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진 눈과 다급한 손짓으로 다시 나가라고 하는 둘째를 볼 때마다 당황스럽고 귀엽고 안심이 된다.
왜냐면 아직 나에게 자유시간이 남았다는 뜻이니까.
말레이시아에 온 지 어언 3년이 지났고 올해 둘째가 4살이 되면서 블럭방에 아이만 두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엔 주말에 가지는 자유시간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주말은 아이들과 꼭 붙어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과 있는 시간은 좋다. 나는 엄마고 그게 힘들진 않다. 그런데 가끔씩은 정말 가끔씩은 아이들은 싫어하지만 우리 부부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싶기도 하고 둘이서 영화도 보고 싶다.
우리 동네 블럭방은 레고, 슬라임, 비즈를 할 수 있고 이런 곳은 딱 하나다. 선생님 두 분이 상주하시면서 아이들을 도와주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관리해 주신다. 아이들이 요청하면 당연히 부모에게 전화도 해주신다.
한국에서 놀러 온 다른 엄마들이 한국에도 이런 곳이 많다고 했었고 사장님이 한국분이신 걸 보면 한국에서는 아주 흔한 장소인 거 같다. 아무튼 이렇게 소중한 우리 동네 블럭방은 4살부터 혼자 들어갈 수 있다.
아니면 보호자가 필요하다.
올해 들어 레고를 좋아하기 시작한 둘째를 보면서 이제 아이 둘만 두고 장 보고 오는 정도는 가능하겠다 싶었다. 심심한 주말이나 급하게 장을 봐야 할 때 아이들만 블럭방에 보내놓고 종종 자유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점점 둘째가 레고에 빠지더니 집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블럭방에서 하는 레고는 특별한가?
둘째가 원하는 시간만큼 기다리다 보면 1시간이 훅 지나가있었다. 물론 첫째 또한 비즈와 슬라임을 좋아해서 예전부터 시간이 부족했다. 아이들에게 노는 시간은 늘 부족하긴 하다.
'어라 이 정도면 남편이랑 둘이 맛있는 거 먹고 와도 되겠는걸!'
어느 날 저녁 남편과의 초밥 데이트를 시도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저녁을 든든히 먹여두고 블럭방에 보내놓은 후 전화하면 바로 튀어갈 수 있는 가까운 식당으로 갔다.
둘이서 밥 먹은 게 언젠지 기억도 가물가물 했을 정도라 정말 좋았다. 애들이 싫어하는 식당은 생각도 못했는데
둘이서 좋아하는 걸 먹을 수 있다니!
그렇게 한두 번 시도하고 나서 둘이 밥 먹는 재미가 시들해질 때쯤 둘째의 레고 사랑이 폭발했다.
진짜 집에 안 가고 싶어 한다. 이렇게 집중할 수 있다니 레고가 그렇게 재밌을까. 1시간도 부족하고 2시간도 다 안 놀았다고 난리다. 2시간쯤 되면 첫째는 지겨워하던데 둘째는 뭐가 아쉬운지 징징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블럭방 바로 위에 영화관이 있잖아?... 혹시 영화도 볼 수 있을까?'
나는 좋아하는 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보는 편이다. 그냥 큰 화면이 좋고 영화관만의 느낌이 좋다. 그리고 남편이랑 영화관을 가는 것도 좋아한다. 대학교 CC였던 우리가 처음 같이 수강했던 교양도 영화의 이해라는 수업이었다. 수업 중에 봤던 영화는 기억이 안 나지만 수업이 끝나고 걷던 길이 참 예뻤다는 기억은 난다. 이렇게 좋아해도 아이를 낳은 후에는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쉽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살고부턴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마침 나쁜 녀석들 4가 개봉을 했다.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 BAD BOYS! 자막이 없어서 알아듣기 힘들까 봐 걱정을 했지만 뭐 그렇게 어렵겠어!라는 당찬 마음으로 예매했다. 역시나 영화는 정말 재밌었다. 혹시나 블럭방에서 전화가 올까 봐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설레는 마음으로 봤다. 영화가 끝나고 정신없이 아래로 내려갔는데 아이들 또한 역시나 잘 놀고 있었다. 심지어 안 끝났다며 도로 나가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우리에게 신나는 영화를 더 신나게 볼 수 있게 해 준 영화관은 생긴 지 얼마 안 됐다. 내년에 열었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내가 있는 동안 기회가 있어서 정말 기쁘다.
이제 귀국까지 3개월 정도 남았다. 이제 영화를 보러 갈 일은 없을 거 같지만 그래도 종종 블럭방 찬스는 쓸 예정이다. 귀국하기 전에 우리 아이들을 잘 챙겨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는 꼭 드리고 가야지