목욕탕 좌석

여기가 그렇게 핫한 자리라면서, 여기 앉아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들어가보니 좌석이 너무 애매해서 우선은 바깥쪽에 자리를 잡았었다. 하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그 갈증. 그래도 저길 꿈꾸고 여기까지 온 건데! 하는 미련 같은 게 남아서, 안 쪽에서 사람이 나올 때마다 자리를 확인하러 갔다.

어쩌면 내가 그 카페의 민폐녀였을 거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가서 쳐다보고, 사장님이랑 얘기도 하고 하다가, 결국 핫스팟에 가서 앉았다고 한다.

앉자마자 둘이 얘기했다.


- 바깥에만 앉아 있다 갔다면 그냥 식물이 많은 평범한 카페로 기억했을 거에요.


그 정도로 목욕탕 핫스팟 자리는 정말 괜찮았다.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자리는 상대방과 소근소근 얘기할 수 있었고, 좌석에 높여진 조명을 이용해 다양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곳곳마다 한 자리씩 차지한 식물들 덕분에, 피톤치드까진 아니어도 산소를 먹고 온 느낌. 햇살이 좀 더 좋았다면 조명이 아니더라도 밝은 수르기를 느낄 수 있었을텐데.

보는 것보다 앉는 게 훨씬 좋아요!

점점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서, 발길이 끊이지 않던 수르기에도 사람들이 하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우리는 뷔페에서 먹은 음식때문에 아직도 배가 부른 상황.


- 어떡할까요? 그냥 골목투어할까요?


그럼요, 우리는 미세먼지를 뚫고 한남 나들이를 왔는 걸. 다시 나가서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꽃보다청춘 아프리카편 감독판 촬영지

그러다가 골목 끝에서 불빛이 환한 집을 만났다. 저긴 뭐하는 곳일까요? 하고 한참 둘러보는데, 아래 입간판에 놓여진 '꽃보다청춘 아프리카편' 포스터. 바로 알아차렸다.


- 여기! 꽃청춘 감독판에서 글램핑했던 가게에요!


망설이지 않고 올라간 가게, 이름은 in the A (인디에이). 캠핑샵 겸 글램핑 공간을 대여해주는 곳.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끊임없는 환호성으로 이 예쁜 공간을 감상했다.


글램핑 소개 브로셔는 너무 오래됐다고 하셨다

글램핑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어디서요?!' 라고 바로 물어본 우리. 옥상에서 꽃청춘처럼 바베큐도 해먹고, 잠도 잘 수 있다는데, 오늘은 이미 한 가족이 예약을 해둬서 방금 바베큐 파티를 시작했다고. 엄청 아쉬웠지만 우리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디에이 내부를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마치 다신 안 올 사람들인 것마냥.


여기서 매거진 B를 만나다니, 반가워!

어떻게 찍어도 '나 지금 캠핑중' 이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한 사진들이 나왔다. 캠핑샵인데, 그냥 카페처럼 앉아있고 싶게 만든 인테리어에 우리는 눈길을 빼앗겨버렸다. 실제로 캠핑 의자에 앉아서 매거진 B를 읽었다. 그런 우리를 보던 사장님은 옥상에서 바베큐 파티 중인 가족분들께 양해를 구해주셨고, 운좋게도 한남동 주택 옥상에 올라가 생각치도 못했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이토록 예쁜 광경이라니.

옥상에 쭉- 달려있는 조명 덕에 한껏 글램핑 느낌이 돋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호텔 객실 조명이 뭔가 더 분위기를 더했달까. 아직은 조금 쌀쌀한 날씨였지만, 아이와 함께 바베큐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손님들이 너무 부러웠던 밤이었다.

어쩜, 문 앞의 박스마저도 예쁘냐며. 우리는 극찬을 쏟아내고 인디에이를 나왔다. 잠시 둘러본 것 뿐인데, 마치 5시간의 글램핑을 즐긴 사람들처럼.




이렇게도 아름다웠던 4월 어느 날,

미세먼지때문에 대기는 뿌옇게 보였을지 몰라도, 오랜만의 나들이는 기분을 훨씬 들뜨게 만들었다. 일교차가 큰 날씨라 저녁엔 추웠는데도, 그 쌀쌀함마저 기분 좋은 봄 날씨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즐거웠다.


한남동에서 만나는 카페, 가게, 음식점들 중에는 꼭 내가 꾸리고 싶은 공간 그대로 재현해놓은 곳들이 있다. 유독 이 날은 세 군데 모두 내가 살고 싶은 공간들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공간과 그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모아서 자신만의 공간을 꾸렸다는 것에 부러움을 느꼈던 하루. 나도 언젠간 저런 매력적인 공간을 꾸리고 싶다, 라는 꿈을 한껏 부풀리게 했던 날. 그래서 더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가끔 이렇게 골목만 찾아다니면 나도 몰랐던 작은 보석들을 만나는 것 같다. 앞으로도 가끔 이런 기분 전환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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